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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섯째 주, 셋째 날] 금실

여섯째 주, 셋째 날

금실


갈라디아 5,1.2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해설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어야 할 것인가? 햄릿의 탐구적인 독백의 핵심에는 자유에 대한 추구가 있다.

인간의 가슴이 지닌 굶주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자유이다.

이간의 가슴이 지닌 희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 역시 자유이다.

 

자유는 인간 정신의 본질 그 자체, 즉 “내면에 있는 거룩한 이미지의 특별한 징표”이다. 자유는 하나의 정신으로서 모든 진실함과 기쁨이 밖을 향해 그리로부터 빛난다. “오직 자유 안에서만이 ‘인류’는 그 ‘자신’을 선을 향해서 인도할 수 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이 세상 앞에서의 진시로가 사랑의 궁극적인 자세이다.

우리가 만약 자유에 대한 완전한 존엄성을 갖고 생활한다면, 그에 따라서 우리의 결정이 “맹목적인 내적 충동이나 또는 단순한 외적 압력에 의한 결과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성령으로부터 조언을 구하고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모든 우리 인생의 선택과 결정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의존한다는 예리한 깨달음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또한 그 깨달음으로부터 지어진다. 성령이 지닌 강력한 에너지는 마치, 우리를 온화하게 그리스도의 지혜와 용기와 접촉하도록 해주며 그리고 그것들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금실과 같다. 자유롭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자유 안에서 생활하는 것은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노예이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외적으로 노예라는 것이 반드시 내적인 구속을 의미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외적인 자유가 내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자유나 노예임을 결정해 주는 요인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믿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이 개인적인 신뢰가 담긴 반응의 깊이는 우리의 내면에 살아 있는 성령의 에너지로부터 그 힘을 얻는다.

우리의 내면에 살아 있는 성령으로부터 멀어져서 생활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어떤 노예상태는 쉽사리 알아볼 수 있다. 즉 발목이 쇠뭉치와 사슬로 묶여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 어떤 중독에 빠져 그것의 노예가 된 경우도 찾아보기 쉽다.

노예상태는 지독하며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자체로는 ‘좋은 일’ 일지라도, 그것이 성령과 멀어져 있으면, 마치 쇠뭉치와 사슬처럼 노예를 만든다. 때로 교묘해지고 숨기려하는 것은 노예상태를 나타내 주는 성격으로서 그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무질서하고 핵심이 없는 동기에서 나온 그 어떠한 행동이나 태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거부하도록 부르시는 노예상태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대단히 유혹적이며 생명이 위협당할 가능성이 있다. 진실로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과 자기 이익만을 위하므로 결과적으로 파괴적인 것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때가 많다.

 

우리는 좋은 의도를 지닌 사람들이 그 좋은 지향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까지도 병들게 하고 또한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경우도 있음을 안다. 시초에는 좋은 뜻을 가지고 시작했었던 그들은 어느 사이에 탐욕과 욕망과 야심과 불안감 때문에 꺾이고 말게 된다.

 

 공포의 아우슈비츠에 갇혀 있던 어떤 사람들은 부와 권력에 빠진 월스트리트 사회의 어떤 부유한 간부들보다 더 깊은 자유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서방세계의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은 그릇된 자유가 지닌 위험과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경악할 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바울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확신을 주고 있다.

“성령께서 지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탐욕에 굴복하지 마십시오.”(갈라 5,16)



기도 안내 : 분별

+ 매일기도 양식: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 구하는 은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자유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 기도 방법: 결심 - 성령 안에서 결정하기

시작: 결심

우리는 모두 우리의 내면에 느낌과 자극과 갈망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일들을 구분하려고 노력할 때, 특히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에 직면할 때, 우리는 때때로 혼란에 빠져 들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내면에서는 자문 자답이 계속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렇게 하는 게 좋을꺼야.”

“그렇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난 할 수 있어.”

“만약 실패한다면?”                    “내 생각엔 하느님께서 날 위해 이걸 원하셔.”

“난 부자가 되고 유명해질까?”          “그렇게 되면 좋을텐데.”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야.”             “겁이 나는데.”


