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天主敎會史
― 韓國天主敎會史에서 보여준 순교자들의 모습들 ―
2. 이도기(李道起) 바오로의 순교
※ 같은 해(1797년)에 공주(公州)의 충청감사(忠淸監司) 한용화(韓用和)가 도내(道內)의 모든 수령(首領)에게, 천주교인들을 체포(逮捕)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천주교를 없애버리라는 명령(命令)을 내렸다. 이 난폭(亂暴)한 조치(措置)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체포(逮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느님만이 그때 당신 영광(榮光)을 위하여 고통(苦痛)을 당한 이들의 이름을 아신다. 그 시대의 기록(記錄)은 그 순교자(殉敎者)들 중 한 사람, 가장 유명하였던 이도기(李道起)바오로의 이름과 행적(行蹟)밖에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① 충청도(忠淸道) 청양(靑陽)고을에서 태어난 이도기(李道起) 바오로는, 글은 배우지 않았으나 성령(聖靈)의 학교(學校)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德行)을 진정(眞情)으로 실천(實踐)하는 일을 배웠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재산(財産)을 모두 외교인(外敎人)을 입교(入敎)시키는 데에 썼다. 그의 열성(熱性)은 우리 성교회(聖敎會)의 원수(怨讐)들의 주의를 끌게 되어, 대여섯 번이나 이사(移徙)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얼마 안 있어 열심한 천주교회가 되었다.
마침내 그는 정산(定山)고을(지금의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어떤 옹기공장에 가서 자리를 잡고 조그만 장사로 살아갔다. 그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외교인(外敎人)이었으므로, 그는 그들에게 참 하느님을 알리는데 전심(全心)하였고, 그 일에 크게 성공(成功)하여 잠간사이에 온 마을 사람들이 입교(入敎)하였다.
② 감사(감사)의 명령(명령)이 내렸을 대에 그 근처에 살던 金이라는 한 외교인(外敎人)이 이도기(李道起) 바오로를 천주교인들의 두목으로 고발(告發)하겠다고 위협(威脅)하였다. 李(道起) 바오로의 아내는 겁이 나서 그에게 도망(逃亡)하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하느님의뜻을 어기고 또 그를 신임(信任)하고 있는 신입교우(新入敎友)들을 걸려 넘어지게 할까 두려워 거절(拒絶)하였다. 그는 다만 천주교 서적(書籍)과 성물(聖物)을 감추기만 하고 기다렸다.
③ 6월 8일(1797년) 그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 그의 집 정원의 울타리너머로 그가 집에 있느냐고 물었다.
예, 있습니다. 누가 저를 부르십니까?
하고 대답하고는 즉시 그들 앞으로 나아가 집안으로 맞아 들여 앉으라고 권한 다음, 그들이 온 까닭을 물었다.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도망쳐 나온 관노(官奴)를 찾으러 나온 관속(官屬)이다. 네게 책력(冊曆)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의 수색에 도움을 얻으려고 그것을 보러 왔다.
조선에서 쓰는 중국 책력(冊曆)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한 미신(迷信)의말이 들어있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책력이 있긴 합니다만, 거기에는 절기(節氣)의 바뀜만 적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책력(冊曆)을 가져왔다.
그것을 내게 읽어다오.
하고 포졸(捕卒)들의 두목이 말하였다.
저는 한문(漢文)을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면 너는 천주교(天主敎)의 책밖에는 읽을 줄을 모른단 말이냐?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를 체포(逮捕)하라는 명령(命令)을 내렸다. 곧 10여 명의 사람이 그에게 달려들어 꽁꽁 묶었다.
그들은 집을 뒤져 십자가상(십자가상)과 책 몇 권을 찾아냈다. 그들은 이도기(李道起) 바오로를 근처에 있는 숲 속으로 끌고 가 매질을 하는 동안, 두목은 그에게서 신부(神父)가 숨어있는 곳도 알아내고, 천주교인(天主敎人)들을 대게도 하려고 신문(訊問)하였으나 헛일이었다.
밤이 되자 그들은 이도기(李道起)바오로와 함께 잡힌 다른 교우(敎友)들을 초라한 주막(酒幕)으로 끌고 갔다. 주막 주인(主人)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들을몹시 괴롭게 하는 결박(結縛)을 늦추어 주게 하였다. 그러나 읍내(邑內)에 이르러 그와 그 고통의 동료들은 또다시 쇠사슬로 결박(結縛)되었다.
