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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마을

[스크랩] 천상병 시인의 시 모음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主日 2

1
그는 걷고 있었습니다.
골목에서 거리로,
옆길에서 큰길로.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과 건물이 있습니다.
상관 않고 그는 걷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가겠느냐구요?
숲으로, 바다로,
별을 향하여
그는 쉬지 않고 걷고 있습니다.

2
낮에는 찻집, 술집으로
밤에는 여인숙,

나의 길은 언제나 꼭 같았는데......

그러나
오늘은 딴 길을 간다.

 

아가야

  해뜨기 전 새벽 중간쯤 희부연 어스름을 타고

낙심을 이리처럼 깨물며 사직공원길을 간다.

 

행도 드문 이 거리 어느 집 문밖에서

서너 살 됨직한 잠옷 바람의 앳된 계집애가 울고 있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웬일일까?

 

개와 큰집 대문 밖에서 유리 같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이 애기는 왜 울고 있을까?

 

오줌이나 싼 그런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자주 뒤돌아보면 서 나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아가야, 왜 우니?

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

 

무슨 슬픔 당했다고, 괴로움이 얼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

이 새벽 정처없는 산길로 헤매어가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가야, 너에게는 그 문을 곧 열어줄 엄마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게는 그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 마!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새 세 마리

나는 새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텔레비 옆에 있는 세 마리 새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왜나하면
진짜 새가 아니라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은행에서 만든 저금통 위에 서 있는 까치고
두 마리는 기러기 모양인데
경주에서 아내가 사가지고 왔다.
그래서 세 마리인데
나는 매일같이 이들과 산다.

나는 새를 마우 즐긴다.
평와롭고 태평이고 자유롭고
하늘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진짜 새처럼 애지중지한다.

 

먼 山

먼 山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이고
통일이 없지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먼 山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

 

들국화

84년 10월에 들어서
아내가 들국화를 꽃꽂이했다
참으로 방이 환해졌다
하얀 들국화도 있고
보라색 들국화도 있고
분홍색 들국화도 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우리방은 향기도 은은하고
화려한 기색이 돈다
왜 이렇게 좋은가
자연의 오묘함이 찾아들었으니
나는 一心으로 시 공부를 해야겠다.

 

꽃밭

손바닥 펴
꽃밭 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 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일(秋日)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女子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 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 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無能力者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오월 사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쿨 뭉쿨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이
"시끄럽다-. 잠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草者는 어쩌지 못했어요-.

 

村놈

나는 의정부시 변두리에 살지만
서울과는 80미터 거리다
그러니 서울과 교통상으로는
별다름이 없지만
바로 근처에 논과 밭이 있으니
나는 촌놈인 것이다
서울에 살면
구백만 명 중의 한 사람이지만
나는 이제 그렇지가 않다.
촌놈은 참으로 행복하다
나는 노래불어야 한다
이 대견한 행복을
어찌 노래부르지 않으리요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의 노래는 하늘의 것입니다.
//

 

고향

내 고향은 경남 鎭東
마산에서 사십 리 떨어진 곳
바닷가이며
산천이 수려하다.

國校 一年 때까지 살다가 떠난
고향도 고향이지만
원체 고향은 대체 어디인가?
태어나기 전의 고향 말이다.

사실은 사람마다 고향타령인데
나도 그렇고 다 그런데
태어나기 전의 고향타령이 아닌가?
나이 들수록 고향타령이다.

無로 돌아가자는 타령 아닌가?
경남 鎭東으로 가잔 말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의 고향 - 無로의
고향타령이다. 初老의 切感이다.

 



넋이 있느냐 라는 것은
내가 있느냐 없느냐고 묻는 거나 같다.
산을 보면서 산이 없다고 하겠느냐?
나의 넋이며
마음껏 발동해다오.
내 몸의 모든 움직임은,
바로 내 넋의 가면이다.
비 오는 날 내가 다소 우울해지면
그것은 즉 넋이 우울하다는 것이다.
내 넋을 전세계로 해방하여
내 넋을 널찍하게 발동케 하고 싶다.

 

나무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
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
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
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유리창

창은 다 유리로 되지만
내 창에서는
나무의 푸른 잎이다.

생기 활발한 나뭇잎
하늘을 배경으로
무심하게도 무성하게 자랐다.

때로는 새도 날으고
구름이 가고
햇빛 비치는 이 유리창이여 -


 

담 배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끊지 못한다.
시인이 만일 금연한다면
시를 한 편도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를 쓰다가 막히면
우선 담배부터 찾는다.
담배연기는 금시 사라진다.
그런데 그 연기를 보고 있으면
인생의 진리를 알 것만 같다.
모름지기 담배를 피울 일이다.
그러면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될 터이니까!

