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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은총의 침묵속에서의 마리아

은총의 침묵속에서의 마리아

서론

 

"때가 찼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셨으니, 그이는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기 위함이었으니 곧 우리가 아들되는 자격을 받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갈라4,4-5).

신약과 교회 역사 안에 나타난 마리아에 관한 초기 관점은 대략 A.D. 57년경에 갈라디아 지방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로의 서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것은 그 후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저술 속에서도 중점적으로 부각되고, 봉헌과 전례 안에, 그리고 교회가 선언하는 공적 가르침과 모든 사람에게 계시된 진실 속에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된 교회 가르침의 기본 노선은 이미 성바울로 서간에서 제시된 것이다. 그것은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아들 안에 아들들로 만드신 하느님 아들의 강생, 죽음, 부활을 통한 신앙의 신비다.

이러한 신앙의 신비는 성삼위(聖三位)의 제2위격인 '여자의 몸'에서 태어날 때 실현되어지고, 제2의 하와인 이 여인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중심적 신비인 새로운 아담에 속한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위치는 우리 구원자인 신비의 심장부에 자리하며,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녀를 통해서 그 아들 안에 계시된 것이다. 마리아는 성령의 힘을 통해서 성부 아들을 잉태한 하느님의 어머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이미 마리아를 그 아들의 어머니가 되는 반열에 둠으로써 그녀는 하느님의 영원한 반열에 들게 되고, 그녀의 존재는 아들의 잉태를 준비함으로써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에 한몫하게 된다. 하느님은 때가 찼을때 마리아를 통해서 역사에 개입하셨고, 마리아는 신약과 구약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 마리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히 진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서 진술된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교회 전통의 내용과 마리아의 근본적인 사도적 증거를 제시하려고 한다(요한17,13참조).교황 비오 12세의 진술은 그가 교황으로 임명되기 전인 1939년 밀라노에서 행해진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첫 번째 사유(思惟)이다. 하느님은 마리아를 사랑하고 그녀를 선택한다. 하느님의 이같은 은총 때문에 마리아는 축복을 받게 되며, 창조주를 위해서 응답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교회는 주의 길의 시작에서 마리아를 택한다."

교황 비오 12세가 정의한 성모승천 교의의 의미는 하늘의 영광 안으로 마리아의 영혼과 몸을 들어올린다는 것이다(munificentissiumus Deus, 1950년 11월 1일).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성바울로의 갈라디아 서간 4장 4-5절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마리아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내용 차례로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서 성모 무염시태(無染始胎) 교의가 정의되고,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서 성모승천 교의가 정의되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교의가 성서 안에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성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회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은 성서에서 발견된 것을 기초로 하며 교회는 굳이 불필요한 것을 고집하거나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가톨릭 교회는 성서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면, 루터교회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성서에서 찾아내고 판단해야 했기 때문에 성서만을 교회의 판단, 규범, 법칙으로 생각한다(고백록 769면 참조). 이와같이 루터교회는 성서의 핵심을 긍정하면서도 '성서'의 의미를 한정된 이해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권위는 교회가 항상 성서를 존중하면서 지속시킨다는 전제 아래 성전과 함께 성서를 신앙의 최고규범으로 간진한다(Dei Verbum 21참조).

'성서는 성전과 함께' 라는 말은 가톨릭적인 성서이해를 아주 잘 대변하고 있다. 하느님은 그 자신을 책 속에서 계시하지 않고 다만 그 아들의 강생의 인격 안에서 계시한다. 지금도 성령의 힘을 통해서 그의 신비체의 교회 안에서 계시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초는 성전과 성서가 증거하는 것으로서 교회의 존속이다.

성전과 성서는 상호 긴밀한 연관을 갖고서 양쪽 다 신적근원을 갖고 갖는다. 성서는 성령의 감도를 받고 씌어졌으며, 성전은 하느님 말씀을 포괄하고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해 침투함으로써 진리의 정신에 의해서 조명된 그들의 후계자에게로 전해진다. 성전은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성서는 하느님 말씀을 사도들의 특별한 설교 방법에 의해서 표현한다. 성전과 성서는 성령을 통해서 교회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그 말씀은 소멸되지 않는다.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모든 것은 하느님 백성의 생활을 거룩하게 인도하고 믿음을 북돋워주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교회는 교리와 생활과 전례에 있어서 교회 자신의 모든 것과 교회가 믿는 모든 것을 항구히 보존하며 모든 세대 사람들에게 전한다"(Dei Verbum 8참조).

마지막으로 사도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성실히 보존하기 위해서 교도권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에게 넘겨준다.

"성전과 성서와 교회 교도권은 하느님의 계획에 의하여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어떤 것도 성립될 수 없으며, 이세 가지가 동시에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하나의 성령의 작용 아래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상호간에 연관되고 결합되어 있음은 명백한 일이다"(Dei Verbum 10).