④ 관장(官長)은 십자가상(十字架像)과 책들을 살펴보고 나서, 잡혀온 사람들을 출두(出頭)시키고 우선 이도기(李道起) 바오로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 사느냐?
처음에는 청양(靑陽)에 살았는데 지금은 정산(定山)에 삽니다.
누가 너를 가르쳤으며, 네 제자는 누구냐?
저는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습니다.
너는 죽어 마땅한 놈이다.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다면, 이 책들과 이 그림은 어디서 났단 말이냐?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발을 쇠사슬로 결박당하고, 목에는 칼을 쓰고, 옥으로 다시 끌려갔다. 그의 동료들은 한 사람만 빼고는, 관장(官長)이 시키는 대로 하였는데, 그 한 사람 역시 옥에 갇혔다.
이튿날 관장(官長)은 그들을 둘 다 읍내(邑內)에서 6마장 되는 장거리로 끌고 가서, 군중(群衆)에게 온갖 모욕(侮辱)을 당하게 하겠다고 위협(威脅)하였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니, 저희는 그런 영광(榮光)을 충분히 감사할 수는 없겠습니다.
관장(官長)은 말하였다.
공자(公子)나 맹자(孟子)의 도(道)나 불도(佛道)는 바른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을 배우기를 거절하고, 어디 가서 거짓 도리(道理)를 찾아다가 따르며, 또 어찌하여 그것으로 온 나라를 휩쓸려 하느냐? 너희 당파(黨派)는 국왕(國王)도 부모(父母)도 모르고, 그 가장 흉악(凶惡)한 버릇에 빠지며, 국왕의 금령(禁令)에도 불구하고 그 도를 따르니, 그것은 크나큰 질서문란(秩序紊亂)이며, 너희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저는 무식(無識)한 탓으로 선비들의 몫으로만 되어 있는 공자(公子)와 맹자(孟子)의 도(道)는 알지 못하며, 불도(佛道)는 중들에게만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天主敎)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천주(天主) 한 분만이 계셨습니다. 지금있는 모든 것을 창조(創造)하신 것은 바로 그분이십니다. 창조(創造) 후에는 부부(夫婦)와 가족(家族)이 있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임금과 신하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부처, 공자, 맹자, 임금과 신하 등은 천지창조 후에 생긴 것입니다. 천주(天主)는 하늘과 땅의 참 임금이시고, 만물(萬物)을 주재(主宰)하시고 보(保存)하시는 분이시며, 부모께 대한 효도(孝道)와, 임금께 대한 충성(忠誠)의 참 근원(根源)이십니다. 부모께 대한 효도(孝道)와 임금께 대한 충성(忠誠)은 십계(十戒)의 제 4계명(誡命)에 명령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하여 부모도 임금도 모른다고 우리를 부당하게 책망하십니까?
관장(官長)이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임금님과 조정(朝廷)과 관장(官長)들이 그것을 알 것이고, 그들에게서 백성(百姓)이 배울 것인데, 반대로 그들은 너희의 종교(宗敎)가 조선(朝鮮에 불행(不幸)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금한다. 그런데 너희 어리석은 백성(百姓)은 순종(順從)하기를 거절하고, 너희 선생들을 바로 대지를 않으니, 너희는 죽어 마땅하다.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은 자기 영혼에 영원한 영광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하고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⑤ 그러자 포졸(捕卒)들이 그들을 관아(官衙)에서 끌어내어 뺨을 치고 바로 차며, 그들에게 침을 뱉고, 증거자(證據者)들이 쓰고 있는 칼을 온 몸의 무게로 찍어누르는 등 수없는 모욕(侮辱)을 가하였다.
오늘 네놈들을 장에서 조리돌리고 나서 죽일 거다.
하고 말하는 자도 있고,
이놈들이 천당(天堂)엘 올라간다.
하고 외치는 자도 있었다.
마침내 그들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머리에는 글을 써서 달고, 등에는 어마어마한 북을 지웠다. 관장(官長)은 말을 탔고, 포졸(捕卒)들은 채찍질로 증거자(證據者)들을 그들의 앞에서 장에까지 뛰어가게 하였다. 그렇게 가는 동안 포졸(捕卒)들이 외치는 소리와, 되풀이하여 울리는 북소리에 끌려, 꽤 많은 군중(群衆)이 연도에 모여들었다. 때는 아침 아홉시 가량이었다.
