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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스크랩] 제 15장 영적 자유에 관하여

 

     

     영성생활의 길잡이

 

제15장 영적 자유에 관하여

 

   장에서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에 관해 설명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장에서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제 8장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일생을 좌우하는 결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은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은,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삶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선택은 어떤 것인지, 또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알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모두 그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관해 설명하겠다.

 

   우선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는 자유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케이크나 만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예전부터 만두를 좋아했던 사람은 당연히 만두를 선택할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만두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이 선택은 단지 자신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며, 그에 따라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초이스'(choice)가 아니라 '픽'(pick)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자유롭게 선택하려고 한다면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내적인 자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자유롭게 하느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이 영적인 자유, 즉 이탈의 마음을 하느님에게 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 이냐시오는 이것을 불편심(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태도)이라고 지칭하였다.

 

    이 영적인 자유를 바라는 태도를 성서의 말씀으로 표현한다면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33)라는 구절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른 것은 모두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 즉 영원히 가치가 있는 것은 단지 하느님과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뿐이다.  이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의 이차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을 제쳐 놓고 먼저 하느님의 일을 우선시하는 태도이다.  오로지 하느님의 ㄸ스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영적인 자유이고, 이 영적 자유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게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유로운 선택이란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을 선택하고 반대로 하느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원칙을 실행하면 즉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원칙을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많은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런 영적인 자유를 지닐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만두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만두에 대한 사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만일 만두에 대한 집착보다도 더 강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이제는 만두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유롭게 되는 방법은 더 깊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는 사랑에 의해 커지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의 강하고 깊은 사랑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를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비로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참되게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으로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이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랑을 깨닫게 되고 보다 자유롭게 될 때 자신이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더욱 잘 알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자유인이 되어 간다는 표징이기도 하다. 그때에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욱이 이런 모습과 집착을 없애 주시도록 마음으로부터 진지하게 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일생 동안 힘써도 오나전히 자우롭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집착과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들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할 수는 있다. 인간이 영적으로 성숙해 간다는 표징의 하나는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으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항구한 마음 자세를 통해 서서히 영적인 참된 자유가 성장해 간다.

 

   이런 영적인 자유는 자유로운 선택의 전제 조건이면서 우리의 영적 여정의 목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자유를 늘 청하고, 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 영성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볼 내용

   (1) 당신은 일상생활에서 언제 자유를 느꼈는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2) 하느님이 주신 영적 자유와 일반적으로 느끼는 자유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당신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서 해방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느님께 청하자.

 

   묵상 말씀(요한 8, 31~38)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를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은 우리더러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하시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따졌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노예이다.  노예는 자기가 잇는 집에서 끝내 살 수 없지만 아들은 영우너히 그 집에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에게 자유를 준다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의 후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너희에게 내 말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것을 맣하고 너희는 너희의 아비가 일러 준 대로 하고 있다."

 

-하나후사 류이치로 지음 - 정구현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사-

 

 http://cafe.daum.net/cci2004c

 

 

출처 : 제 15장 영적 자유에 관하여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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