마리아에 대한 교회 가르침은 이 세 가지 요소-성전, 성서, 교도권-를 통해서 명확히 정의되어지고, 하느님의 계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교회를 자극한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하나의 근원을 가지며, 서로를 각각 대립시키지 않고 상호 완성시킨다. 그것은 어떤 교회의 교의든 '성서적으로 필요하다'는 데서 의미를 갖는다. 즉, 교회의 가르침은 그것이 내적이든 외적이든간에 거룩한 성서 안에(Scripture)그 근원을 둔다. 만약 교회의 가르침이 성서에서설명될 수 없는 경우에는 교회 가르침과 성서 사이의 근본적인 조화는 성전에서 설명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교회 가르침에 대한 성서적 기초가 시도되었던 때를 상기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서의 개별 텍스트가 아니라 기초적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기초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성서적으로 추적하고 성전의 증거를 환기시켜야 한다.

마리아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주된 내용의 하나는 마리아 위치를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즉, 마리아 없이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는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 이면에서는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과장된 표현의 반응이 나타난다. 이러한 반응은 교회의 가르침 속에 드러나지 않고 마리아 신심의 봉헌 안에 드러난다. 마리아 신심에로의 과장된 표현은 사랑이 감성주의에로 깊이 치우친 곳에, 또는 엄숙한 신앙의 견고한 기초를 통해서 종교적 감정이 삭막해진 곳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교회는 헌신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완성을 위해서 지혜에 대한 신뢰를 상기시키게 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의 권고 안에 있는 "마리아의 예식"(1974.2.11)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마리아 신심 속에 나타난 오류를 경고했다. 교황의 주된 메시지는 마리아에 관한 잘못된 상황을 일깨우기 위해서 마리아의 용기, 진실, 그리고 봉헌된 삶을 전하고 있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공경은 교회의 본질적 부분이다. 그러한 공경은 성전에 의해 증거되지만, "보라, 이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루가1,48)하는 말씀은 마리아 자신에 의해서 예언된다.

어찌 되었던 이러한 사실들을 진실하다.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그녀를 특히 나자렛 여종의 위치로서 부각시키며, 그 여종의 위치 안에서 실재를 주장한다. 마리아가 주님과 유일한 관계를 맺듯이, 믿는 자들은 "마리아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와 관련되고 그에 의존한다"(교황 바오로 6세의 마리아의 예식).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아들에게로 그 초점을 두어서 최근에는 기독교 성서학자들도 구원의 역사 속에서 마리아의 위치를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구체적인 역사와 인간의 삶 속으로 침투한 하느님의 실재를 마리아와 관련짓지 않음으로써 육화의 신앙의 위기를 낳고 있다. "누구나 그의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예수에 대해서도 기술할 수 없다"(A. Asmussen).

교회의 가장 최근의 가르침은 하늘 안에서 영혼과 육신이 수용된 성모 마리아의 승천 교의다.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이러한 가르침이 어떻게 그리스도로부터 완전히 이해되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인 육화의 실재로부터 근거해서 정의를 내린다. 그것은 극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자연적이고 구체적인 그리스도 인간성의 신비를 상기시킨다. 그리스도 인간성의 신비는 그리스도를 낳은 여인을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가 그 여인의 필과 젖가슴에서 성장되었음을 말한다(Munificentissimus Deus 43참조).

2. 마리아 교의 차례로

우리가 마리아의 교의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의 영역을 교회의 신앙, 교회의 생활, 교회의 본성 등을 통하여 생각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1. 교회와 신앙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공적인 고백을 '신앙'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교회의 신앙 고백은 세상 마지막날까지 세세대대로 전해온 사도적 가르침에 따른다.

교회가 선포한 최근 두 개의 교의인 성모 무염시태와 성모승천 교의는 교회의 공적인 의미를 아주 명백히 드러내고있다. 교회가 이러한 교의를 선포한 목적은 죄와 죽음을 물리친 하느님의 승리에 영광을 드리며, 시대의 왕으로서 하느님의 아들의 특성 안에 삼위일체의 영광을 드리며, 그 아들의 어머니에게 위대한 영광과 공경을 드리며, 그 아들의 어머니에게 위대한 영광과 공경을 드리며, 가톨릭 신앙을 새롭게 하며, 그리고 전체 교회의 기쁨과 환희를 주기 위해서 교의의 형식으로 정의한 것이다.

랏징거 추기경은 교회의구원자의 어머니를 찬미하는 가장 완벽한 표현의 길로서 성모 무염시태 교의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리스 정교회는 마리아의 무죄성을 마리아 찬미가의 형식 안에 표현하며, 로마 교회는 교의의 형식 안에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교의는 전례의 형식, 즉 신앙의 전례다.

마리아 교의에서 표현된 것들은 다른 모든 교의에도 포함되어 있다. 교의는 현양의 형식이며 우리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께 영광과 권위를 드리는 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에 대한 교회 가르침은 신적 찬미의 형식으로 모든 권위적 가르침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고백, 즉 교회의 신앙은 하느님 자신의 계시를 긍정하고 응답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의 행위다. 우리가 이러한 신앙고백을 통해서 성숙된다면, 믿음의 목적과 신앙의 신비는 흠숭의 행위를 통한 신앙의 변화다. 또한 전례가 모든 흠숭의 절정인 성체봉헌에 이른다면, 그 전에 신앙은 이미 미사 안으로 흡입된다.

