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주, 넷째 날 기쁨의 탄생 루가 1,46-55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해설 그녀의 포기의 삶은 하느님께서 그녀를 끝없는 성령의 기쁨으로 완전히 이끄시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게 하였다. 그녀의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은 그녀로 하여금 약속의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이 찬가는 모든 인류의 가슴에 살아서 완전히 표현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특별히 의도하시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완성된 표현인 기쁨으로 들어가도록 우리의 내면에서 위대한 어머니 정신이 우리 각자를 부른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축복받으려는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규정짓는 일들은 바로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러한 여정이 전개되는 것은 바로 일상적인 일 속에서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생극을 쓰는 것도 바로 일상생활에서이다. 우리들이 겪는 체험들은 무언가 동일한 데가 있으므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일치시킨다. 우리는 남의 체험을 나눔으로써 그 속에서, 그리고 그것과 함께 생활하게 되며 그것으로부터 배우기 때문에, 우리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체험을 넓히고 깊이 있게 한다. 상상할 수 있는 은총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며 확인할 수 있는 진정한 체험을 한다. 특히 즐거운 이야기 형태는 신화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고대에서부터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인 프시케(Psyche)의 인생 여정은 성스럽게 변화하려는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어려움을 묘사하는 데 유난히도 잘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일차적으로 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영혼’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프시케에게 주어진 네 가지 과제에 관한 것이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만일 프시케가 네 가지 과제를 완수한다면 그녀의 애인과 다시 결합하게 될 것이라고 프시케에게 마지못해 약속한다. 그렇게 되면 프시케는 넘치는 기쁨을 맞게 될 것이다. 프시케의 첫 번째 과제는 거대한 더미 속에서 수많은 종류의 씨앗들을 분류하는 것이다. 저녁이 되기 전에 이 일을 끝마쳐야 한다. 프시케는 그 일의 분량에 그만 질리고 만다. 그녀가 그 모든 씨앗들을 분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녀는 주저앉아 버린다. 갑자기 수많은 개미떼가 그녀를 도우러 온다. 개미떼들은 그녀를 위해 서둘러서 부지런하고 정확하게 씨앗들을 분류해 놓는다. 프시케 앞에 놓인 두 번째 과제는 위험한 것이다. 그녀는 심술궂은 숫양들의 황금털을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생각만으로도 주저앉고 만다. 그녀는 강물에 몸을 던져 버리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강가의 갈대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며,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양털을 수집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들은 그녀에게 양들이 지나가는 가시나무 숲에서 양털을 뽑으라고 말해 준다. 그녀는 위험한 양들을 직접 마주치지 않고도 양털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을 알고 마음을 놓는다. 세 번째 과제로 아프로디테는 프시케에게 지옥으로 흐르는 스틱스 강에서 수정잔에 강물을 채워 오라고 이른다. 그 강은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지키고 있으므로 프시케는 공포에 질린다. 그녀는 수정잔을 채우기 위해 강가에 가까이 갈 방법이 도저히 없음을 알아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거대한 독수리가 그녀를 도우러 온다. 그 독수리는 강 위를 날으며 모든 상황을 관찰한다. 독수리는 한 군데에 전심하여 초점을 맞춘 다음 재빠르고 정확하게 홱 날아 내려와 그녀의 수정잔을 쉽게 강물로 채운다. 프시케는 네 가지 과제 중에 세 가지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격노한다! 그러나 프시케가 치루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아프로디테를 위해 미녀가 되게 하는 고약 한 통을 구하러 무서운 저승으로 어두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시 프시케는 주저앉고 만다. 이번에 그녀의 협조자는 정말 놀랄 만한며 완전히 기대 밖의 존재이다. 그녀의 협력자는 생물체도, 어떤 자연물도 아니고 탑인 것이다! 탑이 그녀를 위해 계획을 펼쳐 놓는다. 그녀가 지하 세계로 여행할 때 그것들을 달라고 그녀에게 요구하는 자들에게 주지 말라는 특별한 지시와 함께, 그녀에겐 동전 두 닢과 보리빵 두 조각이 주어진다. 동전은 저승을 다녀오는 통행료로 사용될 것이며, 빵은 저승으로 드나드는 출입구를 지키는 개들을 달래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 수많은 위험한 모험을 이겨낸 후, 프시케는 땅 위로 돌아온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욕심으로 그녀의 성공은 방해를 받는다. 그녀는 그 약이 자기를 위한 약이 아니고 사랑의 여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고약통을 의도적으로 열어본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깊은 잠이 그녀에게 내려 덮힌다. 프시케는 죽은 듯이 보인다. 마침내, 프시케의 연인인 에로스가 그녀를 구출하려고 온다. 그는 사랑으로 그녀에게서 잠을 지워버리고 그녀를 천상으로 날라간다. 그 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때가 되어 그들은 아름다운 딸을 낳아 그 이름을 ‘즐거움’이라고 지으며 어떤 이들은 그 딸을 ‘기쁨’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이 바로 고대 사람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시간이 차자 마리아는 기쁨을 탄생시킨다. 우리는 모두 기쁨을 탄생시키도록 부름을 받았다. 