 

막걸리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회상 2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쬔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수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동그라미

동그라미는 여자고 사각은 남자다
동그라미와 사각형을 두 개 그리니까
꼭 그렇게만 보여진다.

상냥하고 자비롭고 꾸밈새 없는
엄마의 눈과 젖
손바닥과 얼굴이 다 둥글다.

울뚝불뚝하고
매서운 아버지의 눈과 입,
손목과 발힘이 네 개나 된다.

 

국화꽃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만이 내가 아니라도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진혼가 - 저쪽 죽음의 섬에는 내 청춘의 무덤도 있다(니체)

태고적 고요가
바다를 덮고 있는
그곳.

안개 자욱이
석윳불처럼 흐르는
그곳.

인적 없고
후미진
그곳.

새 무덤,
물결에 씻긴다.

 

 새
- 아폴로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음악을 듣는것이다. 내 마음의 빈터
에 햇살이 퍼질 때, 슬기로운 그늘도 따라와 있는 것이
다. 그늘은 보다 더 짙고 먹음직한 빛일지도 모른다.
  새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골짜구니를 건너고 있을까?
내 마음 온통 세내어 주고 외국 여행을 하고 있을까?
  돌아오라 새여! 날고 노래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
그늘의 외로운 찬란을 착취하기 위하여!

 

 간 봄

한때는 우주 끝까지 갔단다.
사랑했던 여인
한봄의 산 나무 뿌리에서
뜻 아니한 십 센티쯤의 뱀 새끼같이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이젠
나는 좀 잠자야겠다.

 

시냇물가 3

이 시냇물은
수락산에서 발류하였으니
기어코 한강에 삽입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서울의 혈로요 수류이다.
시민들이 모름지기 그 덕화를 입을 것이니
인격과 품성이 월등할 까닭이다.

기어이 바다에 들 것이니
세계 七海는 서울 시민과는 무관하지 않다.
왜 수락산정에 등산객이 가는가......

 

8월의 종소리

저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
땅의 소리일까?
하늘 소리일까?

한참 생각하니, 종소리.
멀리 멀리서 들리는 소리.

저 소리는 어디까지 갈까?
우주 끝까지 갈지도 모른다.
땅속까지 스밀 것이고.
천국에서도 들릴 것인가?

 

낚시꾼

일심으로 찌를 본다.
열심히 보는 찌는 꽃과 같다.
언제 나비처럼 고리가 올까?

조용하디조용한 강가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나는 정신의 호흡을 쉴 줄 모른다.

드디어 찌가 움찍하더니
나는 고기 한 마리의 왕
승리한 양 나는 경치를 본다.

 

동창

지금은 다 뭣들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얼마나 출세를 했을까?
지금은 어디를 걷고 있을까?

점심을 먹고 있을까?
지금은 이사관이 됐을까?
지금은 가로수 밑을 걷고 있을까?

나는 지금 걷고 있지만,
굶주려서 배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마는
그들은 다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계곡 흐름

나는 수락산 아래서 사는데,
여름이 되면
새벽 5시에 까어서
산 계곡으로 올라가
날마다 목욕을 한다.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의
제법 다정한 이야기들.

큰 바위 중간 바위 작은 바위.
그런 바위들이 즐비하고
나무도 우거지고
졸졸졸 졸졸졸
윗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더러는 무르팍까지
잠기는 물길도 있어서......
(내가 가는 곳은 그런 곳)
목욕하고 있다 보면
계곡 흐름의 그윽한 정취여......

 

어두운 밤에

수만년 전부터
전해내려온 하늘에
하나, 둘, 셋, 별이 흐른다.

할아버지도
아이도
다 지나갔으나
한 청년이 있어 시를 쓰다가 잠든 밤에......

 

찬물

나는 찬물 잘도 마십니다
<물민족>이라며, 자꾸자꾸 마십니다.
그러면 생기가 솟구치며
남들에게 뒤지지 않게 됩니다.

자연의 정기를, 멀기는 하지만
흉내라도 내야 할 일이겠습니다.
만주의 송화강을 건거서
남쪽으로 올 때
우리 선조들이
<물><물> 했듯이-

하늘 날으는 새처럼, 하늘투성처럼,
나는 그저 찬물투성입니다.
생기가 있어야
인생을 놓치지 않는 법입니다.

나의 노래는 미약하지만
그 노래 끝에는
반드시 찬물생기가 있어서
먼데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크레이지 배가본드

1
오늘의 바람은 가고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

뒷시궁창 쥐새끼 소리같이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2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담배를 빤다.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
우물가, 꽁초 토막......

 

갈매기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이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갈대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아침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덕수궁의 오후

나뭇잎은 오후, 멀리서 한복의 여자가 손을 들어 귀를 만진다.
그 귀밑불에 검은 혹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섬돌에 떨어진 작은 꽃이파리
그늘이 된다.