이런 종류의 대화는 우리를 마비상태에 빠지게 하기 쉽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미로를 빠져나와 성령과 함께 진실로 조화를 이루는 결정에 도달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의 내면에서 체험하는 자극이 그리스도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혹은 어두움과 악마의 정신에서 오는 자극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차이점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선한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파격적인 신뢰를 요구하는 자기 희생을 수반하므로 그것은 우리에게 매력적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반면에, 어두운 정신은 종종 밝음으로 위장하고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성령의 활동에 의한 신심깊은 결심은 우리의 성장과 건전함을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가 점차적으로 보다 더 성령 안에서 생활하게 되면, 이 ‘결심하기’는 중요하게 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더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선택하기가 흑백으로 분명했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더욱더 세밀해진다. 선택은 더 이상 선이나 악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더 큰 선인가 아니면 더 작은 선인가에 대한 문제가 된다.

이냐시오 성인은 모든 사물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우리가 변함없이 노력하도록 돕기 위해 그는 ‘결심’이라고 부르는 기도와 심사숙고 훈련을 제시한다. 이것은 이냐시오 성인이 쌓은 가장 두드러진 공적 중의 한 가지이며, 기도 훈련의 전체적인 계획이 지닌 변화 동력을 소규모로 간직하고 있다.

결심훈련을 평소에 자주하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가장 깊은 열망과 사랑에 의거하여 자각을 갖고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결심하기’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과정: 결심을 통한 결정짓기


* 준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1요한 4,16).


사랑이신 하느님, 당신은 선하게 되라고 저를 부르십니다. 당신께서 항상 저의 삶에 현존해 계시며 저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계속 활동하고 계심을 제가 깨닫게 하소서.

저를 위해서 당신께서 소망하시며 계획하시는 것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는 지금 저와 함께 하소서.                                               (결정할 일을 밝힌다).

바라옵건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 순간, 결정하는 과정을 방해하거나 굴절시킬 수도 있는 장애물이나 집착, 또는 의존하고 있는 것들에서 제가 자유롭게 하소서.


* 기도


하느님은 빛 이십니다(1요한 1,5).


사랑이신 하느님, 제 가슴을 열어 주시어, 저로 하여금 제 안에 있는 당신의 성령의 지시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제게 말씀하시려고 당신께서 그 어떤 방법을 선택하시던지 제가 그것에 마음을 열게 하소서. 이 결정에서, 당신께서 저를 인도하려고 사용하시는 도구일지도 모르는 사건들, 사람들, 기억들, 그리고 느낌들에 제가 주의를 기울이게 하소서. 오 하느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데 가장 그리스도적이며 이타적이 될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

하느님의 성령이시여, 들을 수 있는 지혜와 볼 수 있는 빛을 제게 허락하소서.


* 증거 모으기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1요한 1,1).


사랑이신 하느님, 이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게 필요한 자료와 증거를 보다 깊이 깨달을 수 있게 하소서.

제 스스로에게 적절한 질문을 제시할 수 있도록 그리고 관계가 있을 법한 그 어떠한 정보도 마음을 열고 듣고 볼 수 있도록 제가 완전히 정직하게 하소서.

가능한 질문들:

- 이 아이디어는 어디서 생겨났으며, 무엇이 그것을 자극했는가?

- 진실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내가 알 필요가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은 무엇인가(즉, 개인적 재정상의 경비, 위치, 역사와 진로 기록, 위험 혹은 예측 가능성, 장래의 잠재 가능성, 관련된 인명수, 사회적 관계, 관련된 감정)?

- 앞에 놓은 이 결정이 나의 인생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행동양식과 현재 내가 당면해 있는 의무와 삶의 상태에 어떻게 일치하는가?


* 중심점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1요한 3,18-19).


사랑이신 하느님, 이 결정의 기초가 되는 문제들을 제가 알게 하소서. 제가 그 문제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우선하는 순서대로 그것들 과감하게 평가할 수 있는 용기를 제게 허락하소서.

저를 부르시는 당신의 가장 깊은 부르심을 그 결정 안에서 자유로이 볼 수 있도록 진실의 명확성을 제게 내려주소서.                                               (이 결정에 관련된 기초가 되는 주된 문제를 밝힌다.


* 기도 명상 : 과도한 집착


우상을 멀리하십시오(1요한 5,20).


사랑이신 하느님, 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의 자유를 막을지도 모르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 어떤 집착과 의존하는 것들이 저를 위한 당신의 소망으로부터 저를 가로채고 비껴가도록 하는 가를 제가 분명히 알게 하소서.