교의는 낡은 신앙을 단순히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참으로 새롭게 함으로써 두 가지 방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느님 사랑에로의 신앙을 새롭게 해주는 구체적 응답이다. 그 하나는 우리의 신앙이 불확실하고 무기력하며 부정되어진 곳에 용기와 확실성을 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교의와 교회의 권위적 가르침이 신앙의 깊은 이해 안으로 침투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신앙고백은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살아 있는 하느님을 증거하는 진실이다.

성모승천 교의를 정의한 목적은 전교회의 기쁨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있는 하느님의 표징이다. 최근에 교회가 마리아에게 주는 공경의 환희는 루가복음에서 발견된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초기교회의 공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마리아 교의는 믿은 자들의 마음속에 심원한 기쁨을 안겨줘 교회 신앙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신앙은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전망(vision)에 대한 참여의 일종이다"(Ott, [가톨릭 교의의 기초], p. 23).

2. 교회의 생활

마리아에 대한 교회 가르침이 교회의 생활 속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일차적으로 마리아 교의는 교회의 모든 생활이 본질적으로 마리아적임을 우리에게 재인식시키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반적인 교회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느님으로부터 환대되어진 마리아의 삶은 하느님에게로의 완전한 응답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마리아의 자세는 하느님을 향한 완전한 개방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으로부터 완전히 수용되어졌고, 환대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생활이며 교회의 기본 자세이기도 하다.

이차적으로 마리아 교의는 교회의 생활 속에서 부인의 중심적 역할과 관련하여 교회에 빛을 던져준다. 그러므로 이 교의의 목적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 어머니에 대해서는 공경을 드러기 위함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교의는 교회와 사회 모두를 위해 추진하는 내용을 담는다. 교황 비오 12세는 그의 사도헌장 안에서 성모 승천에 대한 정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성모승천에 대한 정의는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요청으로서,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신비체를 위한 마리아의 모성애를 발전시킨다. 마리아의 교의에 대한 정의는 마리아의 영광스런 삶의 표본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보다 나은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성부의 뜻을 충만시키는 것이며, 다른 이의 행복을 보살피는 것이며, 또한 세상을 영혼과 육신의 현양에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영육승천은 그 교의를 정의할 당시의 유물론적 이론과 대립된 상황 속에서 하늘의 영광 안에 희망을 심어준다. 마지막으로 성모승천에 대한 믿음은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Munificentissimus Deus 47-51참조).

3. 교회의 본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리아론은 교회와 마리아의 주체적 관계를 통해서 잘 보존되어왔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에 대한 어떤 개별적인 칙서를 공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공의회 교부들이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어머니를 교회 본성의 내용으로 택하게 됨으로써 마리아의 위치가 교회헌장 속에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성암브로시오에 의하며, 하느님의 모친은 신앙, 사랑,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를 보여주는 교회의 전형이다(교회헌장).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접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마리아 자신의 본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중점적으로 정의하려고 한다.

교황 비오 9세와 비오 12세는 마리아 교의를 경건한 마음으로 정의하였다. 그러한 정의는 궁극적으로 최고의 교도권의 실행을 선언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성서와 성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가톨릭 주교와 신앙에 대한 동의다. 이러한 동의의 근원은 교회 안의 성령의 현존이다. 그 동의는 단지 인간적 요소나 인간적 힘에 의해서만은 불가능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들에 의해 이루어진 보편적인 동의를 신학의 기술적 언어 안에서 신앙의 의미(sensusfidei)로 표현하고 있다.

"성령의 도유(塗油)를 받는 신도들의 총체는(1요한2,20.27참조)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니, 주교들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심에서 이 특성이 드러난다"(교회헌장 12). (교회헌장 해석자에 의하면 신앙의 의미(sensus fidei)는 교회의 일원이 신앙의 사실 속에 소유하는 감각과 관련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살아 있는 조직이며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의 몸과 영혼은 근본적으로 성령이다. 최근에 마리아의 교의 안에 이러한 교회의 내적 본성이 그 자체로 드러나고 있다.

교황은 새로운 계시를 정의하지도 않고 정의할 수도 없다. 교황은 주교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성실하게 섬기도록 하며, 주교들은 신적 동의와 교의에 대한 성전의 증거를 시험하고 최종적으로 성서적 기본 안에 성전을 시험한다. 주교들은 이러한 교의가 신적 계시의 부분임을 믿고 마지막으로 교도권에 인장을 찍는다. 그래서 그들은 교의가 신앙의 자유에 속한다고 말한다. 성모 승천에 대한 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님의 권위와 사도 성베드로와 성바울로의 권위에 의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에 의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시고 원죄없이 잉태하신 동정녀 마리아가 하늘의 영광에로 영육이 들어올려졌음을 교의로서 정의하며 제정하고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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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은총의 침묵속에서의 마리아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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