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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1. [마리아론] - 가톨릭 신학과 마리아론 / 최경선 박사(한국마리아학회 연구원)

가톨릭 신학과 마리아론

 최경선 박사(한국마리아학회 연구원)

목차(Contents)

I. 서론
II. 본론
   1. 신학의 성립
   2. 신학의 내용
   3. 마리아론의 역사
      1) 교부 시대  2) 중세 시대 이후의 마리아 신심과 역사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마리아
   4. 마리아론의 기본 교의
      1) 마리아의 동정성  2) 하느님의 어머니  3)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4) 마리아의 승천
III. 결론
* <참고 도서>

I. 서론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자연적 종교심에서 우러난 종교가 아니라, 인간과 현실 세계에 다가오신 하느님의 계시에 입각하여 생겨난 초자연적 계시 종교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알아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그리스도교의 각 교파간에는 서로 대립되는 문제들이 생기고, 간혹 이 때문에 서로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팽팽한 긴장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마리아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마리아론은 우리의 일치를 방해하는 어떤 요소가 아니라, 교회가 오랜 역사 동안 지녀온 귀중한 전통 신심에서 태어났고, 계속 발전하고 있는 한 학문 분야이기에 이 기회를 빌어 그 역사와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전통 신학 역사의 바탕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로서 먼저 신학이라는 한 학문의 성립 과정을 보고, 교회 역사 안에서 마리아론이 생기게 된 경위, 가톨릭교회에서 내세우는 마리아 교의의 배경을 소개할 것이다.

II. 본론

1. 신학의 성립

가톨릭 전통에서 Theologia는 좁은 의미에서 ‘신론󰡑(De Deo)을 가리키고, 넓은 의미로는 계시 진리에 대한 논리적, 체계적 탐구 전반을 가리키는 신학을 뜻한다. 이 단어는 플라톤에게 찬양하는 시를 의미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절대 존재로서 다른 존재들을 설명하는 철학을 의미하였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신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주의 정점으로서 신 개념밖에 없었으므로, 신을 논한다는 것은 곧 우주를 논하는 우주론이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그리스 사상과 혼동을 우려하여 하느님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신학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철학󰡑이라고 하였다. 동방 교회에서 오리게네스가 처음으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인식을 신학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서방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신학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기피해 왔으므로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교 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 후 아벨라르도(Petrus Abelaridus)가 처음으로 학술 용어로서 신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3세기 대학에 신학 강좌가 마련되면서 이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고대 유다교, 곧 구약 시대에는 신학적 탐구의 흔적이 없지만, 그리스도교는 그 시작부터 신학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유다교의 반대와 박해를 받았고, 헬레니즘 사상의 도전을 받았으며, 로마 제국의 의혹과 박해를 받으면서 만인을 위한 보편적 종교로 자처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비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해 주어야 했고, 반대자들의 공격에 맞서 그리스도교의 정당성과 진리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설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해야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선교적, 호교적 탐구가 축적되어 2세기에는 호교론(護敎論)이 주로 성행하였다. 3세기에 와서는 호교론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체계적 논술이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하여 학문으로 시도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종교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4세기부터는 교회 안팎에서 교리 표현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많은 사목자들과 학자들이 4-5세기에 배출되었다. 소위 교부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학의 여러 분야가 발전하였던 것이다. 그 후 시대에 따라 여러 기복을 거치기도 하였지만 신학은 그리스도교적 학문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와 같이 신학이 학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학이 신앙과 이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이성이나 신앙의 진리 근거는 진리 자체인 하느님의 지혜이므로, 한 가지 진리가 다른 진리와 모순될 수 없으며 건전한 이성과 건전한 신앙은 서로 대립될 수가 없다. 반면에 인간의 인식은 반드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모든 학문은 어떤 사물의 결과 또는 현상을 그것의 원인 내지 원리에서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원리에서 현상까지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명백해져야 성립된다. 이렇게 각 학문의 기초 원리는 자명하든지 아니면 그 원리를 상위의 학문에서 얻어 와야 하는데 반해, 신학의 원리는 자명한 명제가 아니고 신앙으로 수용한 계시 진리이므로 신앙에 종속된 학문이다. 따라서 신학은 계시된 사물에 대한 인간 이성만의 철학적 사변이 아니고, 신앙의 빛을 받은 또는 신앙과 결합된 이성으로 계시를 해석하는 학문이다. 신학은 사유의 도구로서 철학을 이용하지만, 이성만으로 종교 현상을 해석하는 종교학이나 종교 철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하느님의 계시를 신앙과 이성으로 해석한 것이 교회의 교리이고, 교리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고 진술하는 것이 신학이다.

