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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생애

[스크랩] [그리스도의 생애] - 40. 주님의 "나의 아버지"

[그리스도의 생애] - 40. 주님의 "나의 아버지"


비행조종사나 잠수함 지휘관이나 전투지역 장교는 종종 상급 장교에게 "임무완수"라는 간결한 메시지를 보낸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마지막 말씀을 고하셨으며, 당신 신성의 표시로 기적을 행하셨으며,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끝마치셨다.
이제 천상 아버지께 "임무완수"라는 대사제의 기도를 바칠 때가 왔다. 어떤 문학작품을 보더라도 이 마지막 기도처럼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하며 웅대하며 열정적인 글은 찾아 볼 수 없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주의 기도"를 바치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은 "나의 아버지"라는 당신의 기도를 바치신다.

주님의 기도는 당신이 아버지와 인류의 중개자라는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곱 번이나 주님은 당신의 "때"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한결같이 당신의 죽음과 영광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고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을 다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나의 영광을 드러내 주십시오.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 곁에서 내가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 1-5)

최후만찬 동안에 주님은 "아버지" 란 단어를 45번이나 사용하셨다. 그때까지 세상은 하느님을 최상의 존재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시라고 강조하셨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친근하시며 아버지와 같이 대해 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또한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이 지상에서 임시 사명을 완수하셨고 당신 인성이 곧 하늘의 영광을 받게 된다고 암시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을 때, 위에서 내려오시어 자신을 비우시고 노예신분을 취하셨다. 주님께서 구하신 것은 당신 신성(神性)의 영광이 아니었다. 신성은 결코 잃으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구하신 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에는 없으셨던 것, 즉 마리아에게서 취하신 인성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주님의 인성은 당신과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광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주님께서는 나중에 엠마오로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루가 24, 26)

주님은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정의하셨다. 이성으로 증명된 하느님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는 자연 종교의 바탕이 될 수는 있을 망정 영생을 얻는데는 불충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주님께서 당신이 영생이라고 주장하신 점에 있어서 유별난 점은 돌아가시기 18시간 전에 이런 주장을 하셨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고통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광을 받으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일은 인류를 구원하라는 아버지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인간의 정신은 하느님께 향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말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청사진을 가지고 계셨다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께 복종하고자 하는 예수의 의지가 너무도 강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이미 그 청사진이 완성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서른 세 살 먹은 젊은이로서 "하느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아 완수했다" 고 말할 수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섭리의 양탄자에 마지막 실이 꿰매졌다는 것이 주님의 주장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이 생길 때부터 희생된 어린 양" 이셨다. 이제 하느님의 의도를 수행할 순간, 즉 "때" 가 왔다. 그와 더불어 주님께서는 선재(先在)하는 신성의 위대한 영광 속에 당신 인성을 받아 주시도록 아버지께 부탁하셨다.

사도들의 권한

주님께서 바치신 기도의 다음 부분은 아버지와 자신과 사도들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은 사도들의 권한과 관계가 있다.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 나에게 맡겨 주신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분명히 알려 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과연 아버지의 말씀을 잘 지키었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 들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깨달았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요한 17, 6-9)

