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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첫째 주, 첫째 날 /하느님의 충만한 현존

 

첫째 주, 첫째 날

 

하느님의 충만한 현존


시편 139,1-18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

내가 앉아도 아시고 서 있어도 아십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입을 벌리기도 전에

무슨 소리할지, 야훼께서는 다 아십니다.

앞뒤를 막으시고

당신의 손 내 위에 있사옵니다.

그 아심이 놀라와 내 힘 미치지 않고

그 높으심 아득하여 엄두도 아니납니다.

당신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 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어둠보고 이 몸 가려 달라고 해 보아도,

빛보고 밤이 되어 이 몸 감춰 달라 해 보아도,

당신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고

밤도 대낮처럼 환합니다.

당신에게는 빛도 어둠도 구별이 없습니다.

당신은 오장육보 만들어 주시고

어머니 뱃속에 나를 빚어 주셨으니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 몸을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은밀한 곳에서 내가 만들어질 때

깊은 땅 속에서 내가 꾸며질 때

뼈 마디마디 당신께 숨겨진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은 보고 계셨으며

그 됨됨이를 모두 당신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그 단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생각은 너무 깊어 미칠 길 없고,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길 없습니다.

세어 보면 모래보다 많고

다 세었다 생각하면 또 있사옵니다.

 

해설

 

시편 139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통찰들 가운데 하나를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을 ‘신적인 신비’로 체험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시편 작가의 의도를 확실히 알지는 못하고 있다. 이 시편은 감사의 노래일수도 있고 변호하는 노래였을 지도 모른다.

일부 학자들은 우상 숭배 죄로 고발된 어떤 종교 지도자가 이 시편을 썼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이 시편이 비인격적인 용어들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생생한 체험에서부터 이끌어낸 구체적인 이미지들로서 사방 어디에나 언제나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편 작가는 하느님 앞에 서 있다.

시편 첫 몇 행들을 보면 시편 작가는 자신의 오장육부까지 속속들이 꿰뚫어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눈길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한 하느님의 눈길은 자칫 놓치기 쉬우면서도 치명적일 수 있는 병의 증세를 진단하며 꿰뚫어 보고, 조사하며 식별하는 내과의사의 눈길과 같다.

그것은 자기 앞에 서 있는 학생의 감춰진 잠재 능력을 간파하고 실현되지 않은 꿈의 내적인 충동을 정확히 감지하는 경험 많은 교사의 눈길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식을 관조하는 것이며, 사랑의 품 속에서 창조된 피조물을 창조자가 사랑스럽게 알아보는 것이다.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

시인은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있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대기권처럼 하느님은 어디에나 현존하신다. 하느님은 하늘을 날듯이 기뻐할 때만이 아니라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당신 얼굴을 보여 주신다.

하느님은 인생의 고비마다, 그리고 심지어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불충실한 마음 속에도 계신다. 하느님을 피할 곳이란 아무데도 없다.

너무나 엄청난 사랑은 완벽한 응답을 요구한다.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시인은 자기 속을 들여다보며 어머니 태중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생활 속에서도 활동하시는 신비로운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를 경건히 묵상한다. 하느님의 손길은 시인의 인생의 여러 단계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를 누르고 포개고 잡아당기면서 밀가루를 반죽하듯 빚으시고 이 순간까지 그를 인도해 주셨다.

 

기도 안내 : 나의 역사 속에 계시는 하느님

매일기도 양식 :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구하는 은총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는 은총과, 하느님께서 나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수 있도록 기꺼이 마음을 여는 은사를 구한다.

 

기도방법

 

나의 일생을 되돌아본다. 태어나면서부터 현재까지 나에게 일어난 특별한 의미 깊은 열두 가지 사건들을 기록한다(열두 사건들을 기록).

이러한 사건마다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나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 한 가지 특별한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그때를 기억하고 상상력을 통해 그 당시를 다시 생생하게 그리며 그 사건의 현장 속으로 몰입한다.

나는 그 현장 어디에 있는가? 그 날이 무슨 날이었던가? 그때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기쁨? 즐거움? 아니면? 그때 관련된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지금 그대로 재현되도록 한다.

시편 139장을 기도한다. 시편 말씀이 내 안에 듬뿍 스며들게 한다.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하느님의 현존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채우도록 마음을 비운다.

하느님께서 나의 역사 속에 현존하여 계심에 감사드린다.

주님의 기도로 기도를 마친다.

 

기도 후 반성

 

내가 초점을 맞추었던 사건과 기도 중에 체험한 느낌과 성찰을 영적일기에 적는다.

 

 






 


 



출처 : Re:첫째 주, 첫째 날 /하느님의 충만한 현존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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