⑥ 그들이 장에 이르자 관장(官長)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악한(惡漢)들은 천주교인(天主敎人)이오, 이들의 죄는 반역죄(反逆罪)이다. 이놈들은 임금을 섬기지도 않고, 부모(父母)도 공경(恭敬)치 않아 인륜(人倫)을 어긴다. 이놈들을 장을 한바퀴 조리 돌린 다음 죽일 것이다.
그런 다음 곤장 열대를 치게 하며, 배교(背敎)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이도기(李道起) 바오로가 말하였다.
저는 이미 사또의 비난에 대해 모두 답변을 하였으며, 거기에 덧붙여 말씀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형리(刑吏)들은 여러 개의 몽둥이 끝으로 한꺼번에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같은 명령(命令)을 되풀이 하였다. 용감(勇敢)한 이 천주교인(天主敎人)은 다시 말하였다.
만 번 죽어도 저는 배교(背敎)할 수 없습니다.
백성(百姓)들은 그의 굳센 태도(態度)에 감탄하며 말하였다.
저 사람은 분명 배교(背敎)하지 않을 것이다.
열두 시간 이상이나 형벌(형벌)을 가한 뒤, 그들을 다시 옥으로 데려왔을 때는 저녁 일곱 시가 되었었다.
포졸(捕卒)들은 이도기(李道起)바오로에게 만일 관장(官長)에게 순종(順從)치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보았으나,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그것을 잘 알고 있노라고 만 대답하였다.
참 고집도 센 반역자로구나!하고 포졸(捕卒)들은 화가 나서 말하였다.
⑦ 나흘 후에 옥리(獄吏)가 와서, 관장(官長)이 이튿날 광장에 큰 잔치를 차리라는 명령(命令)을 내렸다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배교자(背敎者)들은 관장(官長)과 함께 거기에 한몫 끼겠지만, 반대로 증거자(證據者)들은 그들의 결심(決心)을 고수(固守)하면서 사형(死刑)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의 동료들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아마도 신자들에게 평화(平和)가 오려나보다고 생각하였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말하였다.
절대로 그렇지 않네. 헛된 희망에 끌려가지는 말도록 하세. 그랬다가는 형벌이 더 어렵게 생각될 걸세. 나는 옥에 남아 있고 싶네. 그리고 만약에 관장이 옥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도망하기는 고사하고 읍내에 남아 있겠네.
그의 동료는 겁이 나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이 없었다. 왜 그러느냐고 이도기(李道起)바오로가 물었다.
참말이지 나는 어떻게 형벌을 참아 받을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지요?
나도 몹시 괴로운 것은 사실일세. 그리고 나는 자네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나이 때문에 고문이 더욱더 괴롭게 되네. 하지만 천당을 헐값으로야 살 수 있나. 고통은 영원한 행복을 사는 돈일세. 용기를 내서 얼마동안만 더 고통을 참아 받게!
⑧ 이튿날 그들은 장터로 끌려갔다. 거기에는 커다란 차일(遮日)이 쳐 있고, 그 차일 아래에는 관장(官長)의 법정(法廷)이 차려져 있었으며, 그 둘레에는 여러 가지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좋은 옷을 입은 배교자(背敎者)들이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잔치가 시작되었는데, 두 수감자(收監者)는 형장(刑場)에 서 있었다. 관장(官長)이 말하였다.
진정한 천당(天堂)은 이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음악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는 것이다. 너희들이 천당(天堂)에 올라가기를 원한다지만, 그 33층을 어떻게 올라가겠느냐? 배교(背敎)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감영(監營)으로 넘겨 사형(死刑)을 받게 하겠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말하였다.
저는 이미 대답을 하였습니다만, 다시 한마디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주는 오직 한분 박에 없는 주인이시고, 삶의 주관자(主管者)이신데, 어떻게 그분을 배반(背反)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보다 덜 용감(勇敢)한 그의 동료(同僚)는 관장(官長)에게 감히 저항을 하지 못하고, 나약하게도 배교(背敎)한다는 큰 표를 보였다.
자 너도 천주(天主)를 욕하여라.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임금님이 법률을 펴시면 그것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사또께서는 그것을 어기기는 고사하고, 그것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백성에게, 참 아버지를 저주(咀呪)하라고 감히 명령하십니까? 저희나라에는 자기 부모(父母)를 저주(咀呪)하는 풍습(風習)은 없습니다.
