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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의 영셩

[스크랩] 가르멜의 영성 23

가르멜의 영성

 

박종인 라이문도신부님 [ 가르멜의 영성23]

성녀 예수의 데레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신 것은 하느님 현존수업

(現存受業)이었습니다. 성녀께서는 묵상기도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나는 내 안에 현존하시는 우리의 선(善)이시오 지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앞에 모시고 바라 뵈올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기도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나는 그분을 인간으로서 밖에는 바라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나는 캄캄한 방에 있거나 장님인 것처럼,

그분이 여기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지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꼭 이런 식으로 기도 했습니다."


성녀는 육안(肉眼)으로는 주님을 뵙지 못했지만, 신앙과

영혼의 눈으로는 바라 뵈올수 있었는데, 그 때 막연한 하느님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인성을 취하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믿음으로 바라 뵈온 것입니다.


물론 성녀께서는 초자연적 은총으로 관상의 은혜를 받아 묵상기도보다

더 높은 단계인 주부적 관상에 이르셨지만, 그러한 은혜를 받지못해도

우리는 위와 같은 방법의 묵상기도를 통하여 능동적인 관상에는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동적인, 또는 주부적인 관상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만큼, 원하시는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이지만,

능동적인 관상은 하느님의 은혜와 함께 우리편에서도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능동적인 관상인 묵상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을 강요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요 안에 나를 두고 내 안에 계신 주님과 만나서 정담(情談)을

나누는 것이 묵상기도, 또는 거둠의 기도이므로 우리의 마음을

외계(外界)의 사물로부터 안으로 거두어들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묵상과 묵상기도는 서로 다릅니다. 묵상은 지성, 또는 오성을 사용하여

추리, 생각, 혹은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3인칭으로 「그분」이 되십니다. 묵상기도는

생각이나 추리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장면 안에서의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고 마음이 통하는 맞대면,

즉 인격적인 만남이 마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교황님을 알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교황님의 손을 잡기 위해 아주 가까이 갔다고 하더라도,

교황님의 옆모습이나 뒷모습만 바라보고, 실제로 교황님과

눈이 마주치거나 마음이 서로 통하는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직 교황님을 참으로 만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묵상기도를 하는 목적은 예수님이나 성모님을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나 뵙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많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묵상기도를 제대로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기도는 묵상이 아니고 기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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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르멜의 영성 23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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