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나라및 세계교회현황

성서지도 1

      순례정보 : 성서 지도1

노아 후손들인 각 민족들의 분포도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이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 반영된 것이 창세기 10장이다. 이 지도는 그 당시(기원전 10-6세기) 이스라엘인들이 알고 있던 주변의 인종 및 지역을 정치적 상황과 지리적 위치에 따라 분류․정리한 창세기 10장의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언어학적, 생물학적 인종분류와 이 지도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시이저 시대의 로마제국

기원전 8세기 경에 조그만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기원전 1세기에 들어 지증해 및 등방 지방에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하였다. 이스라엘과 로마인들의 관계는 제1회 삼두정치 체제의 실력자 중 하나인 품페이우스가 시리아를 포함한 팔레스티나 일대를 점령하고(기원전 63년) 시리아에 층독을 두어 다스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팔레스티나의 지형도

팔레스티나는 성서의 배경이 되는 땅으로 남북의 길이는 대략 563km이며 동서의 폭은 97km 정도인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이다. 그리고 동서로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다섯 가지 지형적 특성을 보인다. 서쪽 끝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발달된 좁고 긴 평야이고, 그 오른쪽 옆으로는 평균 600~700m의 산악지대가 달리고 있다. 중심부는 요르단 강과 세 개의 호수로 연결되는 협곡지대로 이곳은 대부분이 해면보다 낮다. 요르단 강의 동쪽은 고원지대로 트랜스 요르단이라 부른다. 그리고 동쪽 끝은 사막과 이어진다.

예수시대의 팔레스티나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던 당시의 상황을 볼 것 같으면 헤로데가 죽은 뒤(기원전 4년) 그의 나라는 셋으로 갈라졌으며, 아르켈라오가(기원전 4년~기원후 6년) 유다, 사마리아, 이두매아를 헤로데 안터파스가(기원전 4년~기원후 39년) 갈릴래아와 베레아를, 필립보가(기원전 4년~기원후 34년) 갈릴래아 북동부지역을 각각 분봉왕으로 통치하였다. 아르켈라오는 포악한 통치 때문에 일찍 쫓겨났고(기원후 6년), 그의 영토는 로마의 지방 총독이 직접 관할하였다. 빌라도는 기원 26년에서 36년까지 유다 총독으로 있었다.(루카 3:1, 23:1 참조)

출애급 경로와 가나안 정복

에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히브리인들은 모세의 인도 아래 기원전 13세기경 에집트를 탈출했다. 그들이 에집트에서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까지의 경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집약된다. 그것은 시나이 반도의 북쪽(지중해 연안쪽), 중앙, 남쪽을 통과하는 길이다. 제관계 전승에 의한 출애굽 경로는 바알스본을 제압하는 야훼의 위력을 나타냄으로써 바다와 이 세계의 주인은 그들이 믿는 바알신이 아니고 히브리인들이 믿는 유일신 야훼임을 드러내 보이려는 신학적 의도에서 기술되었다. 제관계 저자들이 (기원전 500년 경) 후대에 와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소급해서 그 경로를 기록한 것은 역사적 사건을 사실 그대로 서술하려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이 기록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전달하려는 데 본뜻이 있다. 예호위스트전승도 제관계와 마찬가지로 신학적 의미 전달에 목적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야휘스트전승이 지시하는 중앙경로가 당시의 역사적, 지형적 상황으로 보아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까지 들어 갔던 가장 가능성이 큰 여로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12지파에게 분할된 가나안

에집트 탈출과 시나이산 계약, 가나안 정복을 통해 새로운 신앙공동체, 곧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구성된 부족연맹이었으며, 모든 지파는 동등하고 각 지파는 자치권을 행사하였다(창세 49장, 신명 33장, 여호13-19장 참조). 판관시대 때는(대략 기원전 1200-1000년) 지파내의 분쟁은 해당 지파의 소판관이 해결하고,민족 전체 즉 부족연맹을 위협하는 일,예컨대 외적의 침입같은경우에는 야훼의 영을 받은(판관 3:10, 11:29, 14:6 참조) 대판관이 나타나 이끌었다.

사도들의 전도여행

예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은 예수의 제자들은(요한 20:26-29, 사도 2:2-13) 팔레스티나 일대와 멀리 소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선포하였다. 당시 로마총독들은 치안, 조세, 재판 등에만 관여하고 종교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해서 복음은 유다인들의 극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빨리 전파되어 그리스도교는 점차 세계 종교로서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바올로 사도의 전도여행

바울로는 길리기아의 다르소에서 태어나 희랍식 교육을 받고 다시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인으로 훈련받은 열심한 바리사이였다. 그는 다마스커스로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하러 가던 도중에 예수님을 체험한 후(사도 22:6-21) 열심한 사도로 활약하였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사도 13:1-14:28, 15:36-18-22, 18:23, 21:17) 주로 소아시아와 그리이스의 주요 도시들에서 활동하면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고 그들을 격려하였다.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헤로데는 예루살렘에 경기장, 극장 등 대형 건물들을 많이 세웠다. 특히 그가 재건한 성전은 이전 것의 배나 되는 규모였다. 헤로데의 손자 아그리바 1세와 그 후임 아디아베네의 헬렌여왕 때 예루살렘은 다시 정비되었다. 그러나 로마 총독의 잔혹한 통치에 저항하는 유다인들의 항쟁 때문에 예루살렘은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마태 24:2, 마르13:2, 루가19:44 참조)

[자료 : 성서와 함께 성서지도,  성서와 함께,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