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인의마을

[스크랩] 시인 천상병 시 모음

 

 

 

 


 

 
 
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
 
 
새 /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약속 / 천상병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톳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갈대 /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추억: 백남옥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갑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행 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푸른 것만이 아니다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듯이 안 보일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삼월 사월 그리고 오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편지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나무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강물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광화문 근처의 행복                                  

광화문에,

옛 이승만 독재와

과감하게 투쟁했던 신문사

그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소설가 오상원은 나의 다정한 친구.

어쩌다 만나고픈 생각에

전화 걸면

기어코 나의 단골인

'아리랑' 다방에 찾아온 그,

모월 모일, 또 그랬더니

와서는 내 찻값을 내고

그리고 천 원짜리 두 개를 주는데---

나는 그 때

"오늘만은 나도 이렇게 있다"고

포켓에서 이천원을 끄집어 내어

명백히 보였는데도,

"귀찮아! 귀찮아!"하면서

자기 단골 맥주집으로의 길을 가던 사나이!

그 단골집은

얼마 안 떨어진 곳인데

자유당 때 휴간(休刊)당하기도 했던

신문사의 부장 지낸 양반이

경영하는 집으로

셋이서

그리고 내 마누라까지 참석케 해서

자유와 행복의 봄을---

꽃동산을---

이룬 적이 있었습ㄴ디다.

하느님!

저와 같은 버러지에게

어찌 그런 시간이 있게 했습니까?  

 

 

 

 

"크레이지 배가본드"                            


 1
오늘의 바람은 가고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

뒷시궁창 쥐새끼 소리같이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2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담배를 빤다.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

우물가, 꽁초 토막...... 

 

 

 

 

구름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 꽃

뭇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없이 목적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上空)수놓네.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기쁨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 제낀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허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생색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같다.   





길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  

 

 



나의 가난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넋                                                          

 

넋이 있느냐 라는 것은,

내가 있느냐 없느냐고 묻는 거나 같다.

산을 보면서 산이 없다고 하겠느냐?

나의 넋이여!

마음껏 발동해 다오.

내 몸의 모든 움직임은,

바로 내 넋의 가면이다.

비 오는 날 내가 다소 우울해지면,

그것은 즉 넋이 우울하다는 것이다.

내 넋을 전세계로 해방하여

내 넋을 넓직하게 발동케 하고 싶다

 

 

 

 

마음 마을                                                          

 

내 마음의 마을을

구천동(九千洞)이라 부른다.

내가 천씨요 구천(九千)만큼

복잡다단한 동네다.

 

비록 동네지만

경상남도보다 더 넓고

서울특별시도 될 만하고

또 아주 조그만 동네밖에 안 될 때도 있다.

 

뉴욕의 마천루(摩天樓)같은

고층건물이 있는가 하면

초가지붕도 있고

태고시대(太古時代)의 동굴도 있다.

 

이 마을 하늘에는

사시장철 새가 날아다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흰구름이 왕창 덮인다.

 

이 마을 법률은

양심이 있을 뿐이고

재판소 따위로는

양심법 재판소밖에는 없다.

 

여러가지로 지적하려면

만자(萬字)도 모자란다

복잡하고 복잡한 이 마음 마을이여

 

 

 

 

새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

이다. 아시지의 성(聖)프란시스코는 새들에게 은총 설교를 했다지만 저

새는 그저 아프기만 한 모양이다. 수백 년 전 그날 그 벌판의 일몰(日沒)과

백야(白夜)는 오늘 이 땅 위에 눈을 내리게 하는데 눈이 내리는데......

 

 

 

 

 

 

천상병 千祥炳 (1930. 1. 29 - 1993. 4. 28)                                                 
 
경남 창원(昌原)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작가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허심(虛心)과 동심(童心)

 


천상병은 새의 시인이다. 허공을 향해 비상하다가 어느 순간 한 점, 소실점으로 사리지는 새. 이 새는 우선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 초월적인 세계로 날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종래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생존의 현장으로 되돌아온다. 그의 시가 자주 죽음을 입에 올리지만, 결코 허무주의의 낙수로 떨어지거나 구차스러워지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천상병은 첫 시집의 표지에 자신의 분신인 <새>라는 표찰을 달아 준다. 또한 그는 '새'라는 제목으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 가운데 1959년 발표한 '새'는 천상병 시인의 출사표라 하겠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 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 시인은 스스로를 태운 재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 전설의 새처럼 죽음 저편의 세상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런데 그 영혼의 빈터에서 노래하는 새는 삶의 외로움이나 쓸쓸함, 그리고 죽음이란 실존적 한계의 비극만을 한탄하지 않는다. 새는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까지도 흥겹게 지저귄다. 살아서 고독했던 세상은 죽어서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에 그는 허심(虛心)과 동심(童心)을 유지할 수 있을 터이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죽음 자체의 의미를 골똘히 관조하는 새, 삶과 죽음의 어스름한 경계 위,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가난한 새, 이 것이 바로 천성병 시인의 자화상이다. 그러기에 그는 '주정뱅이 천사'로서 이 지상에 머물러 천진난만한 삶을 꾸려 갈 수 있었을 터이다.

랭보가 꾀죄죄한 도시형 '잿빛 천사'라면, 천상병은 천진무구한 농경 사회의 '하얀 천사'이다. 그의 대표작인 '귀천'은 천상병의 투명한 시심을 짐작케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삶이 소풍이라는 깨달음은 놀랍다.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올라가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처연한 인식이 돋보인다.

 

모든 삶의 무게를 털어 버리고 깃털처럼 가볍고 이슬처럼 투명해지는 한 마리 새. 그러나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쉽게(?) 삶이 아름답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삶을 긍정하는 그의 해맑은 동공 뒤에 아프게 맺혔을 시인의 고독과 슬픔, 그 뼈아픈 전사(前史)를 떠올리니, 파렴치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무참스럽기 그지없다. (류신/문학평론가)

 

 

 

 

http://chunsangbyung.new21.org/main.htm

(천상병 시인 홈페이지)

 

출처 : 시인 천상병 시 모음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