2. 신학의 내용

신학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하신 일이 없다면, 종교 현상에 대한 종교학이나 종교 철학적인 분석은 시도될 수 있어도 신학은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세상의 창조를 통하여 특히 이성을 가진 인간의 창조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다. 이것이 ‘자연 계시'인데, 인간은 세상 만물에 담겨 있는 창조주의 뜻을 이성으로써 해득하게 된다(로마 1, 19-20 참조).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피조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인간 역사 안에서 말씀을 통해서 인간화되었다. 하느님의 뜻이 인간의 사고, 언어, 상징, 사건을 통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계시된 것이다. 이것을 󰡐초자연적 계시󰡑라고 하며 이 초자연적 계시의 결정판은 하느님의 지혜요 말씀인 성자의 인간화인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설교와 생애와 업적은 바로 가장 큰 계시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 1-2). 하느님 뜻의 인간화 제2 단계는 이러한 계시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계시를 수용하면서도 이 계시를 이해하여 응분의 대답을 찾는 노력이며, 인간을 구원으로 부르는 은총에 인간이 인격적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 이성이 결합된 행위이고, 하느님의 계시를 인간의 신앙으로 수용하는 데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인격적인 상호 관계가 성립된다. 신앙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맡긴다.

하지만 이성을 타고난 인간은 신앙으로 수용한 계시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더 충만하게 알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으면서도 계시에 대한 지성적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지성적 계시 탐구의 노력을 󰡐신학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신학의 출발점은 근원적으로는 하느님 계시에 있지만, 학문적으로는 계시를 수용하는 신앙의 조명을 받은 지성에 있다.

위에서 말한 내용을 토대로 볼 때, 신학이 추구하는 대상은 계시된 모든 사물이지만, 그 많은 사물 중에서 신학이 찾는 진정한 대상은 신학의 주체인 하느님이다. 그리고 계시된 다른 사물들은 하느님과 관련하여 신학의 대상이 된다. 물론 철학에서도 신을 논하지만 최고의 존재로서 신의 본체나 속성을 이성으로 추구할 뿐이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인격신으로서 하느님을 추구한다.

간단히 말해서 철학은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신학은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인격신으로서 하느님을 추구하는 신학은 하느님이 누구이고, 인간 내지 우주와 어떤 관계를 가지며, 무엇을 행하고,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연구한다. 그런데 하느님 계시의 중심점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인간의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성부에게서 구세주로 파견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단연코 신학의 중심 주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 6)라고 하셨으니, 신학의 내용은 구원 역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구원 역사는 거룩한 전통 곧 말씀으로 기록된 성서와, 말씀으로 기록되지 않고 입으로 전해 오는 전승(傳承) 또는 성전(聖傳)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구원 역사의 전통을 연구하는 것이며, 이 전통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신학의 소재가 된다. 성서는 신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소재이다. 성서는 구원 역사의 기본 흐름을 담은 그릇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는 기록이다. 그리고 성서는 이스라엘과 원시 교회에서 하느님의 계시가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되었는가를 표현하는 가장 귀중한 문헌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서의 내용은 계시이기 때문에, 성서는 어느 한 시대나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는 사료나 근거로서 가치를 능가한다. 성서를 통해서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의 인간들에게 전해진 구원의 메시지이므로, 문헌으로서는 고서(古書)이지만 메시지로서는 만인에게 현재화되어 전해지는 하느님의 자기 표현이다. 신학은 이 성서 주석의 결과를 재료로 하여 그것을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따라서 신학자는 성서를 훈고학적으로만 분석, 연구하지 않고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전통 안에서, 전통에 의하여 음미하고 이해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의 현재적, 실존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전승에 속하는 내용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 첫 번째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교도권자들이 계시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도권이다. 교도권은 ‘통상 교도권󰡑(주교들의 일상적인 가르침)과 󰡐장엄 교도권󰡑(교황과 주교단의 신앙과 도덕에 관한 의도적이고 결정적인 선언)으로 나뉜다.