구름은 떠 있다가
中化殿의 破風에  걸리더니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잔디 위와 砂道
다시는 못 볼 광명이 되어
덤덤히 섰는 솔나무에 未安힌 나의 病
내가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어리석음에 취하여 술도 못마신다.
연못가로 가서 돌을 주워 물에 던지면
끝없이 떨어져간다.

솔나무 그늘 아래 벤치
나는 거기로 가서 앉는다.

그러면 졸음이 와 눈을 감으면
덕수궁 전체가 돌이 되어 맑은 연못 속으로 떨어진다.

 



고요한데 잎사귀가 날아와서
네 가슴에 떨어져간다.

떨어진 자리는
오목하게 파인

그 순간 앗 할 사이도 없이
네 목숨을 내보내게 한
상처 바로 옆이다.

거기서 잎사귀는
지금 일심으로
네 목숨을 들여다보며 너를 본다.

자꾸 바람이 불어오고
또 불어오는데
꼼짝 않고 상처를 지키는 잎사귀

그 잎사귀는 눈이다 눈이다
맑은 하늘의 눈 우리들의 눈 분노의
너를 부르는 어머님의 눈물어린 눈이다.

 

 

나의 가난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노래

나는 아침 五時가 되면
산으로 간다
서울 북부인 이 고장은
지극한 변두리다
산이 아니라
계곡이라고 해야겠다
자연스레 노래를 부른다

내같이 노래를 못 부르는 내가
목청꺽 목을 뽑늗다
바위들도 그 묵직한 바위들도
춤을 추는 양하고
山등성이가 몸을 움직이는 양하고
새소리들도 내게 음악을 주고
나무들도 속삭이는 것 같다
나는 노래한다 나는 노래한다.

 

 



태양의 빛 달의 빛 전등의 빛
빛은 참으로 근사하다

빛이 없으면
다 캄캄할 것이 아닌가

세상은 빛으로 움직이고
사람 눈은 빛으로 있다

내일이여 내일이여
빛은 언제나 있으소서.

 

기쁨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제킨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허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生色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 같다.

 

한낮의 별빛
-새-

돌담 가까이
창가에 흰 빨래들
지붕 가까이
애기처럼 고이 잠든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슬픔 옆에서
지겨운 기다림
사랑의 몸짓 옆에서
맴도는 저 세상 같은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물결 위에서
바윗덩이 위에서
사막위에서
극으로 달리는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새는
온갖 한낮의 별빛계곡을 횡단하면서
울고있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나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못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하늘.2

하늘은 가이없다.
무한한 하늘은 끝이 없다.
어디까지가 하늘이냐
두무지 알 수 없다.

구름은 떠가지만
그건 유한한 하늘이고
새는 날으지만 낮은 하늘이고
우리는 그저 하늘을 받들면 그만이다.

태양은 빛을 보내고
달도 빛을 보내지만
우리는 그 빛의 고마움을 모르고
그저 고맙다고만 한다

 

하느님 말씀 들었나이다.

1950년 10월 5일 정오경
나는 종로 2가
안국동쪽을 꺽고 있었습니다.
길꺽는 모퉁이에
한그루 가로수가 있었는데,
그 밑을 지나는 순간
하늘에서
낮으막하나,
그래도 또렷한 우리말로
'명상은 않되!'하는
말씀이 들리시더니
또 일분 후에
'팔팔까지 살다가, 그리고 더'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틀림없습니다.
2천년만의 하느님 말씀입니다.

저는 몸둘 바를 모르고
그냥 길바닥에 주저 앉아
한참 명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월의 신록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두살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어린애들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인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카페

내 아내가 경영하는 카페
그 이름은 '귀천(歸天)'이라 하고
앉을 의자가 열다섯석 밖에 없는
세계에서도
제일 작은 카페

그런데도
하루에 손님이
평균 60여명이 온다는
너무나 작은 카페

서울 인사동과
관훈동 접촉점에 있는
문화의 찻집이기도 하고
예술의 카페인 '귀천(歸天)'에 복 있으라.

 

 

흐름

바다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사람도 흐르고 동물도 흐르고
흐르는 것이 너무 많다

새는 날고 지저귀는데
흐름의 세계를
흐르면서 보리라.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
하나님! 하나님도 흐르시나요!

 

친구(親舊).4
-日曜日-

신도(信徒)는 천주교도(天主敎徒)를 말함이니
나도 위선 포함되고 전세계에는 6억인구가 넘는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편안하게 쉬어라.

구름이 다소간끼었는데,
태양을 막아서 어두워진 것 같다.
아폴로는 언제나 활을 쏠려는고,

유년시대(幼年時代)의 황금기는 벌써 지났다.
전기광속(電氣光速)보다 빠른 미터로 언제 올려나
천국의 제7지방(第七地方)에 가서 기도할 때가.

