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선도 원치 않는 영혼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고, 또 자연은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는 격리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창조적 현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되며, 우리에게 요구된 현동은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켜 그 영원성 안에서 자신의 근원을 발견하니, 영적 생활은 의당 영혼 안에 완전한 기쁨을 샘솟게 해야 할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비참이 지나치게 언급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옳지 못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그렇게 심한 간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칼 바르트(Karl Barth)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마치 신과 인간과의 간격을 크게 함으로써 현대인의 고뇌를 정당한 것으로 하려는 것처럼 그 간격을 더욱 심하게 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반대로 인간적인 것을 높이기 위해 신적인 것을 인간화한다.
그러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한 완전한 기쁨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완전한 자유에서 오니, 나를 얽매고 결박하고 있는 모든 것, 즉 육체, 행운, 자애심 그리고 성공에 대해서까지도 완전히 자유롭게 될 때 얻게 된다. 자유는 반항과 정반대 되는 것이니, 그것은 순수한 동의이고, 결국 자유는 내적 생활을 단일화하며 관상과 활동을 구별하지 않는다. 자유는 우선적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 자기 자신과 타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것은 스스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언제나 직접 목적을 향해 간다. 하느님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일 뿐이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에지디오 수사가 보여준 예에서 잘 볼 수 있다. 그는 말과 행동에 있어, 하느님께서 주신, 있는 그대로의 단순한 모습으로 남에게 알려지고 보여지기를 원할 뿐이었다.
다음에는 이 성인의 최고의 충고를 들어 보자. "주님께서 네게 주시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말라! 남을 사랑하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이 이행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 것과, 남의 잘못을 용서하며, 나도 그런 처지에 있었더라면 남이 참아 주기를 원했으리라는 사실을 상기하여 남에게 그대로 실천할 것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행하신 선을 타인을 통해 이행하신 선보다 더 좋아하지 말 것과, 내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나의 현존이 끊임없이 그에게 지탱이되고 도움이 되도록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또 기쁘게 대할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기쁨은 언제나 영원한 현존자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인 동시에 이에 대한 응답이기에 내적 현동인 자유 재결-인간인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의 힘으로 어떤 일에 대해 판단을 내리거나 혹은 어떤 일을 실행하기로 결심하는 정신 행위-과 같은 것이다. 하느님과의 뜻과의 일치는 그 때문에 생기는 온갖 모욕과 불행을 언제나 참고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물론 이때 받게 되는 모욕과 불행은 하느님을 섬기고 찬미하는 데 아무 장해도 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로 기쁨은 규칙서 제10장에 따라 각자로 하여금 건강하거나 병들었거나 간에 주께서 원하시는 그런 상태로 있기를 원하게 만들며, 또한 기쁨은 지극히 순수하고 완전한 수락을 요구하니 고통까지도 사랑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기쁨은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 뿐만 아니라 연옥과 지옥에 있는 영혼들까지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한다. 이렇게 완전한 기쁨은 인류의 모든 고통을 생각하고, 그것을 참아 견디며 받아 들인다. 왜냐하면 완전한 기쁨이란 모든 고통을 초월하여 그것을 변용시키기 때문이다.
◎'영원한 현존자는 절대로 변할 수 없고 영원히 다할 수 없는 사랑 자체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삶은 다름 아닌 영원토록 사랑하시는 것이며, 당신의 삶과 기쁨을 나누어 주시는 것뿐이다. 우리 영혼의 생명은 바로 이 영원한 사랑이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이 생명의 원천을 따라 사랑하기 위해 불린 것이다. 따라서 이 현세계에 있어서나 저 영원한 세계에 있어서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사랑하는 일이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름대로 절대적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만일 절대로 또 영원히, 언제 어디서나 사랑할 것을 선택할 때 나는 영원한 현존자와 일치하게 될 것이다. 이때에 나의 삶은 곧바로 영원한 현존자의 삶이 될 것이니 그것은 바로 영생이요, 기쁨이다. 어떤 청년이 예수께 "무엇을 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질문 했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루이 라벨이 기쁨을 최고 가치라고 표현한 것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