전승의 두 번째는 전례이다. 전례는 구체적으로 성서적, 교리적 표현과 신앙을 나타내는 상징과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비의 표현이고, 하느님과 인간의 종교적 관계를 설명하며 계시를 행동으로 해석하는 것이 된다.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전례가 거행될 때 그 전례 행위는 교회 전체의 교리적 감각을 드러내고 신자들의 신앙을 표출한다.

세 번째는 교부들의 가르침을 들 수 있다.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인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은총론, 구원론 등을 체계화하면서 전례와 교회 생활의 기틀을 마련한 초기 교회의 목격 증인들이다. 또 그들 대부분이 사목자로 직접 교리 교육과 사목을 하였던 만큼 어떤 주제에 대한 교부들의 일치된 또는 상통하는 견해는 신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교부들 가운데서 4-5세기의 대 교부들의 저술들과 서간들이 많이 전승되었고, 그 논술도 학문적으로 세련되었기 때문에 신학에서 학문적 권위가 큰 편이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역사가 전승 내용에 속한다. 교회의 역사에 등장한 중요한 사건이나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실시된 제도나 중요한 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도 전승의 내용이 된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성령이 교회를 인도하고 신자들의 공통된 신앙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3세기까지 신학은 단일 학문이었으나 14세기부터 신비가들의 영성 체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관조하고 영성적 진보를 도모하려는 ‘신비 신학󰡑과 󰡐영성 신학󰡑으로 분리되었다. 또 13세기부터 사목자들의 고해성사 집전에 참고서로서 인간 행위의 선악을 논하던 것이 16세기에 󰡐윤리 신학󰡑이라는 또 하나의 분과로 분리되었다. 14-15세기의 신학이 어렵고 추상적인 주제에 몰두하여 구세사적 관점을 소홀히 하는 경향에 맞서서 계시의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실증 신학󰡑이 대두되었다.

또한 14세기부터 교권과 속권의 투쟁이 심화되면서 교회 제도를 옹호하는 독립된 교회론이 출현하였고, 종교개혁으로 자극을 받아 교회의 교리나 제도를 옹호하는 호교론이 발전하였으며, 17세기 중엽부터는 교회론을 중심으로 하는 호교론이 하나의 분과 학문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이유 외에 각 분야에 대한 연구가 전문화되고 학교 교육의 편의를 위하여 17-18세기에 와서는 성서 신학, 교부학, 마리아론, 사목 신학 등이 서서히 분립하였고, 20세기에는 복음 선포에 이바지하는 많은 분과 신학이 태동되었다. 이후 우리 논의의 중심 주제가 되는 마리아론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 마리아론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해 연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를 마리아론이라고 한다. 마리아론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신학으로 성립된 것은 16세기 말엽부터 17세기 초엽 사이이다. 마리아론은 현재 독립된 신학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리스도론, 교회론과 관련하여 전개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매우 적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명한 예수님의 어머니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신앙인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지만, 마리아론은 확대, 발전되었다. 따라서 마리아에 대한 교리의 역사적 발전과 그것에 항상 병행하였던 마리아 공경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1) 교부 시대

