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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첫째 주, 여섯째 날] 새로운 갈릴래아

첫째 주, 여섯째 날

새로운 갈릴래아


마르코 16,1-8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해가 뜨자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그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 내 줄 사람이 있을까요?" 하고 하고 말을 주고 받았다. 가서 보니 그렇게도 커다란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 갔더니 웬 젊은이가 흰 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보고 질겁을 하자 젊은이는 그들에게 "겁내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하였다.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해설

우리는 어떤 생명을 추구하길래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장소들을 찾도록 강요하는가?

왜 무덤들은 그다지도 우리를 이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가? 모스크바에서는 사람들이 레닌의 무덤을 찾아 순례길을 나선다.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묻힌 왕들과 시인들의 무덤을 경건하게 방문한다. 고대 왕들과 왕비들의 무덤인 피라밋을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방문했다고 할 수 없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그의 남동생인 로버트의 무덤과 함께, 이름 없는 병사의 무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항상 줄을 잇고 있다.

우리는 누구를 찾고 있는가?(요한 20,15)

막달라 여자 마리아, 야곱의 어머니인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예수의 무덤에 갔을 때 그들은 오직 예수를 추모하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을 만났던 것이다!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돌을 어떻게 굴려낼까를 걱정하고 있던 그들은 놀랍게도 그 돌이 이미 굴려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예수의 몸에 향유를 발라 드리려 기대했었는데 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의 향료는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

그 여자들이 계획하고 준비했던 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들이 예상했던 고요함은 천사의 출현과 그의 분명한 지시로 깨어졌다. 그녀들이 그렇게도 조심스럽게 미루어 두었던 애도의 시간은 그녀들이 “가시오”라고 지시받았을 때 갑자기 끝나버렸다. 죽음의 장소는 출현의 자리가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죽음 속에 밀폐되어 계시지 않으며 죽음 속에서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곳을 떠나셨으며 그분께서 그 곳에 계시지 않음은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분이 살아계시다는 엄청난 현실을 깨닫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다. 그녀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살아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지 않을 것이다(루가 24,5). 우리 역시 천사의 전갈을 주의깊게 들어야 하며, ‘갈릴래아’로 가야 한다.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가 찾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던 원래의 장소인 갈릴래아로 부르심은 이제 지시와 약속이 되었다. 우리는 갈릴래아에서 그분의 현존을 가장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간의 화해의 장소이기도 한 갈릴래아는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가능한 평화와 일치의 약속을 이 세상에 상징적으로 주고 있다. 갈릴래야는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오시는 최후의 시간을 특징지어 주는 공동체의 완성이다.

우리는, 부활의 ‘지금’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오시는 시간인 ‘아직’에도 존재하는, ‘중간 사람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갈릴래야로 ‘가고 있는 중’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십자가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는 부활절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셨으며, 숨겨져 계시지만 완전히 드러나시지 않더라도 때로는 경이롭게 현존해 계신다. 믿음 속에서 신뢰하며 포기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큰 과제이다.

부활이 만병 통치약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활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믿는 이들을 구해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고통과 실망과 좌절 한가운데서 악을 이기는 선의 승리를 재확인시켜 주며 확실하게 해준다.

부활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깨닫는 것은 예수의 무덤에 찾아갔던 여인들과 함께 우리의 모든 기대에 어긋나는 것들을 체험하는 것이다. 부활은 우리의 나약함을 노출시키며 우리의 신뢰를 시험하는 두려운 체험이다. 우리 앞에 놓은 가능성에 대한 자각과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 놓여난 권능과 에너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두려움을 뛰어넘어 공동체, 즉 새로운 시대의 갈릴래아를 창조하도록 촉구한다.



기도 안내 : 무덤으로 들어가다

+ 매일기도 양식: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 구하는 은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깊이 나눌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 기도 방법: ‘여러가지 형태의 혼자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중에서 [관상] 참조.

막달라 여자 마리아,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와 함께 예수의 무덤에 간다.

아침이 완전히 밝았는지 아니면 밤의 그림자가 아직도 머물러 있는지에 주의한다. 그 순간, 아침 공기의 따스함 혹은 선선함, 향료의 내음, 그리고 이 작은 무리의 기분을 깨달으려고 하자 나의 감각들이 고조된다.

여인들이 질문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깊은 의문에 잠긴다. 무덤의 돌이 굴려나 있는 것에 놀란 그녀들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반응을 깨닫는다.

여인들과 함께 무덤으로 들어간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깨달음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느끼는 반응을 세밀히 주목하면서 천사와 대화를 계속한다.

여인들과 함께 무덤으로 떠난다. 어떤 질문들, 느낌들, 그리고 희망들이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가?


+ 마침기도

나의 생활 속에서 지닌 질문들과 희망들을 그분께 열어 보이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 기도 후 반성

기도 중에 떠오른 느낌들과 깨달음들을 영적일기에 적는다.  

출처 : [첫째 주, 여섯째 날] 새로운 갈릴래아
글쓴이 : 가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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