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떠남의 여정
“좋은 만남 있어 좋은 떠남이다”
“주님은 자애롭고 불쌍히 여기시며,
역정에 더디시고 사랑이 지극하오이다.”(시편145,8)
떠남의 여정은 역설적으로 만남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만날 때가 있으면 떠날 때가 있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입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으며, 권세는 10년을 못가니’ 한없이 겸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떠남이 있어 삶이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좋은 만남, 아름다운 만남이 있어 좋은 떠남, 아름다운 떠남입니다. “내가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공자의 지극히 겸손한 말씀처럼, 참으로 살았을 때 비로소 참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잘 살지 못하면 마지막 떠남인 죽음도 제대로 잘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막교부들의 공통적 삶의 목표는 단 하나, “참으로 사는 것”, “진짜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중 참석자들이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모습에서 저절로 눈물이 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서 또 눈물이 났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중 숱한 만남과 떠남의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 생애 세분의 교황들이 떠났습니다. 성인이 된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도 16세,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모두가 좋은 만남의 선물을 남기고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떠난 분들입니다. 놀랍고도 고맙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떠난 자리에 새 교황 레오14세가 바톤을 터치하여 달리듯, 좋은 만남을 선물하면서 멋지게 교황직을 수행하고 있으니 언뜻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생한듯한 생각도 듭니다. 오늘 새벽 홈페이지에는 레오14세 교황의 눈부신 활동과 말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4월21일 세상을 떠나기 전날인 4월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안젤로 코마스트라 추기경이 대독한 강론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내용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떠남의 죽음을 요약한듯한 강론 일부를 나눕니다.
“그분은 살아 계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통해 함께 하시고,
우리 각자가 행하는 작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삶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의 어둠을 이기시며,
세상의 그늘까지도 이기셔서,
기쁨 가운데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리스도교는 곧 그리스도다. 아니, 진정으로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다.’<앙리 드 뤼박>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 신앙의 경이로움 안에서, 평화와 해방에 대한 모든 기대를 마음에 품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됩니다.’”<2025.4.20. 부활 주일 낮미사 강론>
부활의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말씀을 남기시고 아름답게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하면 늘 만면의 미소입니다. 25년전 제 나이 51세, <선물>이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요즘 무수히 폈다지는 꽃들을 보면서 삶은 선물이란 생각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꽃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 있어 삶이 선물임을, 떠남 있어 만남이 선물임을 더욱 또렷이 깨닫습니다.
“꽃처럼 환한 웃음보다 더 좋은 선물 있을까?
삶은 순전히 선물이다.
꽃같은 삶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순식간 사라져 가는 꽃들
바로 선물 인생 아니던가?
얼마나 그 많고 좋은 선물들 놓쳐 버리고 살았는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대로 꽃인 인생인 거다.
어제의 꽃 폈다지면 또 오늘의 꽃 폈다 지고...
평생을 그렇게 꽃으로 사는 거다.
끊임없이 폈다 지면서 떠나는 삶이다.
파스카의 꽃같은 삶이다.
잘 떠날 때 아름답지 않은가?
길이길이 향기로 남는다.”<2001.4.23.>
요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기전 고별사가 계속됩니다. 예수님의 떠남이 참 아름답습니다. 평화의 선물을 남기시며 떠나는 유언같은 말씀이 참 은혜롭고 감동적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주님께서 선물로 남기고 떠난 평화의 은총이, 고통과 시련중에도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고 마침내 행복하고 아름다운 선물같은 떠남의 죽음도 맞이하게 합니다. 참 많은 성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목격하는 진리입니다. 성령은 바람입니다. 성령따라 살 때 아름다운 만남, 아름다운 떠남의 삶이요 죽음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입니다.
“바람을 거스르는 풀은 없기에 모든 가르침은 바름이어야 한다.”<다산>
어제 들은 시대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분이 정치가들에 바라는 한가지 당부, ‘거짓말하지 마라’란 말마디가 내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정직하라, 회개와 반성을 하라는 것이니 이게 바로 바른 가르침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백성은 풀이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바람을 따라 눞는다.”<논어>
지도자들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지향해야 할 성령에 따른 성덕聖德의 삶에 성화聖化의 여정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떠남의 여정도 참 아름답습니다. 선교여행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후 떠날 때의 다음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정말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된 성령에 따른 삶이자 떠남임을 보고 배웁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성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의 성령에 따른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삶과 떠남이 참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날마다 주님과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만남”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아름다운 “떠남”의 삶을, 주님 파스카의 꽃같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당신께 비옵는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비는 누구에게나,
주님은 가까이 계시나이다.”(시편145,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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