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활동이 우리를 현세적 요구에 속박시켜 영원을 잊게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영혼의 순수한 활동인 현동은 먼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현동이 이행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현동 자체의 완성만을 추구한다. 사건은 시간 속으로 끊임없이 질주하지만 현동은-사랑이 현동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영원에의 접근을 가능케 한다. 현동의 재료 그 자체는 무관한 것이다.성 프란치스코회의 규칙서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각자는 그가 불릴 때 가지고 있던 직업과 일을 그대로 가질 것이다." 현동은 언제나 현재에서만 행해진다 또한 현동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대한 현재의 현동이다.
이 현동 안에서 시간과 영원은 화합한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가 인간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데 놀란다. 그는 우리가 그때그때 처해 있는 환경에 정확히 순응하도록 마음을 다할 것을 권할 뿐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어 '거룩한 민첩성'을 요구한다. 이 거룩한 민첩성은 우리에게 요구된 일에 대해 한 번도 지체하거나 앞지르도록 하지 않으며, 이기심이 잠입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우리에게 요구된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게 한다. 우리가 만일 욕망이나 몽상에 사로 잡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충실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간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성 자체 안에서, 우리의 현시적 삶을 바라보시며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비추고 지탱해 주시는 하느님의 눈길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