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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규만 주교님] 마리아 공경의 구약성서적 근거 2 - 이사야 7,14

1> 2. 임마누엘의 모친(이사야 7,14)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마리아와 관련된 구약의 텍스트는 이사야서 7, 14이다.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시리아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다윗 왕조가 멸망할 위기에 놓인다. 하느님의 말씀이 유다의 왕 아하즈에게 전해진다. 아하즈 왕은 이 예언을 곧이듣지 않는다. 그는 그의 정책 노선을 고집한다. 이사야가 아하즈에게 하느님의 징표를 구하라고 한다. 아하즈는 이를 거절한다.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그 징표를 손수 주시리라고 예언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놓고 많은 논쟁들이 일어났다. 그 논쟁의 중심은 첫째로 히브리어 단어 Almah다. 이 단어는 엄격하게 말해서 처녀를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여인으로 번역될 수 있다. 어떤 독일 신학자(A. Schulz)는 이 단어를 매번 처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브리어와 상당히 유사한 셈족어로 쓰여진 기원전 14세기경의 명판 Ras Shamra에서 새로운 빛을 얻게 되었다. 이 명판의 내용은 Nikkal 이라는 여신에 대한 우가릿 詩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보라, 젊은 여인(galmatu)가 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galmatu는 히브리어 almah와 동의어이다).

 

이러한 사상은 단순히 가나안 지방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중동의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처녀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가 행복한 시대를 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언자 이사야가 이러한 당시의 사상에 친숙해 있었고, 이것을 그의 고유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R. Laurentin의 의견이고 Duncker는 이것을 반대하고, Coppens는 이것을 불확실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예언 자체는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첫째로 다윗왕조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히즈키아(아하즈의 아들)의 탄생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예언자 자신의 아들의 탄생에 관한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떻든 이 예언은 결코 평범한 사건이 아닌 특별한 사건의 색조를 띠고 있다. 즉 일종의 기적적인 증표로 나타난다.  그래서 Coppens는 다른 가능성들을 분석한 다음에, 이 텍스트는 바로 메시아와 그의 모친에 관한 예언이라고 결론짓는다.  한편 J. Steinmann은 문자적으로 이 구절은 메시아적 메시지가 아니고, 오히려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에 관한 메시지로 이해한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에서 메시아에 관한 메시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만일 문자적 의미에서 히즈키야에 관련된 것이라면, 또는 예언자 자신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면 almah는 단순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소녀(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상관없이)를 의미한다. Laurentin 역시 Steinmann과 유사한 의견을 보이고 있다.  Laurentin은 그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이 예언이 직접적으로는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에 관련된 것이지만, 이것은 이차적으로, 종말적이고 메시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종말론적 - 메시아적 의미는 바빌론 귀향 이후 유다이즘에서 발견되고 있다.

 

70인역은 almah를 parthenos로 번역하고 있다. Lauretin은 공적으로 처녀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사실상 almah는 불확실한 용어다. 그러나 이 예언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마태오 복음사가가 자신의 복음(1,23)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라,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는 임마누엘이라 일컬어지리라.

 

마태오는 1,22에서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태오는 almah를 처녀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 사가는 여기서 마리아의 예수 동정 잉태를 선언하고 있다. Laurentin은 마태오에게 영향을 준 이사야서 7,14이 동정 탄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마태오가 예수의 가족으로부터 유래하는 전승을 따라서 이사야의 신탁을 유용하게 이용하면서 동정탄생의 의미를 발굴해 냈다고 주장한다.

 

어떻든 almah는 반드시 처녀를 의미하지 않는다. 처녀를 의미하는 단어로서 betulah라는 히브리어 명사가 있다. almah는 처녀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 하지 않는 젊은 여성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 안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지 정확하지가 않다. 더욱이 almah를 사용하는 성서의 여러 곳에서 반드시 젊은 처녀를 의미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 샘터에 서 있는데, 혼기가 찬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오면, 항아리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해 달라고 말을 걸어 보겠습니다.(창세 24,43-44).

 

그 때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아기에게 젖을 빨리게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유모를 하나 데려다 들릴까요. 파라오의 딸이 그래, 어서 다녀오너라.' 하고 대답하자 소녀는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 왔다(출애 2,7-8).

 

하느님, 당신의 거동하심이 보입니다. 내 임금, 내 하느님의 성소로 오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합창대는 맨 앞에, 현악대는 맨 뒤에, 그 한가운데서 처녀들이 소구를 칩니다.(시편 68, 25).

 

어떻든 루가 복음 1,26-31과 이사야서 7,14을 비교 하면서 계시가 점차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더욱이 루가의 경우는 이사야의 예언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 천사는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 (루가 1,26-31).

 

이러한 비교 속에서 이사야 예언의 almah는 반드시 처녀를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렇다고 처녀임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며, 루가에서처럼 이사야에게서도 동정 모성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두 번째 논쟁점은 signum (표징)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해석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직접적으로 메시아적 징표로 알아듣는다. 다른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메시아적 징표가 될 뿐이라고 한다. 예언은 직접적으로는 아하즈 왕의 아들 히즈키야의 탄생을 내다본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예언은 직접적인 현실성을 뛰어넘어, 미래를 향하고 있으며, 그 완전한 실현은 동정 마리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앗시리아와 전쟁을 할 당시 다윗 왕조의 생존이 히즈키야의 탄생과 더불어 보장되었던 것처럼,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다윗 후손의 영원한 통치가 하느님으로부터 보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사야에 있어서 히즈키야의 모습이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될 때는 양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요.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네가 원수로 여겨 두려워하는 저 두 왕의 땅은 황무지가 되리라(이사 7,14-15).

 

... 아 임마누엘아, 그가 날개를 펴서 네 땅을 온통 뒤 덮으리라. 민족들아, 너희는 결국 실패할 줄 알아라.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사 8,5-10).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 그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 (이사 11,1-9). 

 

루가복음은 예수를 임마누엘,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가 1,32-33).

 

마태오는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 그러므로 적어도 간접적으로 이 텍스트 이사야 7,14은 메시아적 메시지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젊은 여인은 임마누엘의 모친으로서 구원의 중재자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히즈키아의 모친은 그 처녀의 예형이다. 아하즈 왕 때에 일어났던 것이 그리스도의 동정잉태의 신비 안에서 완전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취됨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은 구약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인용: 조규만, [마리아 : 은총의 어머니], 가톨릭 대학출판부, 1998

출처 : [조규만 주교님] 마리아 공경의 구약성서적 근거 2 - 이사야 7,14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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