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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셋째 주, 셋째 날] 사랑의 얼굴

셋째 주, 셋째 날

사랑의 얼굴


1요한 4,7-19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해설

중세기의 시인 단테가 그의 저서인 ‘신곡’에서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의 산봉우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모든 현실이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신비를 마주치게 되는데 그 신비는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었다. 이 사랑에 의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희미하였다. 시력은 약해지고, 꿈은 시들었고, 눈은 녹아버렸다! 단테는 살아 있는 빛 앞에 와 있었던 것이다.

단테는, 자기의 시력은 약해졌지만, 전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완전함을 나타내는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의 지성은 예리함에도 불구하고, 불가해한 그 무엇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단테는 그 모습 속으로 쓸려 들어갔다. 그는 돌연히 빛에 대해서 맹목적인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의 가장 깊은 존재에 순종하여 단테는 완전한 휴식 속으로, 힘의 리듬 속으로, 그리고 여원하며 항상 새로운 하느님의 사랑의 실체가 지닌 평화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단테는 이제는 다시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자기가 체험한 아픔을 낫게 하는 창조적인 빛에 의해 깊이 감동을 받은 단테는 이제 신비스럽게도 자기가 갈망하던 것의 모습이 되었다.

그에게 변화를 가져온 여행을 끝마친 순간에 단테가 남긴 다음과 같은 절묘한 증언은 수 세기에 걸쳐 우리에게 읽혀지고 있다.


한 번도 삐걱거리지 않은 수레바퀴처럼 구르며,

나의 의지와 소망은 이제 사랑에 의해서 나아가네,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에 의해서.


단테는 천국을 맛본 것이다! 그의 앞에 펼쳐진 모습은 사랑의 모습이었다. 엄청난 선물인 이 단테의 증언은 우리가 우리의 내면에서 발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의 잠재능력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보물을 용감히 찾아나서도록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되찾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하느님을 보겠다는 갈망은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인간의 가슴이 지닌 최대의, 가장 굽히지 않는 열정이다. 단테의 힘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인간의 제한된 힘으로는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타고난 갈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단테의 힘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닌 가장 큰 힘은 홀로 권능이신 분에게 굴복하는 데 있다. 이 힘은 사랑이며,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자신이 보았던 빛에 의해 꼼짝 못하게 된 단테는 그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의 얼굴,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의 말씀을 본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그분의 탄생,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적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의 윤곽을 본다.

이 경이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들의 말과 행위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다시 인간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처럼, 우리 역시 사랑의 포옹 속에 낳아지고 안겨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와 같은 기쁨과 확신의 빛 속에서, 두려움은 그 힘을 잃게 되며 더 이상 강한 세력을 뻗치지 못하게 된다.

사랑의 목소리는 우리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위대함과 자비로움을, 마치 보석의 면들처럼 드러내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공동체를 창조하고자 하는 완전한 사랑의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게 한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는 것이 드러나는 곳에서는 매일매일이 성탄절이며, 언제나 부활절이 계속된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그 어떤 것도 감히 무릅쓸 각오를 갖고 사는 삶은 ‘단테’의 체험, 즉 보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 증명되는 곳인 하나의 ‘신곡’이다.



기도 안내 : 사랑의 선언

+ 매일기도 양식: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 구하는 은총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여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과 봉사 정신으로 그분께 응답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하느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예민하고 내밀하게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 기도 방법: ‘여러가지 형태의 혼자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중에서 [묵상] 참조.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특별하며 완전하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요한의 선언인 요한1서 4장 7-19절을 묵상하는 자세로 읽는다.

단어와 구절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도록 때때로 쉬어 가며 천천히 읽는다. 생각이나 느낌이 마음속에서 깊이 공명할 때, 그것이 완전하게 나의 존재 속으로 파고들도록 그 생각이나 느낌과 함께 머문다.

단어들을 음미한다. 대화를 하듯이 진실하고 자연스럽게 응답한다.


+ 마침기도

다음의 기도를 바친다.

“주여,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 기억, 이해 그리고 나의 모든 의지를, 내가 갖고 있고 내것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셨습니다. 주여, 나는 당신께 이 모든 것을 돌려드립니다. 모든 것이 당신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제게는 오직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기도 후 반성

기도 중에 떠오른 느낌이나 깨달음들을 영적일기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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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셋째 주, 셋째 날] 사랑의 얼굴
글쓴이 : 가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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