 

 친구(親舊).3
-김치-

매일같이 먹는 김치에는 음식이 섞여든다.
생선(生鮮)도 고기도 적량(適量)껏 들어가 있으니
음식의 백화점이 따로이 없다.

아무리 먹어도 만복(滿腹)도 안된다.
대륙(大陸)을 통체로 자셔도 이렇게는
자양분(滋養分)이 적량(適量)이 되지 않겠다.

식물(植物)도 풀과 이파리니 전체나 마찬가지다.
맛도 미미천만(美味千萬)이니 딴것과 바꾸지 못한다.
우리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시골뜨기가 아니라는
증일(證壹)이다.

 

 요놈 요놈 요놈아!

집을 나서니
여섯 살짜리 꼬마가 놀고 있다.

'요놈 요놈 요놈아!'라고 했더니
대답이
'아무것도 안사주면서 뭘'한다.
그래서 내가
'자 가자
사탕 사줄게' 라고 해서
가게로 가서

사탕을 한봉지
사 줬더니 좋아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

 

백조(白鳥) 두 마리

내게는 백조(白鳥) 두 마리가 있다.
그림이지만 참 좋다.

이유를 밝히면
'시조와 비평'이란 잡지의 창간호
표지에 그려졌는데
표지전체가 녹색이라서
약간 녹색조(綠色調)는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백조는 백조다.

나는 이 그림을 참 좋아한다.
두 마리의 백조(白鳥)는 부부(夫婦)처럼 보인다.
너무나 사이가 좋아서 그런지
두 마리가 다 울고 있다.
기쁨에 못이긴 울음이리라.

 

우리집 뜰의 봄

오늘은 91년 4월 25일
뜰에 매화가 한창이다.
라일락도 피고
홍매화도 피었다.

봄향기가 가득하다.
꽃송이들은
자랑스러운 듯
힘차게 피고 있다.

봄 기풍(氣風)이 난만하고
천하(天下)를 이룬 것 같다.

 

마음의 날개

내 육신(肉身)에는 날개가 없어도
내 마음에는 날개가 있다.
세계 어디 안가본 데가 없다.
텔레비전은 마음 여행의 길잡이가 되고
상상력(想像力)이 길을 인도한다.
북극(北極)에도 가 보고
남양(南洋)의 오지(奧地)에도 가보았다.
하여튼 내가 안 가본 곳이란
없다.
내 마음엔 날개가 있으니까.

 

봄 빛

오늘은 91年 4月 14日이니
봄빛이 한창이다.

뜰의 나무들도
초록색으로 물들었으니
논에 참 좋다.

어떻게 봄이 오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다.

인생을 즐겁게 할려고
봄이오고 꽃이 피는 거다.

 

 

내 방(房)  
    
내 방은
녹색(綠色)장판이다.
책이 한 3백50권되고
또 벽(壁)에 붙인
사진과 그림들이다.
    
녹색(綠色)은 눈에 참 좋다.
그래서 내눈도 참 좋다.
    
내 방은 작지만
그래도 넓어 보이니 어쩌랴?
    
나는 내 방을 사랑하고
방 또한 날 사랑해 준다.

 

유관순 누님
    
이화 학당의 학생이었으니
내게는 누님이 되오.
    
누님! 참으로 여자의 몸으로
용감하였소.
    
일제의 총칼앞에서
되려 죽음을 택하셨으니
    
온겨레가
한결같이 우러러 보오.
    
이제는 독립 되었으니
저승에서도 눈을 감으세요.
    
                    (91년 3.1절에)

 

난 어린애가 좋다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창에서 새
    
어느날 일요일이었는데
창에서 참새 한 마리
날아 들어왔다.
    
이런 부질없는 새가 어디 있을까?
세상을 살다보면 별일도 많다는데
참으로 희귀한 일이다.
    
한참 천장을 날다가 달아났는데
꼭 나와 같은 어리석은 새다.
사람이 사는 좁은 공간을 날다니.

 

꽃 빛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몇일전 간
秘苑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열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방한화(防寒靴)

81년 11월 19일에
난데없는 대설(大雪)이 내렸습니다.
18센티미터나 쌓였습니다.

이날은
내가 서울시내로 안나가는 날이라서
의정부시의 변두리
나의 방에서 지냈는데
그래도 집밖의 변소에는 가야했고
곡차(막걸리)사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같이 마시자고
처남집에도 갔더랬습니다.

18센티미터의 눈은
유감없이 보행(步行)에 곤란했을 텐데
그런데도
나는 태연했습니다.
내게는 방한화가 있어서
아무리 눈속을 걸어도
눈이 신발안에
안들어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親舊).2
-歲月-

세월(歲月)은 흘러서 100년 가까히 됐다네.
오만불손 했던 성격도 맞다네.
죽어도 괜찮다네.

