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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스크랩] 제3장 영성 생활의 첫걸음

 

 

 

제 3 장  영성 생활의  첫걸음

 

 

    우리는 기도와 삶을 통해 조금씩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다. 확실히 하느님은 무한한 분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에 대해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매우 관대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바람에 응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 주신다. 그러면 우선 첫째로 기도에 관해 하느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영성생활의 첫걸음에 잇있어서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과 바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의미에서의 사랑이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계시는가에 관해 깨닫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무한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비하여 무한하신 하느님은 어느 정도의 자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일까?  하느님의 사랑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요한은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재물로 삼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1요한 4,10)라고 말한다. 단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너무나도 깊은 자기불신과 자기혐오가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을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밉기 때문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자신을 참으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의 호의는 물론이고 하느님의 사랑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자,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자. 더욱이 내가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상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또 내가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좋든 나쁘든 하느님은 백 퍼센트 나를 사랑해 주고 계신다. 이것은 주고받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정말로 믿기 힘든 것이다.  이것을 참으로 깨닫는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간단하다.  사랑을 받아 기쁘게 생활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바람도 대단히 중요하다. 즉, 자신이 하느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여러 가지 것들, 예를 들어 일이 잘 되길 바라거나

건강하게 살 수 있길 바란다.  이런 바람은 매우 중요하지만 작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자기 중심적인 작은 바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는 큰 바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인은 어떻게 성인이 되었을까?  그들의 바람이 엄청나게 컸고 동시에 숭고했기 때문에,  그 바람에 합당한 은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 사람의 바람에 합당한 은총을 주신다. 문제는 자신이 하느님엑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바치려는 바람을 가진 사람에게 하느님은 매우 관대하게 응답해 주신다.  가령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바람은  '주님, 영혼들을 구원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양에서 수만 명에게 세례를 준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다. 만일 그가 큰 바람을 갖지 않았다면 성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바람도 좋지만 큰 바람이 자신의 마음에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자.

각자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바람이 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바람을 모른다면 하느님에게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자.  작은 바람밖에 없다면 그 바람이 큰 바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바람이 커지는 것이 영성생활에서 진보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한 바람은 자신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실은 하느님이 당신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거룩한 바람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넣어 주셨다.  그 바람은 당신이 참된 자기 자신이 되는 데 중요한 당신만의 바람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바람을 통해 이 세상 전체를 성화하려고 하신다. 하느님의 이러한 바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래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의 바람을 아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여러분이 이 두 가지(사랑과 바람)에 대해 기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기서부터 영성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볼 내용

    (1)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체험이 있는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삶에서 몇 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큰 체험뿐만 아니라 일상새활의 평범한 사건 안에서도 당신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2) 당신이 참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써보자. 하느님도 그것을 바라고 계신다고 느끼는가?

 

   (3) 당신은 성인이 되고 싶은가, 되고 싶지 않은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묵상 말씀(루가 19, 1-10)

    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자캐오를 보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출처 : 제3장 영성 생활의 첫걸음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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