官長은 화가 나서, 이도기(李道起)바오로의 집에서 압수한 책을 불사르라고 명하고, 십자가상(十字架像)을 들고 장터를 돌아다니며,
이놈은 당신들이 보는 이것을 제 천주라고 하니, 망측한 일이 아니오?
라고 말하게 하였다. 때는 정오(正午)였다.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천둥을 하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 차일(遮日)을 무너뜨리고, 관장(官長)은 거의 쓰러질 뻔 하였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즐기던 배교자(背敎者)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하였다.
백성(百姓)들은 동요(動搖)하며 천주교인(天主敎人)을 놓아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관장(官長)은 이 불의의 사고(事故)로 더욱 화가 나서,증거자(證據者)에게 매질을 시켰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그를 다시 옥으로 데려왔는데, 그가 어떻게나 기지맥진 하였던지, 땅에 쓰러져 사람들이 떠 매어 가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에게 무거운 칼을 씌웠다. 그렇게도 많은 고문(拷問)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침착하였고, 기도(祈禱)드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⑨ 가을에 그는 다시 신문(訊問)을 당하고 또 곤장(棍杖)을 맞았다. 그를 보는 사람들이,저 사람은 매 맞아 죽을 거다.하고 말하였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매를 맞아 죽거나 곤장을 맞아 죽거나 모든 것이 천주의 명령에서 오는 것이니, 천주를 찬미를 받으실지어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순교(殉敎)의 은혜(恩惠)를 구하였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자주 굶주림을 당하였고, 옷이 헤어져 추위가 그의 고통을 더하였다. 그의 아내는 돈을 약간 모아, 술과 고기를 사다가 그에게 주었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처음에는 그것을 거절(拒絶)하며 말하였다.
성모님이 나를 십자가위에 두셨으니, 내가 그것을 먹으면 부당하오. 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위에서 고통밖에는 받지 않으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잡수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소. 나도 십자가 위에 있으니, 예수님과 같이 해야만 되오.
그러나 결국은 아내의 간청(懇請)을 받아들여 그 위안(慰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앉았거나 누웠거나 그는 끊임없이 천주(天主)를 생각하였고, 그로부터 많은 위안(慰安)받았다. 하루는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하는 천사(天使)의 인사말씀을 그에게 하여주는 목소리가 들려와, 그는 기쁨이 자기 마음안에 넘쳐흐름을 깨달았다(조선 전기에는 비록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기 적적인 목소리였다고 암시하여준다).
그는 또한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지능(知能)을 받은 것 같아서, 천주교 기도문(祈禱文)의 아름다움을, 아주 유식한 사람들보다도 더 잘 음미(吟味)하였다.
겨울의 혹한(酷寒) 중에 그는 상처(傷處)로 인하여 매우 고통(苦痛)을 받았고, 성탄날에는 무자비한 신문(訊問)을 당하였으므로, 몸이 불덩이 같이 끓었다.
보시오. 주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내리시어, 내 마음이 식지 않도록 매로써 덥게하여 주십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⑩ 설이 지난 후, 그는 세 번 신문(囟文)을 당하였다. 세 번째에 가서 관장(官長)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배교하고자 한다면, 네게 쌀을 주고, 네 상처를 치료해주고, 풍헌자리를하나 마련해 줄 터이다. 그렇게 되면 네가 다시 유복하게 사는데 충분할 것이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정산고을을 전부 주신다 해도, 저는 결코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
관장(官長)은 덧붙였다.
너는 천주교인들이 부모를 공경한다고 주장하지만, 네 자식놈 넷이 네가 옥에 갇힌 두로 한 번도 보러 온 일이 없으니, 그렇게 악독한 마음이 또 어디 있느냐?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자기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들을 공경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제 자식놈들에게 나를 보러 오는 것은, 피차간에 이롭기보다는 해가 될까 무서우니, 내게 오지 말라고 여러 번 부탁하였습니다. 이렇게 금했기 때문에 그들이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⑪ 5월에 포졸(捕卒)들은 자주 그를 보러 왔고, 문은 별로 지키지 않아, 그에게 도망(逃亡)을 가라고 권유(勸誘)하는 것 같았으나, 그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누가 도망가라고 권하면, 그는 대답하였다.
관장(官長)의 명령(命令)으로 내가 옥에 갇혔으니, 그의 명령(命令) 없이는 여기서 나갈 수 없소.
