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論 / 마리아론 25 회
(니체아공의회와 칼체돈공의회까지의 교부들):
이 시기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새로
운 이단에 대해 답변을 마련해야만 하였다. 이
때 4개의 큰 공의회, 즉 제1차 니체아 (325년),
제1차 콘스탄티노풀(381년), 에페소(431년),
칼체돈(451년) 고의회가 개최되었는데, 그리스
도론적 관점에서 논쟁이 벌어진 가운데 마리아
의 신적 모성이 거론되었다. 또한, 정례가 정립
되어 가면서 마리아 축일들이 설정되기 시작하
였다. 에우세비오 (+340)는 이사야서 7장 14절
의 엠마누엘 예언과 관련해서 ‘동정녀의 표징이
바로 구원의 역사임을 밝히면서, 요셉만이 아니
라 마리아 역시 다윗의 후손임을 주장하였다.
니체아공의회의 주역이었던 아타나시오 (+373)
는 아리우스파에 대항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
성과 인성의 일치를 강조하는 가운데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Theotokos) 라는 호칭으로
언급하였다. 에프렘(+373)은 오점() 없이 거
룩한 마리아의 성성() 과 영원한 동정성을 인
정하면서도 동정녀 마리아가 여느 신앙인들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어두움을 이겨 나가야 했음
을 언급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대부분의 동
방교부들은 공통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나치
안츠의 구레고리오 (+390)은 인성과 신성을 지
닌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의 탄생, 즉 성부로부
터의 영원한 탄생과 시간 안에서 마리아로부터
의 탄생 겪었기에 마리아를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 로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요한 그리소스토모 (+407)는 마리아의 동정성
과 모성에 대해 교회의 신앙을 옹호하였다. 그
러나 ‘하느님의 어미니’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
고, 오히려 마리아를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본
받아야 할 모범으로 여느 신앙인처럼 신앙의 어
두움을 서서히 극복한 여인으로 묘사하였다.
예페소공의회의 주역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444)는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추종
자들이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모친’(Christokos)
이라고 한 주장에 반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
라는 칭호를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
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지녔지만 말씀 안
에서 위격적 일치를 이루기 있기 때문이다.
에페소공의회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
임을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이를 선언했다.
(DS251-252). 이처럼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그리스도론적 관심에서 논의되었다.
(5세기의 서방 교부들) : 4 - 5세기 서방교회
- 계 속 -
참고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1995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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