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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13-21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예수님


2024년 12월 3일입니다. 저는 당시 시노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시노드에 참석한 신부님들이 제게 한국의 ‘비상계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뉴스를 검색하니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하였고, 비상계엄은 선포한 지 5시간이 안 되어서 해제되었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위헌, 위법한 행위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결의하였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그렇게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군의 통수권자로서, 경제와 외교를 책임지는 대통령일지라도 위헌하고, 위법한 행동을 하면 그 직무가 정지되고, 파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정의와 국민의 양심을 거슬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한 ‘히브리스(hybris)’, 곧 신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과도 닮았습니다. 


그 결과는 항상 네메시스, 곧 파멸로 이어졌습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도 쾌락과 권력에 취해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불태우고, 그 죄를 그리스도인에게 뒤집어씌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무너졌지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진리는 살아남았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말했습니다.


“정의를 잃은 도시는 결국 무너진다.” 그게 민주주의든, 제국이든, 교회든 마찬가지입니다. 정의가 없는 곳엔 부활의 기쁨도, 하느님의 나라에도 이를 수 없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력은 권력으로만 제어된다.” 누구나 선할 수는 없어서, 견제와 균형, 그리고 헌법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거짓이라는 덫에 걸릴 일도 없습니다.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앞에 놓인 진실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커다란 걸림돌 또한 욕심과 욕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어야 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고난과 죽음을 겪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 그렇습니다. 욕심과 욕망에 빠지면 꽃은 보지만 땅속에 있는 뿌리를 보지 못합니다. 욕심과 욕망에 빠지면 십자가 없는 부활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욕심과 욕망을 버리면 십자가는 부활을 향해 가는 이정표가 됩니다. 우리가 욕심과 욕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또다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성령의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 앞에 서 있는가? 내 욕망을 따르고 있는가? 이 질문이 우리 양심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가 담대히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부활 신앙의 핵심입니다. 진리를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것,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헛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느끼고 믿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외면하는 권력은 무너지고,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