천주교인들이 그를 보러 와서, 포졸(捕卒)들의 그러한 행동(行動)은 관장이 시켜서 한 것이 분명하니, 도망가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는 잠시생각하더니 말하였다.
만일 우리가 마귀의 함정에 빠져들어가면, 우리 영혼과 우리가 세울 수 있는 모든 공로를 잃을 위험을 당하게 되오. 내 집은 하도 가난해서 내가 이 옥에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오. 내 식구들이 나를 위해서 하는 모든 것이 내게는 괴로울 따름이오.
그런 다음 그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기구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아직도 이 세상 것을 누릴 수 잇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면, 그들의 기구를 그만 두어야 하오. 그러나 내 영혼과 내 영생을 위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공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구한다면, 그들에게 끊임없이 기구를 드리도록 부탁해 주시오 나는 내 가족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구를 해주기를 바라오. 내 음식은 당신의 힘이 자라는 대로, 하루나 이틀에 한 사발씩만 갖다 주고, 그렇게 못하더라도 결코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내가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시체만은 나갈 거요. 앞으로는 누가 당신더러 내게 무슨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교우들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그 말이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할 성질의 것이라면, 내게 전하지 마시오. 내 마음이 약해질지 모르니까 말이오.
그날부터 그의 아내가 그에게 무엇을 가져오면, 그는 면회(面會)를 사절(謝絶)하고, 아내에게 멀리서 몇 마디 말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며칠 후에 官長은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속았다. 중국에서 이마보(李瑪寶)는 그의 지식으로 백성을 속였다. 너는 어떻게 해서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이마보(梨瑪寶)도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이가 중국과 다른 데에서 전파한 도리는 그의 것이 아니라, 천지대군의 도리입니다. 이세상의 임금들의 명령을 지극히 조심하여 반포하고 따라야 하거든, 하물며 이 세상 임금들의 명령보다 더 무섭고 더 두려우면서도 더 사랑스러운 천주의 명령이겠습니까? 천주는 전능하시고 지능하시며, 모든 왕들보다 만 배나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명령하시는데, 어떻게 그 종교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은총의 도움으로 모든 형벌을 참아 받아야 하고, 또 참아 받겠습니다. 그러나 배교는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官長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혹독(酷毒)한 매질을 시키고 옥으로 돌려보냈다.
⑫ 이틀 후, 즉 6월 3일 그의 아내가 남편(男便)의 상태(狀態)를 알아보고, 그가 혹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가도 물어보러 왔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나는 고통도 없고, 시장기도 느끼지 않소. 나는 매를 몇 대나 맞았는지도 모르오. 이 달 초열흘까지 먹을 식량만 있으면, 충분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는 더 이상 긴 말은 하지를 않았다. 그러나 하늘이 머지않아 순교(殉敎)하리라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었음을 이해(理解)하기는 어렵지 않다.
8일, 관장(官長)은 그를 불러다가 그가 계속 배교(背敎)하기를 거부(拒否)한다면 죽이라는 명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대답하였다.
여러 해 전 천주교를 알게 된 그때부터 저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옳은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천주를 배반할 것을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는 고문(拷問)을 당하고 다시 옥으로 끌려갔다. 이튿날 그의 아내와 교우 서너 명이 그를 보러오자 그는 그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어떤 충격(衝擊)을 받을까봐, 그들에게 물러가 달라고 청하였다. 그들이 그대로 있자 그는 더욱 간 청(懇請)하였다.
왜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소. 만일 나를 붙들어 주시면 가장 혹독한 형벌도 참아 받기가 쉽겠지만, 만일 주께서 나를 버리시면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오. 만일 내가 나약한 대로 버려진다면 굳세게 있을 수가 없겠지만, 예수마리아께서 나를 붙들어주시니 아무것도 무섭지 않소. 제발 나를 버려 두고 돌아가시오.
그래서 그들은 이도기(李道起)바오로를 괴롭히지 않기 위하여 물러갔다.
⑬ 10일 아침, 포졸(포졸)들이 와서 사형집행일(死刑執行日)이 되었다고 그에게 알렸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관속들은 말하였다.
