4월 16일 성주간 수요일 (마태오 26,14-25)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랑의 승리」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들의 향연이 눈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마음을 환하게 열어주고 겨우내 움츠린 우리에게 희망의 기운을 주고 있다. 다양한 꽃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고유한 향기와 빛깔을 내며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서로를 비교하지 않고 시기 질투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드러내며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계절에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거룩한 한 주간을 보내게 된다.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의 선동에 이끌린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군인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유다인의 임금님, 만세!” 하며 빰을 때린다. 철저히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비참하고 무력한 임금의 모습이다. 힘과 권세를 부리는 임금이 아니라 비폭력과 평화의 임금이다. 권력으로 두려움을 조장해 내리누르는 이가 아니라 억울한 이들과 함께 누명을 쓴 임금! 그러기에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받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며 공명하는 사랑이 충만한 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을 마음을 다해 섬긴다.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결국 권력의 힘에 죽임을 당했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서 믿는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제 십자가는 단순한 사형 도구가 아니라 다른 이를 살려주는 사랑의 표징이 되었다. 고통을 통해 참 평화를 가져오고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영광이 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슬픔, 아픔과 불편함이 누군가를 위한 사랑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욕심일까? 유다인들의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 예수님의 죽임을 가져왔듯이 세상에는 다툼이 참 많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노와 사, 세대 간의 갈등과 다툼, 개인의 다양한 가치와 신념에 이르기까지 그 다툼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 온다. 신념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열려 있지 않으면 함부로 판단하고 강요하며 단죄하게 된다. 자신이 지닌 확신이 때로는 편견이 될 수 있고, 오해가 될 수도 있다. 내 생각과 가치가, 다른 이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마음을 열어 소통함으로써 다툼을 줄여야 할 것이다. 다툼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신념의 벽을 높이 세우고 울타리를 치며 그 속에 자기를 가두어 놓는 사람은 스스로 고립되는 사람이다. 나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의 골방에 있는 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다. 그러나 오그라든 마음을 열어 서로를 갈라놓는 모든 분열의 담을 헐고 불의와 부정, 폭력과 억압, 불평등과 차별, 현실과의 타협을 넘어서는 희생과 헌신의 사랑에 눈뜨게 된다면, 그것이 부활의 삶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국가의 지도자와 공직자들은 물론 나부터 해묵은 관행과 편향적인 논리, 기득권, 편견과 선입견, 알량한 자존심과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내려놓을 때 주변의 모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기쁨을 맞이할 것이다. 부활은 ‘해묵은 나’가 죽고 ‘새로운 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나려면 묵은 생각이나 낡은 틀을 버려야 한다. 스스로 낮추고 상대를 인정하며 이웃과 공명하는 가운데 메마른 마음이 활짝 펴지기를 소망한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승리를 위해서는 희생과 아픔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간판을 내려놓은 자리,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지는 않지만, 누군가 진정한 사랑과 헌신으로 봉사할 때, 우리 사회는 분명 더 맑고 밝은 환한 사회로 새롭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다. 얼어붙었던 산과 바위틈에서 진달래꽃이 환히 피어나듯, 꽃잎을 떨구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녹음을 당기는 또 하나의 시작이듯이 우리가 머무는 곳에, 사랑의 꽃이 피어나도록 애쓰는 이가 있는 한 부활의 생명은 계속될 것이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고와야 한다. 지는 꽃도 꽃이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까닭이다”(법정).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반영억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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