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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주간 수요일 / 정인준 신부님 ~

4월 16일  (자) 성주간 수요일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0,4-9ㄴ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어떻게 이사야 예언서의 ‘야훼의 종’의 셋째 노래는 몇 백년 후대이 있을 주님의
수난을 본 것처럼 설명을 할까요?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 50,5-6)

복음은 주님께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시고 수모를 겪으셨는지를 다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사야 예언자가 수난 받는 야훼의 종에 대해 사실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수난은 마지못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의지하며 스스로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7절)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가 1304-6년 사이에 그린
‘유다의 입맞춤(The Kiss of Judas)’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태리 파도바의 아레나(스크로베니) 성당에 있는 프레스코 형식의 벽화입니다.
색채는 단순하며 어두운 밤 하늘과 붉은 밝힌 배경이 눈에 들어 옵니다.

길다란 장대같은 몽둥이와 햇불로 무장하고 온 성전의 경비병들과 수석사제들의
살기등등한 모습입니다.

굳어 있는 그들의 모습과 함께 예수님께 입맞추는 유다의 모습이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말해 줍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제자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 스승을 넘겨 주기 위한 조건으로 은전
삽십냥으로 흥정합니다. 그리고 그 제자는 스승을 넘겨 줄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반면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나눌 만찬을 준비하도록 제자들에게 지시하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음식을 나누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 26,21)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스승님께 질문합니다.

유다도 다른 제자다와 같이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대답으로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25절)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만찬이 끝나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로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그곳을 잘 알고 있던 유다는 스승을 그곳에서 잡도록 성전의 군인들과 수석 사제를
인도합니다. 그곳은 조용하고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주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소동 없이 예수님을 쉽게 붙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미리 짰던 대로 유다는 주님께 키스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런 저항 없이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50절ㄱ)라고 말씀하며
그들에게 붙들리십니다.

복음은 그곳에 있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56절ㄴ)

복음은 이런 일들이 역사적으로 예언했던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56절ㄱ)라고 설명할 뿐 왜 유다가 주님을 배반해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다의 배반에 대해서는 속시원히
알려주는 어느 것 하나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요.

유다는 주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사실을 알고 뉘우치며 자신이 받은 돈을 돌려주면서
목을 매달아 죽습니다. 그래서 더욱 유다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후회할 일을 쉽게 저질렀을까요?
그는 지금으로 말하면 주님과 제자들이 쓰는 일체경비를 관리하는 재정담당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스승을 잘 알고 있었고 제자들도 한 식구 한 형제인 것입니다.
스승을 팔아 넘길 일이 은전 30냥이었을까요? 그것도 나중에 흥정의 결과였을 뿐입니다.

그가 돈이 탐이 나서 그랬을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저런 가상을 하지만 여전히 유다는
우리에게 의문의 제자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예언하신대로 아무 죄도 없이 붙들리시고 사람들 손에 넘어가시어
수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