초기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성서를 해설하면서,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설명하거나 교회 생활과 전례의 신비를 해설하면서 그 내용에 마리아를 덧붙여 해설하며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는 ‘동정성󰡑(παρθενία)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이후 동정성이라는 표현은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호교론의 교부인 성 유스티노는 하와와 마리아를 대조하여 불순명과 순명을 설명하였다. 그는 유다인들에게 동정녀로부터 육화를 구약의 예언(이사 7, 14 참조)이 성취된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리옹의 성 이레네오에게 이어진다. 󰡒하와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 주었고,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이단 반론」, 3, 22, 4). 그에게 마리아의 모성은 교회의 모성과 동일시되었으며, 마리아와 하와의 대조를 마리아와 교회의 유비(類比)로 발전시켰고, 마리아를 교회의 원형으로 제시하였다. 마리아와 교회의 밀접한 관련성은 로마의 성 클레멘스에게서 두드러지는데, 그는 교회를 마리아처럼 동정녀요 어머니로 이해하였다.

니케아 공의회부터 칼케돈 공의회까지 이 시기의 교부들은 특히 새로운 이단에 대한 답변을 마련해야 하였다. 이때 4개의 큰 공의회, 곧 제1차 니케아(325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381년), 에페소(431년), 칼케돈(451년) 공의회가 개최되었는데,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논쟁이 벌어진 가운데 마리아의 신적 모성이 거론되었다.

또한 전례가 정립되어 가면서 마리아 축일들이 설정되기 시작하였다. 에우세비오는 이사야서 7장 14절의 임마누엘 예언과 관련해서 ‘동정녀의 표징󰡑이 바로 구원의 역사임을 밝히면서, 요셉만이 아니라 마리아 역시 다윗의 후손임을 주장하였다. 니케아 공의회의 주역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는 아리우스파(이단)에 대항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강조하는 가운데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ὀκος)라는 호칭으로 언급하였다.

에페소 공의회의 주역이었던 성 치릴로는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모친󰡑(Χριστοτὀκος)이라고 한 주장에 반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주장하였다.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이를 선언했다. 이처럼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그리스도론적 관심에서 논의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이후 8세기까지 교부 시대가 계속되었고, 649년에 열린 라테라노 지역 공의회에서는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이 공식적으로 표명되었다.

유다인과 그리스인에게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진리를 옹호해야 했던 교부 시대에, 예수의 모친 마리아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되기 시작하였다.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관련하여 발전하였는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인성과 참 신성을 드러내고 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를 강조하는 배경도 죄를 제외하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다.

마리아에 관한 교부들의 진술은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진지하게 성서를 숙고하여 찾아낸 마리아와 하와의 대비 관계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독특하게 드러내고 있다. 교부들은 또한 신앙의 차원에서 마리아의 동정성, 신적 모성 등을 받아들인 이후에 논리적인 설명을 통하여 마리아론을 전개하였다. 또한 마리아의 모습은 교회와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중에 언급되었는데, 마리아와 교회의 연결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2) 중세 시대 이후의 마리아 신심과 역사

교부들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마리아의 역할과 그 의미를 점차적으로 발전시킨 이후, 중세는 마리아의 특전과 그 기능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 베르나르도는 마리아의 중재 역할이란 하느님의 모든 은총과 자비가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전해질 수 없는 수로(水路)와 같은 것임을 강조하였다. 12세기 스콜라 신학은 마리아의 무원죄성에 대한 주제를 다시 거론하여 논쟁을 일으켰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계시 진리로부터 시작하여 마리아의 거룩함, 동정성, 존

엄성을 연구하였으며, 둔스 스코투스는 교회가 원죄로부터 보호된 마리아를 선언하려는 것과 관련된 주요 문제들의 신학적 해결을 시도하였다. 1439년 바젤 공의회는 무염시태(無染始胎)를 신앙 조항으로 선언하였지만 합법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였다. 교황 식스토 4세(1471-1484년)는 무염 시태와 관련된 축일을 허락하였으나, 무염시태 교의를 반대하는 입장이 더 많았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는 교부들의 불일치로 무염시태에 관한 문제를 회피하였다.

마리아의 공경에 관하여 종교 개혁자였던 루터나 칼뱅은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성서만으로, 은총만으로, 신앙만으로󰡑를 내세운 루터는 마리아의 중재성을 반대하였다. 종교 개혁자들은 가톨릭 신자들과 논쟁 중에 마리아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하였고, 가톨릭에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마리아 신심이 더욱 확대되었다.