도령(道令)이 천국가까이 왔다네.
오면은 기꺼이 가서 대꾸하리다.
이제도 가히 그 절념시기(絶念時機)가 안온다네.

산복(山腹)에 정좌(靜坐)하여 두고두고 살피니
저쪽 빛깔도 구름까지도 같지가 않니
제 7의 천국이며는 얼마나 좋겠니.

 

 

친구(親舊).1
-히아신스-

섬세하다고  했어도 이리도 갸냘픈가.
사막에서는 명함도 못내 놓겠네.
수분기(水分氣)가 없는 것은 별개(別個)일거야.

여전스레 공기는 열기(熱氣)를 뿜어내고
다 뿜어내면 하늘까지라도 팽게칠 모양이다.
여행객(旅行客)이나 있으면 감상하여마지 않았을 텐데.

원시시대의 원방향(原方響)도 잊어먹었네.
이런 골치아픈 사막에 떨어지다니
원죄(原罪)야, 누구에게 신앙고백을 할까?

 

친구(親舊)

천가(千家)는 우리나라 성(姓)가운데서 쌍놈이다.
화산군(火山群), 천만리공(千萬里公)은 임진왜란때
이여송(李如松)과 더불어 중화로부터의 구원병이다.

20세기의 제2차 세계대전이라면은
미합중국의 맥아더 장군(將軍)같은 존재야.
수군통제사 이순신(李 臣)제독도 못당했을 거다.

그 왜놈의 희로에서 1930년 1월 29일생이야.
참으로 무슨놈의 팔자출생(八字出生)일는지
그러다가 사납게도 수도 동경부 근처로 이사했다.

 

허상(虛像) . 4
-구름-

구름은 백색(白色)이요 비오는 날엔 회암색(灰暗色)이다.
중간치기 색채(色彩)는 없다.
그런데 형태(形態)는 실로 각종각류(各種各類)다.

불교적이 아닐까.
기독교를 닮았기도 할까.
마호멧교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하늘의 높음과 지상평면(地上平面)과의 연합체다.
마음대로 인간을 굽어삼킨다.
외양(外樣)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은 단단할지 모른다.

이것은 아무래도 고체인가 액체인가.
전체로는 고체요 부분으로는 액체다.
기체에 쌓였으면서도 증류수(蒸溜水)인데......

 

 

허상(虛像) . 2
-골짜기-

골짜기의 냇물은 왜 이리도 맑을까......
지금(至今)은 4월초(四月初)라
숱한 꽂봉우리들이 다투어 경쟁하겠네.

무성한 솔나무잎은 온통 푸르고
햇빛을 더욱 받으려고 발돋움한다.
같은 크기 같은 끼리인데도 말이야.

삼림(森林)은 냇물가에 미안하다는 듯이
그저 침묵이고 요동도 안하네.
저쪽 산비탈도 녹화(綠化)시킬 모양인가.

풀들도 일제히 들고 일어선다.
온존이 그윽한 진공기(眞空氣)가 맑구나.
요리조리 골짜기는 맑음에 쌓였다.

 

노도(怒濤) .1

바다의 물결은 파폭(播幅)이 매우 세다.
그 거리도 긴 것 같고
스케일이 세계적이요 우주적이다.

수심은 몇킬로미터나 될까?
요랑할 수도 없다.
생선(生鮮)들도 모른다

노도(怒濤)는 풍속으로 일어나지만은
여러 가지 생명체의 시원체(始原體)인데
그래도 그런 흔적도 없고 아예 숨긴다.

 

어머니 변주곡(變奏曲) . 4

어머니는 앓다가 저 세상(世上)으로 가셨다.
둘째 누이의 이실직고(以實直告)로는
거의 괴로울대로 괴로웠단다.

불행(不幸)한 일이다.
만사에 있어 무사태평(無事泰平)했던 당신께서
임종기(臨終期)가 그랬다니 아들인 나는 쥬피터에게
항의(抗議)하고 싶다.

살결이 다소 나와 닮아서 검었다는 것 말고는
신체조건(身體條件)은 깨끗하셨고 훌륭했었다.
그런데도 그 그런 고달픈 충격의 고역(苦役)이었다니

성서(聖書)의 전면(全面)을 들쳐 읽어도
그러한 대목과 만날 수는 없어도
확실한 사실은 그녀는 천사(天使)의 부흥(復興)이었다는
것 뿐이다.

 

 

어머니 변주곡(變奏曲)

어릴적이었지만은 자가제(自家製) 연날기를 했단다.
유리가루를 연실줄에 묻혀서 날린다.
그러면 5,6세 연령인데도 오십미터 가까이 날아간다.