지혜로우신 하느님, 제가 저의 생활에서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에서 오직 당신에 의해서만 인도되기를 소망할 힘을 허락하소서.


* 고찰: 내가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들이 이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가?

- 가족과 친구들과 사회적인 상황에서 격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나의 결정에 자극이 되는 경향이 있는가?

- 나는 어떤 특별한 집이나 교회, 장소에 심하게 집착하고 있는가?

- 나는 나 자신의 안락을 희생하기를 주저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인가?

- 성공, 성취, 위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 지나친 감정이 얼마나 큰 요인으로 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가? 즉, 두려움, 분노, 열광 등....


* 기도 명상 : 성령의 시험


사랑하는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1요한 4,1).


창조주이신 하느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금 저는 제 앞에 놓인 대안들에 관련된 장점들과 단점들을 적어 놓고 그것들을 신중히 생각해 보고자 하오니 저와 함께 하소서.

대 안 1

대 안 2

장점

단점

장점

단점

 

 

 

 

사랑이신 하느님, 제가 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당신께서 저를 이끌어 주고 계심을 압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심을 감지하게 하소서. 저를 위한 당신의 소망을 알게 해주는 위로와 무미건조함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자각을 높여 주소서.

저를 이끌어 주는 당신의 위로를 조화와 평화와 만족 속에서 알아보게 하소서. 당신의 위로에 따르는 힘과 용기를 복돋워 주는 영감 속에서 당신의 현존에 제가 응답하게 하소서.

하오나 나의 하느님, 동시에, 당신의 소망에 반대되는 대안을 제게 보여주는 황폐함의 징표들을 알아볼 수 있는 예리한 지각력을 제게 허락하소서. 두려움과 불안, 답답함, 조바심, ‘부풀어 오른’ 흥분, 낙심, 소외감, 메마름, 그리고 열정의 결핍과 같은 무미건조한 감정들 속에서 제게 가장 이익이 되지 않는 그리고 저를 위한 당신의 계획에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저를 멀어지도록 이끌어주시는 당신의 단호하고 끈기있는 손길을 제가 체험하게 하소서.

거룩하신 하느님, 위로와 황폐함 속에서 저를 이끌어 주셨던 당신의 현존을 경험하며 결정을 내렸던 지난 날을 제게 상기시켜 주소서. 그때의 은총을 지금도 제게 허락하소서.

하느님의 성령이시여,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이 행동 안에 함께 하소서.


* 지시 : 성령을 시험하라


당신의 생활에 나타난 하느님의 특별한 활동양식을 민감하게 감지하기 위해서, 위로와 황폐함의 움직임이 따르는 결심을 했던 지난 날을 상기한다.

현재의 결심을 하는 작업에서 당신 앞에 놓인 대안들을 각각 분리해서 생각한다. 각 대안을 택해서 상상 속에서 각본을 꾸며 본다. 각 대안에 따르는 감정들의 움직임을 지각한다. 성령의 움직임과 결정 방향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서 각본 하나하나를 가지고 하루 또는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선택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신 성령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진실하시며 거짓말을 하시지 않습니다(1요한 2,27).


창조주이신 하느님,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합니다.

                                              (선택한 대안을 서술한다). 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셔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를 지탱하여 준 인내와 끈기와 은총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하느님, 결심을 해야 하는 동안 제가 받은 진실과 깨달음과 명확성에도 역시 감사합니다.


* 확인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압니다(1요한 3,24).


언제나 충실하신 하느님, 만약 저의 결정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당신께서는 외면적, 내면적인 수단을 통해서 확인시켜 주시리라는 것을 믿으며, 제 결정에 의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만약 제가 확인을 받지 못한다면, 결심하는 과정을 기꺼이 반복한 의욕을 제게 허락하소서.


* 심사숙고


내면적인 확인은 계속되는 위로의 감정-평화, 불아으로부터의 해방 등등-에서 볼 수 있다.

외면적인 확인은 그 때의 상황과 인생의 상태와 개인적 그리고 공공의 의무가 서로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데에서 알아 볼 수 있다.


* 결론


거룩하신 하느님, 제 자신 안에서 우주와 당신과 함께 통합되고 조화를 이루도록 저를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제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상황들 내에서 계속 보여주시는 당신의 충실한 사랑에 기쁨을 느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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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섯째 주, 셋째 날] 금실
글쓴이 : 가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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