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키스’, 1304-1306년, 프레스코, 파도바,
아레나 스크로베니 경당, 이탈리아.
이 작품은 파도바의 부유한 상인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파도바 아레나의 스크로베니 경당 내부의
프레스코화로, 이 작은 가족 경당 측면 벽에는 ‘마리아와 요셉’, ‘요아킴과 안나’(성모의 양친),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애’
장면이 그려졌다.
‘그리스도의 생애’ 중 ‘유다의 키스’라는 작품은 예수를 고발한 유다를 앞세워 경비병들과 군인들이 예수를 생포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는 마르코 복음 14장에서 유다가 로마 군인들과 짜고 예수에게 다가가 “선생님!” 하며 입을 맞추자 군인들이
달려들어 체포하는 장면이다.
그림 전경 오른쪽의 분홍 옷의 남자는 다급히 손을 들어 사건을 저지시키려는 듯 보이고, 뒷모습을 보인 푸른 옷 차림의
남자는 견고하고 짧은 왼팔을 뻗어 한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다. 이 뒷모습의 남자 앞에는 머리에 후광이 있는 시몬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요한 18,10)는 복음의 구절이 묘사되어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사람의 뒷모습이 등장한 것은 혁명적인 것으로, 이는 회화가 해왔던 서술적인 역할을 넘어 장면의
사실성과 드라마틱한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시도된 것이다.
또한 조토를 시작으로 비현실적인 금빛 배경은 푸른 하늘로 대치되었고 거칠게 그려진 흙바닥 역시 매우 사실적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노란 망토 차림의 유다는 가식적인 몸짓으로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데, 그의 손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커다랗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옷의 주름은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들에게로 인도하고, 분홍 옷의 남자와 노란 망토의
유다 그리고 등을 돌린 푸른 옷의 인물에게 은은하게 비추어지는 자연광은 몸에 입체감과 무게감을 강조하여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그림에서 공간을 연출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이같이 조형적인 조화와 통일성으로 그려진 그의 솔직한
그림은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단순한 형태와 구성, 선명하게 규정된 인물의 무리, 이야기의 단순성 등 이 모든 요소는
조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내적인 일관성과 힘을 갖는다.
하지만 이 그림의 절정은 예수님과 유다, 선과 악이 대립한 긴장감 넘치는 극적 드라마에 있다. 예수님과 배반자 유다의
얼굴은 극히 대조적인데,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눈은 어둡고 깊이 그늘져 그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다.
‘마음의 창’인 눈을 이같이 불분명하게 그린 것은 그의 음흉하고 악한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예수님의 얼굴은 깨끗하고 선명하다. 그의 맑은 눈은 유다의 거짓된 행동, 그의 양심과 비참한 최후까지 꿰뚫어
보고 있다. 이 장면은 조형적인 표현을 넘어 인물의 내면 심리까지 절제된 드라마로 그려낸 화가 조토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토 이후 그려지는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저 멀리 천상 옥좌에서 근엄한 자세로 세상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를
저버린 인간을 위해 온갖 조롱과 고통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희생한 ‘인간 예수’이다. 천상의 예수님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인생의 이정표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이, ‘진정 삶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현명한 길을 찾는 것이 더욱 절실한 오늘날, 르네상스 작가 바사리의 표현대로 ‘자연의 제자 조토’는
그의 너그러우면서도 대담하며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의미의 자연주의자’가 되라고, 삶 속의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대자연 속에서 바로
내 안에 계신 하느님 안에서 그 해답을 찾으라고 말이다.
[경향잡지,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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