19세기에 새로 창설된 수도 단체와 선교 수도회는 사도직을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역할과 관련시켜 마리아를 사도적 사명의 모범으로 생각하고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마리아를 본받음으로써 사도적 열성을 드러내려 하였다. 또한 라 살레트(La Salette, 1846년), 루르드(Lourdes, 1858년), 녹(Knock, 1879년), 파티마(Fatima, 1917년) 등지의 마리아 발현과 관련된 성지 순례는 신자들의 마리아 공경에 큰 역할을 하였다.

마리아 신심은 1854년 교황 비오 9세의 무염시태 교의 선포로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 이 시기에는 마리아의 중재성과 무염시태가 주요 주제로 제시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서 비롯된 더 진지한 정의를 존중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마리아 연구가 활발해지고,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마리아론의 발전은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국제적 마리아 회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울러 마리아론이 발전되는 데에 도움이 된 또 다른 요소는 신학자들의 연구 모임이었다.

이에 대한 가르침으로서 교황들의 많은 문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리아의 보호 아래 맡기면서 마리아의 도움을 청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과 교회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또한 전례적 공경과 교도권이 승인해 온 전통적 신심 행위의 관습에 대한 지침으로 교황 바오로 6세는 권고 「마리아 공경」을 발표하였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마리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에 대하여 1964년 11월 24일에 반포된 교회 헌장 제8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문헌 외에 전례 헌장 103항, 사제 교령 18항, 선교 교령 42항, 사제 양성 교령 8항, 수도 교령 25항에서도 마리아를 신앙의 모범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리아론과 관련하여 이 공의회의 과정을 살펴보자.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세계의 주교들과 신학자들에게 공의회에서 다룰 주제를 추천하도록 요청하였다. 2,000여 건의 청원 내용 가운데 600여 건이 마리아와 관련된 주제였다. 교회는 1962년부터 많은 연구와 토의 과정, 문항 양식의 수정 과정을 거쳐 그 동안 독립적으로 마리아론을 연구하던 교회의 관습을 뒤엎고 교회 헌장 제8장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이를 포함시켰다.

교회 헌장 제8장은 마리아의 신비를 밝히는 데 각 항마다 본문이나 각주 안에 뚜렷하게 성서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어 그 교리 정립의 근거가 무엇보다 성서적이다. 이는 역사 안에서 처음에는 어렴풋하다가 차츰 명확하게 나타나는 성서의 표징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성서를 임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교부들의 성서 주석과 현대 연구의 확실한 해석 기준을 이용하여 성서 전체를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인간학적 측면에서 마리아를 이해하면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마리아의 순종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마리아론으로 교파간의 대립을 의식하고, 과장되고 감상적인 마리아 신심에서 벗어나기를 권고한다. 무엇보다도 교회 헌장 제8장은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정립함으로써 이전의 공의회와 달리 사변적이고 조직적인 마리아론 논의를 지양하고 교회 전체가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하고 기본적인 교리만을 제시하고 있다. 곧 마리아를 추상적이며 개념적인 신학적 문제가 아니라 이해와 사랑과 공경과 모범의 대상인 하나의 인격체로 다루고 있다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4. 마리아론의 기본 교의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의 주요 교의는,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또한 원죄에 물들지 않았으며 영면 후 승천하였다는 것이다.

1) 마리아의 동정성

가톨릭교회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하여 네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 마리아는 신체적인 온전함을 보존했다는 점. 둘째, 마리아는 예수 탄생 이전이나 이후나 요셉과 성적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점. 셋째, 종교와 신앙의 차원에서 마리아의 동정은 마리아가 하느님께 온전히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넷째, 그러나 그러한 마리아의 전적인 봉헌은 하느님의 강요가 아니라 마리아의 자발적 의지와 동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 등이다.

