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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제 5주일 / 이영근 신부님 ~

부활 제5주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 <복음>은 흔히 말하는 예수님의 ‘고별담화’의 첫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유언이라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난 다음 이스가리옷 유다가 나가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영광스럽게 되셨음을 선언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 13,31-32)

 

 

 

이는 참으로 기막힌 일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이 아들의 죽음에서 드러난다니 말입니다. 곧 아들을 죽게 하여 아버지가 영광을 받게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 결과입니다.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이 사랑인 까닭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가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우리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선언하십니다. 여기에는 자신을 비워, 아버지를 드러내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십자가에서의 ‘비움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 말씀은 계명 이상의 것입니다. 곧 선물임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당신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선물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유언을 주시는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나 공로도 없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선물인 그 ‘사랑’을 우리도 형제들에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새 계명’입니다. 그리고 이 ‘새 계명’의 실천이 바로 당신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표지가 됩니다.

 

이 계명이 ‘새 계명’이 되는 까닭은 이처럼, 그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하느님의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온전히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 자신을 비움으로써 자신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형상을 드러내십니다. 그렇게 십자가 죽음의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증언하게 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곧 자신이 비워지면 자신 안에 계시던 그리스도의 형상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제2독서>인 <요한묵시록>에서 말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묵시 21,3)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거처를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사랑은 관계능력이요 공존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유대와 공존은 다름 아닌 자신을 비워줌으로써, 타인이 흘러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되, ‘먼저’ 자신을 건네주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자신을 비워낼 때 타인은 비워진 그 자리로 들어 와, 바로 나 자신이 될 것입니다.

 

결국, 비워진 바로 그 자리가 형제들이 들어서는 자리요, 하느님이 드러나는 영광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삼위일체 관계의 공존의 사랑에서 봅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자기 비움, 자기 죽음의 사랑으로 관계의 사랑, 공존의 사랑을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인 ‘사랑의 새 계명’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주신 이 사랑의 힘이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 힘으로 우리들 사이에 사랑의 유대가 드러나는 곳에서, 사람들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영광은 형제 사랑 안에서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시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형제들에게 바로 이 사랑을 선물해야 할 일입니다. 선물로 받은 그 사랑을 선물로 건네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선물로 건넨 그 자리에,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이 드러나게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처하시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기 전에, ‘먼저’ 저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토록 당신께서는 사랑으로 저희 안에 거처하십니다.

당신께서 ‘먼저’ 주신 그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그 사랑에 흠뻑 젖고,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