하느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한 것처럼 힘일 뿐이거나 모호한 움직이지 않는 운동가가 아니다. 하느님은 아들외에는 누구도 속속들이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시다. 이어서 주님은 사도들을 당신 현존을 느낀 자들로 그리신다. 그들은 불신앙 속에 앉아 있는 세상과 구별되며, 아버지께서 차지하신 자들이다. 당신 제자가 된 자들은 모두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지키셨으며, 스승이 제자들을 가르치듯이 가르치셨으며, 의사가 환자를 돌보듯이 돌보아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죄많은 인류 가운데 당신의 전능하신 손을 내뻗치시어 그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이끌어 내시어 당신 아들의 손에 그들을 맡기셨다. 아들은 그들에게 당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당신 이름으로 말하며 당신 구원의 공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여기서 주님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자신으로부터 사도들에게 사명이 계속 이어진다고 말씀하신다. 만일 어떤 다른 인간집단이 오십년이나 백년, 오백년 후에 주의 복음사가 중 한 사람이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글로 쓴 것을 읽는다면, 그는 신적인 능력을 전하는 데 필수적인 직접적인 접촉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고 사람이 되신 영원한 아들과 그들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주님께서 자기들을 파견하셨다는 사실을 이제 장담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지셨듯이 그들도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중상모략을 당하셨 듯이 그들도 중상을 받을 것이다. 만일 사도들이 주님께서 주실 성령 대신에 세속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세속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사도들을 사랑 속에 지켜달라고 간청하신 후 그들을 악으로부터 지켜주시도록 주님께서 아버지께 부탁하셨다.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신다고 하셨지만, 사도들은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하며 세상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 듯이 그들도 미워할 것이다. 사도들과 사도단체를 통하여 주님과 하나 될 모든 사람들은 세상 안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병이나 거짓 재판이나 억울한 욕을 먹지 않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부탁드리시지 않고, 그들을 죄에서 지켜주십사 하고만 부탁드리셨다.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공격에 대해서는 내부로부터 영적인 저항을 하여야 한다. 사도들은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그 고통을 참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도피주의(Escapism)란 있을 수 없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는 도피주의자다." 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피하는 자가 도피주의자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종교가 하나의 현실도피라는 비난에 치명타를 날리셨다. 산상에서 진복팔단을 말씀하셨을 때는 당신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으면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당신이 받으신 미움을 같이 받아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 십자가는 "도피" 가 아니라 짐이다. 즉, "달콤한 멍에요, 가벼운 짐" 이다.

죄 많은 세상 가운데 살면서 거기에 물들지 않고 지내는 것은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주님은 아버지께 그들을 거룩하게 지켜 주시라고 부탁드리신다.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요한 17, 15-17)

구약성서를 보면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은 거룩한 자야만 되었다.

또 너는 순금으로 패를 만들고, 그 위에 인장을 새기듯이 '야훼께 몸바친 성직자' 라고 새겨라. 이것을 자줏빛 털실로 꼰 줄에 매어 사모에 붙이되, 사모 앞쪽에 가도록 하여라. 그 패를 아론의 이마에 붙여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예물을 봉헌할 때 그 거룩한 봉헌 물을 잘못 드려 죄를 지으면 그 책임을 아론이 지게 하여라. 아론은 그것을 이마에 늘 붙이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바치는 것을 야훼께서 기꺼이 받아 주실 것이다.(출애굽기 28, 36-38)

사제의 이마에 붙어 있는 표지가 거룩함의 증거였으나, 지금은 성화(聖花)시키시는 성령을 통하여 마음 속에 거룩함의 표지를 지니게 된다. 그들은 거룩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진리 안에 거룩한 자" 가 되어야 한다. 햇빛이 몸을 정화하여 병에 걸리지 않게 하듯이, 주님의 진리는 영혼을 성화시키고 악에서 보호해준다고 말씀하셨다.

성성(聖性)은 신적인 진리라는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바탕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감상주의와 정서주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후에 "우리는 종교를 원하지만 선조(Creeds)는 원치 않는다" 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병이 낫기를 바라면서도 의학을 원치 않고, 음악을 배우고자 하면서도 음악의 규칙을 원치않고, 역사를 배우고자 하면서도 문헌을 원치않는 것과 같다. 종교는 생활임에 틀림없지만 진리에서 커나가는 것이지 진리와 동떨어져 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뭘 믿든 상관없고 우리의 행동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항상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믿음과 진리를 우선으로 치셨고 그 다음으로 성화와 착한 행실을 드셨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하나의 모호한 관념이 아니라 한분의 위격체다. 위격체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이제 진리는 사랑스럽다. 성성(聖性)이란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신적인 진리에 대해 마음이 드리는 응답이 된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해 파견되셨듯이, 이제 사도들은 거룩한 성령으로 성화되어 당신의 대사로 세상에 파고들어 갈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요한 17, 18)