이에 대한 성서적 근거는 이사야서 7장 14절의 ‘알마󰡑(Almah)라는 단어이다. 알마는 󰡐젊은 여인󰡑이나 󰡐결혼 적령기의 여인󰡑으로 번역될 수 있으나 󰡐처녀󰡑나 󰡐동정녀󰡑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교회는 이 구절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지시하는 만큼 이 구절에 나타나는 여인이 마리아를 지시한다고 보고 있다. 이 구절은 마태오 복음 1장 18-25절에서 다시 상기된다.

루가 복음 1장 26-28절과 34-35절의 예수 탄생 예고는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기 전 약혼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때 마리아는 처녀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적적 사건이었다. 또한 요한 복음 1장 13절의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신자들에 비해 그들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더더욱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동정 탄생으로 추측된다는 점이다.

성서나 교부들도 마리아의 동정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루가 1, 37)는 신앙이 그 기반이다. 그리고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마리아는 이방인의 여신도 아니고, 특히 한 인간인 여성과 신의 성적인 결합으로 묘사되는 이방인들의 신화도 아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교의의 핵심은 온갖 생명과 존재의 창조자요 원천으로서 하느님께서 예수의 인간 실존의 유일무이한 기반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마리아의 동정성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지고한 사랑과 충실성을 드러낸다.

2) 하느님의 어머니

오랜 그리스도교의 신앙 고백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선포하였다. 3세기부터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기도문 󰡒천주의 성모여, 당신 보호하심에󰡓(Sub tuum praesidium)에서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고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교의는 그리스도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육(肉)을 따라서 말씀을 출산한 마리아는 말씀의 어머니이고, 그 말씀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인 것이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하는 칭호는 에페소 공의회에서 교의로 선포되었지만 이 용어는 커다란 논쟁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 칭호는 그리스도론적 논쟁을 위한 것이었지, 결코 마리아가 신성을 지녔다거나 여신이라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에게서 유래한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3)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과거엔 ‘무염시태󰡑로 불렀던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관한 교의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의 회칙 Ineffabilis Deus에서 선포되었다. 이 교의는 오랜 세기 동안 논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신앙 교의의 출발점은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품위가 신성성(神性性)에 비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곧 하느님의 아들이 살「肉」을 물려받고, 하느님의 성령께서 거주하신 그 태중은 무죄하고 흠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여기엔 마리아의 모범적인 신앙을 비롯한 윤리적 덕성들이 가세되었다. 아울러 마리아 축일의 전례와 대중 신심도 이 교의를 선포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 교의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성모 신심과 봉헌에서 출발하여 교부들과 성서로부터 그 선포의 권위를 보호받고 있다. 이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권위에 요구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루가 1, 28)라는 성서적 계시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교의는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 천주교회도 1838년 12월 1일 당시 제2대 조선교구장이었던 앵베르 주교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주보로 인가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자로 이를 허락하였다. 1898년에 명동성당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4) 마리아의 승천

우선 마리아의 승천에 관해서 용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예수의 승천을 상승, 오름, 올라감(Ascensio)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의 승천은 올림을 받음(Assumptio)으로 표현하며 구별하고 있다. 곧 예수의 승천은 능동성을 드러내는 데 비해서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성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승천 교의는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Munificentissimus Deus를 통하여 선포되었다. 이 회칙이 선포되기까지 오랜 세기 동안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논쟁이 있었지만, 일찍부터 있었던 마리아의 축일(마리아의 영면)과 대중 신심과 성인들의 이름을 빌려쓴 작품들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가 크게 작용하였다.

1868년 6월 29일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의 선포에서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을 선언하였다. “교황이 사도좌에서 선언할 때, 다시 말해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요 스승으로서 그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그 최고의 사도적 권위로 전체 교회에서 견지되어야 할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의를 결정할 때,… … 그는 무류성을 소유한다󰡓(DS 3074). 여기서 무류성을 뜻하는 라틴어 Infallibilitas는 󰡐속이다󰡑라는 fallere에서 유래하였다.