연날리기대회는 내 고향, 진도에서는 설날인가 했단다.
나는 중학생인 형님과 짝을 지어 관망(觀望)하면서
일심(一心)으로 상대가 될 대항자(對抗者)를 찾는다.

마츰 호기(好氣)어린 짝놈을 찾는다.
전쟁을 걸어오면은 사야한다네.
붙기는 붙었다.

날고 있는 연을 교차해서 대항자(對抗者)의 연을 날리만 이긴다.
벌써 대한자의 연은 바닷바람에 높이도 솟는다.
나는 목을 한참 들면서 꺼질 때까지 바라볼 뿐이다.

그 무렵, 어머니께서 형님과 나의 전승을 기도하면서
집에서 대기하셨겠지만은
그 어머니, 지하(地下)에 계신지 10년도 넘는다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
-生鮮-

천국에 생선이 있는지 없는지 미루어 짐작하라.
고래같은 대어(大魚)는 없겠지만은 돔새끼는 있을 것이다
잡다한 추한 생선은 없으면 좋겠는데......

맛이 좋든 그르든 그 신기함에 환성을 지를 것이다.
대체로 맛이 좋은게 생선이니까.
요리책이나 갔다놓고 이러쿵 저러쿵 아옹다옹이다.

물은 벌써 준비되어 있고 끄집어 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 요리(料理)쟁이는 꼼짝도 안한다.
그저 구경만 하고 춤이나 추라는 것인가......

웬만하면 이젠 구경하는 것도 싫증이 난다.
견딜려니 고역(苦役)이요 악경험(惡經驗)이다.
이만하면 지옥에 가져다 냅다 버렸으면......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
-河口-

최남단인 부상항구, 다대포(多大浦)는
낙동강(洛東江) 하구(河口)요 바다의 접촉점이다.
옛날에는 해상교통사고도 더러 있었다는데......

저쪽 저 멀리에는 일본국이 있을 것이며
안 닿던 곳이 없지 않을까?
런던도 바닷길을 해서 연맹체(聯盟體)일까요.

어디로 가든지 갈 수 있고 또 갈 수도 없다오.
북극(北極)에라도 배만 있으면 가겠다나.
추위가 혹심해서 견딜 수가 없겠구나.

하구는 꽤 복잡다단하다.
내부지밀(內部至密)에서는 고기들의 생식 때문에 바쁘고
외면표피(外面表皮)에서는 양쪽 부유물(浮遊物)들이
논다.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
-냇물가 植物-

냇물가 식물은 꼭 동양(東洋)의 군자와 같다네.
움직일려고 하는데 그것은 물의 흐름 때문이다.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요량할 수도 없다네.
동양의 군자들은 유교(유교)를 선봉했는데,
요것들은 유교(儒敎)라니 턱도 없을 테니,
자기들의 뿌리나 믿는 게  아닐까.

하여튼 바다와 육지가 섞이는 공장이다.
게도 장난삼아 왕래(往來)하겠다.
여양분있는 반식(飯食)이 없나 하고 말이다.

사회계급(社會階級)이니 그런 것이 있을까......
다들 평등해서 착취나 노예도 없을 게다.
군대조직단(軍隊組織團)이니 뭐니 하는 불필요한 것도.

 

노도(怒濤)

황풍(皇風)아래 제철이 한창이다.
굳센 공간상(空間相)이지만은
그래도 일말의 서정미(抒情味)를 풍기는 것은 물이다.

직선형광경(直線形光景)에 저항(抵抗)하는 것은
약하디 약하고 형편없이 무력하기만 한
액체집단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소금은 대지(大地)의 소금이라지
그래도 물속에 있어야만 현상유지다.
바람아 더욱 불어라. 그래야 일요일이다.

 

집.2

가정이라는 것이 화평(和平)할 때는
집이 평화롭고 태평할 때.
나는 시만을 짓고 있어도 될텐데......

나는 유명한 시인으로 자처(自處)하니
건덕지도 없이 오만불손하며
그런대로 가만히 놔 주면 그만이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카들은 아랑곳 없이
나에게만 덤빈다.

어떻게 되는지 이건 내집이 아니야.
그러니 나도 또한 소극적일 수밖에.
조카들아 집과 나를 혼동(混同)하지 말아라.

 

집.1

형님의 집은 부산시 동구 수정4동 97.
크잖고 적잖고 중류의 2층이다.
별불편이 없는 것이 탈이면 탈일까.

다소 높아서 해변항구가 뜰이나 마찬가지.
망망(茫茫)히 넓은 뜰이라서 자랑이다.
일본까지 옆집이나 다름이 없지.

나는 조카들 세놈과 사이가 좋지.
형이나 형수하고는 그렁저렁이지만.
재미도 있고 흥미롭고 귀엽기 짝이 없다.