변형시키려는 수고를 충실히 하지 않고는 그리고 지시, 집중, 깨달음과 화해의 과제 없이는 기쁨을 탄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 각자의 가슴 속에는 기쁨이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다. 마리아와 함께, 우리 역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은 설레이기만 합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다. 기도 안내 : 인생의 과제 + 매일기도 양식: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 구하는 은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그리고 마리아의 정신 안에서 강해질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 기도 방법: ‘여러가지 형태의 혼자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중에서 [묵상] 참조. 루가 복음 1장 46-55절에 있는 마리아의 찬가를 조용히 다시 읽는다. 마리아의 포기의 정신 안에서, 성령의 지혜와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한 방향을 잡기 위해 프시케의 여정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의 인생 여정에서 바로 지금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어떤 답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생각해 본다. - 나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 나는 가장 큰 가치관의 혼동을 가져오는 원인(씨앗)을 경험하고 있는가? - 나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 나는 압도당하고 내 감정을 느낄 수 없음을 경험하는가? - 나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 나는 내가 갖는 동기들을 가장 의심하거나 그 동기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경험하는가? - 나는 이 수많은 ‘씨앗들’을 분류하고 정돈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도움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정돈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첫 번째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나는...... 나는 어떻게 나의 내면에서 용기와 능력과 힘을 모으도록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생각해 본다. - 나는 남들에게 언제, 혹은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나의 능력을 포기하고 마는가? - 나의 인생의 어느 분야에서 나의 지위욕, 명예욕, 재물욕, 그리고 지배욕이 탐욕적이고 파괴적인가? - 나는 누구와 권력 다툼을 하는가? - 나는 어떤 종류의 권력을 나의 것으로 동일시하며 또한 그것을 위해 겨루는가? - 어디에서 나는 숫양 같아지는가? - 나는 나의 내면 어디에서 온정을 지닌 권력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가? -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권력을 주장하며, 나 자신의 용기와 담력을 가장 잘 나타내는가? 이 두 번째 과제를 위해,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파괴적이 아닌 방식으로 나의 내면에 있는 권력을 주장하기 위해서 나는...... 인생의 여정에서 내 앞에 놓여진 수많은 가능성들 가운데 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며 선택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생각한다. - 나는 나의 인생의 어느 분야에서 불만과 불평에 빠져 나의 평화와 에너지와 의지를 깨뜨리는가? - 나는 언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떠맡으려고 해서 나의 초점을 기울게 하고 흐트러지게 하는가? - 나는 어디에서 우쭐해지고 과민한 자아 때문에 엉망이 되는가? - 어떤 작은 사건들과 경험들이 내게 기쁨을 주며 나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가? 나의 인생에 어떤 초점을 주려는 이 세 번째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나는...... 하느님의 성령 안에 있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나의 인생 여정에 참여하도록 나는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생각한다. - 교묘하게 혹은 그다지 교묘하지는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참견하고, 지배하고, 간섭하고, ‘해결’해 주는 데 몰두해서 나는 나를 위한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에 집중하는 것에 언제, 어떻게 방심하게 되는가? - 나는 언제 나의 시간과 공간, 재능을 요하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가리지 않고 응함으로써 나 자신의 행복에 반대되게 행동하는가? - 남에게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혹은 지배하고 싶은 나 자신의 욕구로 인해 남들에게는 그릇되게 너그럽고 친절하게 행동함으로써, 나는 언제 나 자신의 내적인 굶주림을 돌보는 데 불충실한가? - 예를 들어 겉모양, 소요물들, 의복, 화장품, 지위, 성취한 일들, 학위들, 성공, 신분, 인기같은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느라 몰두하는 데 바빠서, 나는 언제나 자신을 생명없는 잠으로 빠져들게 하는가? - 다른 사람들의 느낌, 의견, 방식,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것들에 신경을 쓰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생활함으로써, 나 자신의 내적인 정신에 불성실한 때는 언제인가? - 보나 나은 균형과 중심이 잡힌 상태를 향해 이끌리고 움직여 나아가려는 나 자신을 나는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이 네 번째의 자신에 충실하게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나는...... 프시케처럼 나 역시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린다. 마리아처럼 분별의 정신, 권능의 정신, 지혜의 정신, 그리고 신뢰의 정신인 하느님의 성령의 기쁨을 나는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린다. + 마침기도 마리아의 찬가를 나 자신의 기도로 바친다. + 기도 후 반성 기도중에 나의 과제의 일부로서 내 맘속에 떠오른 방향들을 영적일기에 적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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