Infallibilitas는 속임으로부터 보호를 뜻한다. 따라서 무류성의 의미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류에 빠질 수 없다는 뜻이다. 교황이 무류성을 지니는 것은 모든 신앙인들의 최고 스승으로서 교리상의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이다. 따라서 “교황에게는 무류성이 있다󰡓라는 표현보다 󰡒교황의 교도권 행사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무류성을 지닌다󰡓라고 함이 옳다.

성모 승천 교의는 이러한 교황의 무류지권이 처음으로 적용된 경우이다. 그러나 이 교의는 교황이 개인적으로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청원에 따른 것이다. 마리아 승천은 마리아가 모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예형(豫型)이요, 모범으로서 죽음을 극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리아 현양은 세상 종말에서 교회 현양을 위한 보증이 된다.

III. 결론

신학의 원리는 자명한 명제가 아니고 신앙으로 수용한 계시 진리이므로 신앙에 종속된 학문이다. 그리고 가톨릭 신앙은 바로 이 세상에 인간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신학의 중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된다. 이 구원 역사는 성서와 전승(교도권, 전례, 교부들의 가르침, 교회 역사)을 통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성서와 전승을 떠나서는 신학이 성립되지 않는다.

마리아론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신학으로 성립된 것은 16세기 말엽에서 17세기 초엽 사이이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초대 교회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춘 연구라기보다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를 연구하는 가운데 드러난 내용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믿는 이들의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마리아론은 현재 독립된 신학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리스도론, 교회론과 관련하여 전개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리아 교의는 어느 날 갑자기 발명된 것이거나 어떤 특정한 교황이 무리하게 자신의 무류권을 남용하여 선포한 내용이 아니다. 오랜 기간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비추어, 또 신자들과 교회 책임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룩된 결과이다. 그러나 마리아론도 하나의 학문 분야라고 전제할 때, 더 깊이 있는 연구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실제로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마리아론을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현실과 이성의 빛에 비추어 연구하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교황청 국제 마리아 학술원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관은 1900년부터 오늘날까지 여러 번에 걸쳐 마리아 학술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물론 이 모임의 다양한 주제 속에는 교회 일치와 토착화에 관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4년마다 국제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2004년에는 프랑스의 르 퓌에서 “역사 안에 하느님의 아들을 맞아들인 나자렛의 마리아󰡓라는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국내외에 마리아에 관한 여러 학술 단체와 학교가 있어서, 학문적인 정립을 통해 잘못된 신심이나 불분명한 부분을 그리스도론에 비추어 연구 개진해 가고 있다. 학문으로서 마리아론 발전이 그리스도교의 각 교파간 대화에도 많은 도움을 주기 바라는 바이다. ■

* <참고 도서>

1. Aristide Serra, Maria a Cana e Presso la Croce, Roma, 1991년.
2. Choi Kyong Sun, Inculturazione della Chiesa Cattolica e Piet  mariana in Corea, Dessertationes ad Lauream in Pontificia Facultate Theologica ‘Marianum, Roma, 2001년.
3. Georg Soll, Storia dei Dogmi Mariani, Roma, 1981년.
4. Stefano De Fiores, Maria nella Teologia contemporanea, Roma, 1991년.
5. Stefano De Fiores, “Salvatore Meo, Nuovo Dizionario di Mariologia, Edizioni Paoline, 1985년.
6.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 정승현 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년.
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김영환 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년.
8. “교회 헌장󰡓(1965. 11. 21.), in AAS 58(1966년), 740-744면.
9. 마리아회, 「마리아 사전」, 최정오 역, 서울, 1989년.
10. 오라시오 보호르헤 저, 「마리아의 모습」, 박숙안 역, 서울, 1995년.
11. 이정운, “마리아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신학전망」, 93-97호(1991년 여름 호 - 1992년 여름 호).
12.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서울, 1998년.
13. 한국 교회사 연구소, 「한국 가톨릭 대사전」, 서울, 1985년.

출처 : 41. [마리아론] - 가톨릭 신학과 마리아론 / 최경선 박사(한국마리아학회 연구원)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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