말씀이 사람이 되셨을 때 주님과 하나가 된 인성은 성화되어 하느님께 헌신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 본성에 따라 하느님께 헌신하셨듯이, 당신 이름으로 행동하게 될 자들에게는 그들의 본성에 따라 당신께 헌신하도록 요구하신다. 다음 날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그들을 위해 성성에로의 봉헌을 대신해주기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실 것이다. 그림자와 비유로 가득찬 옛 율법의 희생물보다 훨씬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번제는 그들에게 참된 성화를 이루어줄 것이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 19)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셨다. 살과 피와 신성과 영혼인 당신 전부를 그들을 위해 완전히 순종하며 바치실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의 피인 당신 피가 뿌려지는 곳에 당신 성령과 성화가 있을 것이다. 아무도 주님을 도살장으로 끌고가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그들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자 "그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실 것이다. 그때, 성화시키는 주님과 성화된 그들은 하나가 될 것이다. 세상의 죄가 주님께 전이되었으며 그 결과로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다. 당신의 성성과 성화가 당신 사도들과 그들을 통해 당신을 믿게 될 자들에게 전이되었다. 성바오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사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Ⅱ고린토 5, 21)

신자들을 위한 기도

주님께서 바치신 세 번째 부분의 기도는 사도들을 통해서 앞으로 당신을 믿게 될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 게 하려는 것이며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 사람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 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 20-23)

예수 성심은 시공(時空)을 포함한 우주 전체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신다. 주님은 사도들만 사랑으로 당신과 일치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직무를 통해서 믿게 될 모든 사람들도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들과 주님의 일치는 전체적이거나 혼동스러운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며 친밀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는 내 양을 이름으로 부른다" 고 하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님께서 열 한명에게만 말씀하고 계시지만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해 후에 당신을 믿게 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계셨다.

신도들이 주님과 맺어야 될 일치의 유대는 주님이 아버지와 맺고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주님은 성령 안에서 일치하고 계시기 때문에, 몇 분 후에 주님은 그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바로 이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셔야만 한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성령"이란 바로 주님의 영이다. 몸이 하나인 것은 그 몸에 영혼이 하나만 있기 때문인 것처럼, 인류도 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가 되게 하시는 똑같은 성령을 모시게 될 때 하나가 될 것이다. 신도들이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은 사도들의 중개역할을 통해서 이뤄진다. 주님은 당신 신비체의 일치와 성성을 위해 마치는 이 기도를 다음과 같이 끝맺으신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 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24-26)

이제 지상의 일을 마쳤다고 하신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공동체나 친교단체로 부르셨다. 기도를 시작하실 때는 주님은 "이 자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하고 아버지께 탄원하셨지만, 이제는 좀 더 정확히 당신 뜻을 표현하신다. "아버지, 이것이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치는 영광과 영원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성취될 어떤 것임을 인정하셨다.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은 주님과 하나가 되는 날 이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그때 주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사이에 거처하시기" 전에 누리셨던 영광, 즉 "세상이 생기기 전에" 누리셨던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로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 속에는 일곱 가지 청원이 들어 있고, "나의 아버지" 라는 주님의 기도 속에도 일곱 가지 청원이 있는데, 그 청원은 지상에서의 당신 왕국의 초석이 될 사도들에 관한 것들이다. 첫 번째는 그들이 당신과 계속 일치하기를 바라시는 기도요, 두 번째는 이러한 일치에서 나오는 기쁨을 그들이 누릴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요, 세 번째는 그들을 악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기도요, 네 번째는 진리이신 그분 안에서 그들을 성화시켜 주시라는 기도요, 다섯 번째는 그들 서로 일치를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기도요, 여섯 번째는 마침내 그들이 당신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요, 일곱 번째는 그들이 당신의 영광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출처 : [그리스도의 생애] - 40. 주님의 "나의 아버지"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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