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우리의 삶은 행복과 고통으로 나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행복과 고통이 우리 삶을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지만 고통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잘 이겨내는 사람이 오히려 고통을 통해 힘을 내며, 고통이 있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지내온 삶을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나를 고통이 만들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말하는 것, 글 쓰는 것이 한때 제일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의 ‘빠다킹 신부’를 있게끔 해주었습니다. 인간관계의 고통이 있었지만, 이를 지나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험의 고통도 컸지만, 이를 통해 노력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몇 차례 입원하는 등,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운동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지금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했습니다. 포기가 아니라 정면에서 마주 서야 했습니다. 그래야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도 위로를 건네는 힘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목숨을 바치십니다. 하느님께서 겪으신 고통의 무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사랑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것으로 끝이었을까요?
그 사랑의 결과는 우리 모두의 구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지금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고통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사랑으로 커다란 위로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의 모범을 따라 서로 사랑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사랑은 고통을 피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게 되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이 힘들기에 우리는 사랑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서로를 통해 삶의 이유를 찾고 삶의 무게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원의 길에 그만큼 다가가는 방법이니 말입니다.
때로는 고통을 견디는 과정 안에서 흉터가 남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나의 길을 증명하는 명예로운 표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명언: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벤저민 프팽클린).
사진설명: 성 마티아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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