이 사람이 옥에 갇힌 뒤로부터 고문을 당하지 않으면 마르고 창백하고 풀이 죽어 있고, 형벌을 당하면 오히려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오늘 그가 죽을 것임을 알려주니까 그 어느 때보다 얼굴이 환한 것 같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날은 그를 장터에서 조리를 돌린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작은 칼을 쓰고, 형구(形具)를 든 포졸(捕卒)들에게 둘러싸여 형장(刑場)으로 나아갔고, 그 뒤에는 관장(官長)이 따랐다. 관장(官長)은 말에서 내려 그를 고문(拷問)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형리(刑吏)들은 그를 엎어 놓고, 머리를 머리칼로 형틀에 잡아매고, 두 팔은 큰 돌에 묶어 놓았다.
그가 질식(窒息)할 정도까지 칼을 죄고, 망나니 여럿이 삼모장(三毛杖)으로 도끼로 치듯 치니, 칠 때 마다 매번 상처(傷處)가 났다. 官長은 그에게 배교(背敎)하기를 원치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기진맥진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때 포졸(捕卒)하나가 가가이 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배교하고 싶으면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다.
순교자(殉敎者)는 남은 힘을 다하여 외쳤다.
결코 할 수 없소.
그의 입술은 새까맣게 타 있었고, 생명(生命)의 입김이 겨우 붙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몇 분 후에 그는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말하였다.
성모 마리아여, 당신께 하례하나이다.
그리고 죽은 듯이 쓰러졌다.
그러는 동안 외교인(外敎人)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놈 때문에 가뭄이 이렇게 심하고, 우리가 굶어죽게 되었으니, 저놈을 발로 차서 끝장을 내야겠다.
군중(群衆)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의 아내가 그를 도우려고 가까이 오려하자, 군중(群衆)은 그에게 소리를 지르고 떠다밀며, 욕설을 하고 때리고 발로 밟고 하였다. 그는 실신(失神)하여 떠메어져 나갔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가 의식(意識)을 회복(回復)하자, 官長은 그를 세 번째로치게 하였다. 그의 다리는 무릎 밑에서 부러졌다. 부러진 뼈가 허옇게 드러나고,골수(骨髓)가 땅에까지 흘러내렸다. 결박(結縛)을 풀어주었을 때, 그는 땅에 누운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의 칼을 벗기지 않은 채, 거적에 올려, 포졸(捕卒) 네명이 그를 옥(獄)으로 들어 다 놓고 문을 단단히 잠갔다. 관장(官長)은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놈에게 물 한잔이라도 주면 저놈같이 죽이겠다.
이틀 동안을 순교자(殉敎者)는 아무런 위안(慰安)도 받지 못하였고, 아무도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⑬ 12일 저녁때쯤 관장(官長)이 관속(官屬)들에게 말하였다.
옥에 가서 그 천주교인을 밖으로 끌어내어, 얼굴을 들여다보고 맥을 짚어보라. 그래서 아직 살아있으면 아주 죽여 버리고, 와서 보고하라.
포졸(捕卒)들이 이 명령(命令)을 집행하(執行)여 돌과 몽둥이로 어떻게나 그를 짓이겨 놓았던지, 손바닥만 빼놓고는 상처(傷處)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었다. 망나니들이 관장(官長)에게 이 말을 하자, 官長은 성이 나서 말하였다.
네놈들이 그놈을 끝장내지 않으면, 네놈들을 모두 쳐 죽이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옥으로 가서, 이번에는 순교자(殉敎者)의 영혼(靈魂)이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 그들의 분을 마음껏 발산(發散)시켰다.
⑭ 그러나 관장(官長)은 그가 다시 살아날까봐, 시체(屍體)에 계속 형벌(刑罰)을 가하게 하였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시체(屍體)는 이미 사람의 형상(形象)을 갖추지 않았다. 거적으로 시체를 덮어놓고 밤새 지켰다.
이튿날 시체(屍體)는 관장(官長)의 명령으로 묻혔다. 그러나 7, 8일 후에, 한 십리쯤 떨어진 데서 사는 교우(敎友)들이 시체(屍體)를 찾아다가, 그들의 동네에 예를 갖추어 장례(葬禮)를 지냈다. 이도기(李道起)바오로의 나이는 56세였으며, 그가 순교(殉敎)한 날을 천주강생(天主降生) 1798년 6월 12일이었다.
옥사장(獄事長)은 미망인(未亡人)을 위로(慰勞)하며 위하여 말하였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12일 밤에 큰 광채가 당신 남편의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오.
-샤를르 달레 神父 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