삼촌인 나는 집도 절도 없는 쌍놈이지만,
조카들은 그런 것 따지지 않는다.
십원이 있으면 인기(人氣)를 끌텐데......

 

 

길.1

옛날에는 도학자(道學者)들이 있어서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니 하여 소풍하였다.
강변같은 명산대처(名山大處)에서 왕초들이었다.

길이라고 어리석게 인식할 것이 아니다.
도대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인지 알똥말똥이다.
옆으로 길다랗다 뿐이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기에도
꾸불꾸불 길을 따라가고,
사람은 버러지처럼 길에 밀착(密着)되었다.

닮은 것은 강이다.
상류에서 하류로 하구(河口)에서 바다로,
다르다면 고기들이 있다는 것 아닌가!

다리를 건너면 도 계속하여 길이니,
길은 이 지상의 왕초다.
해의 궤적(軌跡)조차 자리는 없다.

 

 

소야(小夜)

소야(小冶)는 괜히 고요스레 충일(充溢)하고,
과감하게도 일찍 일어났다.
그러나 어떤 소식(消息)이 없고 보매,
마치 조그만 섭리(攝理)가 어슴프레하다.
기차(汽車)소리 가득히 요란하고
저 기차(汽車)는 언제 서울에서 떠났든가?

 

산소의 어버이께

두분 아버지 어머니 영혼은,
하느님께 인사드렸는지요?
죽은 내친구 인사 받으셨는지요?

생각컨대
어버이님은 아무런 죄 없으시고
착실하고 다투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보다 10년 더 넘게
오래 사셨다 가셨는데
하늘나라서 행복한 초혼(初婚) 영원히 비슷하겠군요.

그저 둘째아들 염려이실테고
요놈이 게으름뱅이 노릇 그만하고
천국(天國) 가까이나 와 주었으면 하시겠지요!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最高)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幸福).

텔레비젼의 희극(喜劇)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행복은 충족입니다.
나 이상의 충족이 있을까요?

 

새벽

새벽에 깨는 나
어슴프레는 오늘의 희망!
기다리다가 다섯시에 산으로 간다.

여기는 상계1동
산에 가면 계곡이 있고,
나는 물속에 잠긴다.

물은 아침엔 차다.
그래도 마다 않고
온몸을 적신다.

새벽은 차고 으스스 하지만
동쪽에서의 훤한 하늘빛
오늘은 시작되다.

 

 

아기비

부실부실 아기비 내린다.
술 한잔 마시는데, 우산 들고 가니
아기비라서 날이 좀 밝다.

비는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맞았겠지.
공(公)도 없고 사(私)도 없는 비라서
자연(自然)의 섭리의 이 고마움이여!

하늘의 천도(天桃)따라 오시는 비를
기쁨으로 모셔야 되리라.
지상(地上)에 물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것을.

 

 

조류(潮流).2

이 조류란 놈의 길이는 얼마만큼 장거리 일까. 폭은 또한 얼마나 될 것이냐.
같은 거리를 시종일관(始終一貫)해서 왕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다. 유역(流域)은
있다. 있기는 있되 어느쪽인지는 도방 알길이 없구나. 꼭 선사기(先史期) 이전의 신화시대
를 눈앞에 방불하는 것 같다. 그 당시의 인물들처럼 똑똑하게 떠오른다. 그러니 그당시의
바다가 똑바로 조류가 아니었드냐. 자기자신의 깊숙한 심정처럼 유쾌하고 선명했을지도
모른다.

 

김일성이라는 새끼

우리나라 신문에서나 방송에서나
잡지에서
'김일성의 독재'라고만 하지
'36년 독재'란 말은 아니 합니다.
감깐 독재라도
호되게 당하는 판국인데
36년이나 혼자세상이었다니
아무리 공산국이라도
이건 역사상 처음 일입니다.

공산국의 독재는 흔해 빠지지만
스탈린의 소련 독재도
30년 정도였는데
36녕이라니
요런 놈은 인간이 아니라
새끼입니다.
말하자면
공산주의의 악독성을 밝히는
포스터같은 짐승입니다.

아들 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니
요놈은
공산주의의 원리조차 모르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진시황같은 욕심쟁이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와야 말이 통하지
요따위 사람탈 뒤집어 쓴
숫짐승하고 무슨말 하시겠다니
우리 전두한 대통령님께서는
너무나 너무나한 나이팅게일입니다.

 

아주 조금

나는 술을 즐기지만
아주 조금으로 만족한다.
한자리 앉아서 막걸리 한잔.

취해서 주정부리 모른다.
한잔만의 기분(氣分)으로
두 세시간 간다.

아침 여섯시,
해장을 하는데
이 통쾌감(痛快感)! 구름타다.

