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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자료집

" 하느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

 

(4)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말씀의 중요성 새롭게 발견

『공의회의 보석!』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이하 계시헌장)은 탁월한 사목자요 학자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했던 레오 요셉 수에넨스 추기경이 이렇게 칭할 정도로 빛을 발하는 문헌이다. 그 가치는 「계시헌장」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다른 문서에도 많은 개혁을 가져오게 했다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톨릭 신학의 근본적인 부분에 새롭고도 적극적인 환경을 조성한데서 찾을 수 있다.

플로릿 대주교는 공의회 제8회기(1965. 11. 18)에 발표된 「계시헌장」 최종안을 소개하면서 『이 헌장의 역사는 공의회의 역사와 같다』고 설명할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왜냐하면 계시헌장이 공의회 기간에 일어난 신학의 아주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준비위원회가 1962년에 작성한 계시헌장의 초안은 현대의 제반 문제들과 다소 거리가 있음으로 인해 격론 끝에 부결됐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의회 교부들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초안에 상당한 손질을 가했다. 이로 인해 최종안이 인준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계시헌장은 당시 교회 안팎에 존재하던 다양한 한계로 인해 좀 더 구체적이고 시대에 앞서 가는 제안들을 내놓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 내용과 구도에 있어서 새로운 교회의 골격을 제시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서론을 필두로 제1장 계시 그 자체, 제2장 하느님 계시의 전달, 제3장 성서의 영감과 그 해석, 제4장 구약성서, 제5장 신약성서, 제6장 교회 생활과 성서 등 총 6장 26항으로 구성돼 있는 계시헌장을 통해 공의회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느님 백성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존귀한 지식을 얻도록 강력하게 권고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훈적으로 강조되었던 계시 개념은 계시헌장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을 건네시고 인간과의 만남을 구하신다」(2항 참조)는 대화적이며 현재적 요소로 확대되었다. 「계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1차 바티칸공의회보다 사목적이고 성서적인 방향을 취했음은 「계시헌장」의 6개 장 중 4개 장이 성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계시헌장」은 7~10항에서 성서와 성전의 상호 관계를 밝히면서 이 두 가지가 하느님의 똑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오므로 하나를 이룰 만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교부들은 이 성전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과 생활 안으로 이 성전의 풍요로움이 흘러 들어온다』(8항)고 선언한다. 교부들의 가르침이 「성전」의 주축을 이룸으로써 교부들에 관한 연구가 하느님의 계시에 접근하는 데 중요하고 필요불가결의 길이 된다.

이와 함께 계시헌장은 12항에서 성서 해석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헌장은 「성서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에 유의해 성서가 하느님의 유일한 인간구원 계획을 수록한 책이고, 구원 계획의 핵심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성서 해석은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고 그리스도에게 돌아와야 함을 역설한다. 또, 성서가 「신앙의 유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해석도 신앙의 유산 안에서, 즉 성전에 따라서 이해되어야 함을 밝힌다. 다시 말해 성서가 살아있는 하느님 백성의 성전 밖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넓은 의미의 성전 안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 해석도 성전 안에서 성전을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헌장은 「신앙의 유비(類比)」에 유의해 성서의 어떤 부분의 해석이 성서 전체의 의미와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교회 일치의 정신을 담아내고 있는 「계시헌장」은 계시와 신앙을 율법, 가르침, 교리의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복음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이로써 신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갈라진 형제」간에 쌓였던 대립을 불식시키며 화해의 다리를 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