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주, 첫째 날
부활절의 어린이
요한 3,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해설
부활절은 어린아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린이의 이미지보다 더 적합하게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계속되는 탄생과 은총과 노고를 보다 더 파격적으로 말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서부의 화가인 테드 데 그라지아의 그림 중에는 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이 있다. 그 아이로부터 밝은 빛의 영기가 발산되며 그 아이의 작은 머리에는 지구 모양의 관이 씌어져 있다. 아이는 무덤처럼 생긴 성전 한가운데에 촛불로 둘러싸인 제단에 있는 왕좌에 앉아 있다. 그곳은 온통 수많은 색깔의 꽃으로 덮여 있다. 무덤은 어린 여천사가 지키고 있다.
테 그라지아의 부활에 대한 예술적 표현은 신선하고, 즐겁고, 예언적이다.
예술가의 눈을 통해서 우리의 시야는 매혹당하며, 또한 우리의 인생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의미를 잘 깨닫도록 인도된다.
부활의 상징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사용함으로써, 테 그라지아는 재생적이며 아픔을 낫게 하는 그리고 힘을 주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주기, 즉 하느님 사랑의 주기를 우리에게 완성하여 보여준다. 우리는 말구유로 다시 돌아가도록 인도된다. 우리는 동굴의 짚단 위에 눞혀진 하느님의 외아들인 아기 예수를 보게 된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기쁨을 노래하는 천사들의 노래가 들린다. 테 그라지아의 부활절 어린이에 대해 숙고해 보면, 우리는 다른 아이, 다른 아들 생각을 하게 된다. 불을 지필 장작을 등에 짊어지고 산 위로 올라가는 이사악의 모습을 우리는 거기서 본다. 자기의 외아들을 잃게 된다는 생각에 매우 괴로워하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는 우리의 가슴은 눈물로 가득 찬다.
그 다음 우리는 또 다른 아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 서 있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외아들을 내어주셨을 때 어떤 심경이셨을까를 우리의 전 상상력을 동원하여 상상해 본다. 아마도 하느님의 눈물을 상상하는 가운데서만이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깊이를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탄생이 이루어진 동굴과 새로운 부활절 생명이 이루어진 무덤은 분명한 사랑의 주기를 형성한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이 지속적인 작업에서 생성되는 사랑의 에너지는 생동하는 우주의 원리이다. 각 창조물의 미립자들이-그것이 아무리 미소할지라도- 이 생명의 에너지를 풍부히 지니고 있다.
모든 창조물이 이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나선형의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다. 내면으로부터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며, 이 하느님의 작업을 나선형으로 움직여 나간다. 태양과 달, 여성과 남서, 두 극단들의 춤은 창조의 음양의 리듬에서 섬세하게 화합하고 있다. 이 계속되는 하느님의 역사에는 시작도 끝도, 여지도 한계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돌고 돌며, 부활절의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주시며, 사랑으로 작업하신다.
하느님 자신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그 중심이 어느 곳에나 있고 그 둘레는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원이다!”
기도 안내 : 역사하시는 하느님
+ 매일기도 양식: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 구하는 은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깊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 기도 방법: ‘여러가지 형태의 혼자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중에서 [묵상] 참조.
나를 위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며 작업하시는 가를 생각해 본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된 모든 만물 안에서 작업하시는 분답게 어떻게 행동하시는가를 생각한다. 하늘과 땅과 식물들과 동물들을 생각해 보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보존하시며, 발육하게 하시며 감각을 주시는 가를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나의 내면에서 어떻게 작업하시는 가를 생각한다. 내가 삶에 고전하고 있을 때, 마치 어머니나 아버지처럼 하느님께서 관여하시는, 내 인생에서의 구체적인 상황들을 상기한다. 마치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도자기공처럼, 마치 아기를 낳는 어머니처럼, 마치 죽은 뼈 속으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전능한 에너지처럼, 창조주께서 어떻게 내 안에서 작업하시는 가를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생명과 사랑을 나와 함께 나누시려고 어떻게 작업하시는 가를 생각한다.
나를 위해 하느님께서 지니고 계신 사랑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태어나시도록 인도했으며 부활이 지닌 새로움을 가져오기 위해서 어떻게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했는 가를 생각한다.
그러한 사랑 앞에서 나는 나의 전심을 다해 응답하기를 갈망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여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 기억, 이해, 그리고 모든 의지를, 내가 갖고 있고 내 것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셨습니다. 주여, 나는 당신께 이 모든 것을 돌려드립니다. 모든 것이 당신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오직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기도 후 반성
기도 중에 떠오른 느낌과 깨달음을 영적일기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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