 

 

가 족

우리집 가족이라곤
1989년 나와 아내와
장모님과 조카딸 목영진 뿐입니다.

나는 나대로 원고료(原稿料)를 벌고
아내는 찻집 '귀천(歸天)'을 경영하고
조카딸 영진이는 한복제작으로
돈을 벌고

장모님은 나이 팔십인데도
정정하시고...

하느님이시여!
우리가족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장 마

7월장마 비오는 세상
다 함께 기 죽은 표정들
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

이런날 회상(回想)은 안성맞춤
옛친구 얼굴 아슴프레 하고
지금에사 그들 뭘 하고 있는가?

뜰에 핀 장미는 빨갛고
지붕밑 제비집은 새끼 세 마리
치어다 보며 이것저것 아프게 느낀다.

빗발과 빗발새에 보얗게 아롱지는
젊디 젊은 날의 눈물이요 사랑
이 초로(初老)의 심사(心思) 안타까워라-
오늘 못다하면 내일이라고
그런 되풀이, 눈앞 60고개
어이할거나
이 초로의 불타는 회한(悔恨)-

 

일을 즐겁게

모든 일을
이왕 할 바에야
아주 즐겁게 하자.

일하는데
괴로움을 느끼면
몸에도 나쁘고......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
일의 능률도 오르고
몸에도 아주 좋으니......

그러니
즐거운 마음과
건강한 생각으로 일을 합시다.

 

어머니

내가 40대때
돌아가신 어머니.

자꾸만 자꾸만 생각납니다.
나이가 60이 됐으니까요!

살아계실 땐 효도(孝道)한번 못했으니
얼마나 제가 원통하겠어요 어머니!

사람의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우리는 아껴야 하리.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책미치광이

내 나이 이제 오십한살.
말썽꾸러기 내가
아직 한번도 안했던 자기자랑을
여기 적어 볼까 합니다.
자기자랑은 팔불출이지만
초로의 노인이 된 내가
어찌 불출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국교 이학년때부터
나는 일본서 살았는데
어머니는 나를 '책 미치광이'라 불렀습니다.
미치광이라니 천만의 말씀!
읽어서 큰 공부되고
덕볼뿐만 아니라 재미만점이고
지식과 슬기를 주는 독서가
왜 미치광이란 말입니까!

국교 육년때 일이었는데
일본에서, 나 살던 곳은
치바켄 타태야마시 호오죠 동내였는데
그 역전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었고,
학교 파하면
나는 반드시 거기 갔었습니다.
다닌지 칠팔개월 지난 어느날,
아내하고 두사람뿐인 어른직원이,
목욕하고 온다고 하면서
도서관 지켜달라면서
서적 서가 열쇠를
내게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른은
시립도서관장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국교육년생이
단시간만이라도
시립도서관장 임시대행을
살짝 지냈다는 꼴이 아닙니까?

우스우면 우습고,
맹랑한 시간이었습니다.

 

매일마다 내일

나는 매일 밤마다
내일! 내일 하고 마음 먹습니다.
내일 안찾는 오늘이 없고
오늘없이 내일이 있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70년대때는
80년도에 희망을 걸어왔는데
81년인 금년엔
90년대의 복지국가를 꿀 겁니까?

우리 민족의 선진국발전을
모름지기 희구하여 갈망하는데
나는 구세주(救世主)님과 하느님의 축복(祝福)이
배달민족 온 마음에 비추시기를......

 

 

해변(海邊)

잡다한 직선이 모여 들어야만
이와같은 직평면체(直平面體)가 구성될 성싶은데,
그런 직선(直線)이라고는 도방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가난뱅이 시인이 다소곳하게,
눈꼴 사납게 직선(直線)의 자죽을 찾는 것도 할 수 없다.
저렇게 생기복(生起伏)을 이룬 가면노도(假面怒濤)가 탈이다.
오대양에 비교하면 턱도 없지만서도.

심연(深淵)이란 깊다는 것만이 이유가 아닐게다.
수심이 시꺼멓다고 깊이를 알게 뮈냐.
고심참담(故心慘憺)하게 알필요 없고 필요상 덮어두자.

 

무위(無爲)

하루종일 바빠도
일전한푼 안 생기고
배만 고프고 허리만 쑤신다.

이제 전세계를 다 준다고 해도
할 일이 없고 움직을 수도 없다.
절대절명(絶對絶命)이니 무아지경(無我之境)이네.

도라니 어런 것인가 싶으다.
선경(仙境)이라니 늙은 놈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최고다.

 

무명(無名)

뭐라고
나는 그때
말할 수 없이
저녁놀이 져가는 것이었다.

그 시간과 밤을 보면서
내일을 생각하고 �

출처 : 천상병 시인의 시 모음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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