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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행복과 불행의 원천인 양심 /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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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의 원천인 '양심'


2013년 다해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11,27-28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 박사의 환자 중에 루시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아주 똑똑한 여성이었는데 갑자가 하반신 마비가 왔습니다. 신경학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형부에 대한 사랑이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언니가 병으로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언니의 시신 곁에 서 있는 형부를 보며 속으로 ‘이제 형부는 자유인이야. 나와 결혼할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다리가 감전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마비가 시작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루시는 자신의 마비와 형부에 대한 사랑의 관계를 몰랐습니다. 프로이트 박사가 루시의 숨겨진 마음 즉, 형부에 대한 사랑과 언니에 대한 죄책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의식 아래 숨어 있던 감정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루시는 극적으로 치료되었습니다. 프로이트 박사는 이런 환자들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에는 자신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마음의 지하실을 비의식이라 불렀습니다. 모든 병과 마음의 문제들이 여기서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출처: 이무석, 친밀함, 13]

프로이트는 비의식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저는 비의식에 있는 ‘양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이란 것이 있어서 하느님 뜻에 맞으면 기쁨을, 그것에 맞지 않으면 고통을 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느님께 벌을 받기 전에 이미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고, 숨고, 가리고, 서로를 탓하였습니다. 이는 그 내면의 양심이 이미 그들을 죄인으로 판결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복은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가지거나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양심의 법에 어긋나게 살거나, 그렇지 않거나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하느님 뜻에 맞게 살거나 자신의 뜻대로 살거나에 달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낳으신 어머니가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여인에게, 참 행복의 원천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즉 당신을 낳으셨더라도 그것이 하느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면 절대 성모님도 행복하실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받아 하늘나라 들어갈 보장을 받았다고 다 행복할까요? 혹은 사제가 되었다고 해서 다 행복할까요? 서품을 받으면 그 사제의 어머니는 기쁨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당신의 아들이 사제가 되는 영광을 받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사제로서 끝까지 잘 살아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자녀가 하느님 뜻에 끝까지 잘 따라줄 때 행복한 것입니다. 만약 사제인 아들이 사제직을 내려놓아야 할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지금까지 맛보았던 고통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제로서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태석 신부님 같은 경우는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먼 아프리카 가난한 땅에 가서 생을 바쳤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불행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드님이 아버지 뜻을 따라 사는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태석 신부님도 고생을 하면서도 편하게 사는 신부님보다 불행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고 있다고 ‘양심이 칭찬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느님 뜻을 알면서도 사제의 삶에 목숨 바치는 것보다는 다른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그 사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의 원천은, 오늘 복음말씀대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신 이유는 고통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에서 오는 행복을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성모님께서 구세주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위대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사셨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바로잡아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이유는 자아를 죽여 내 주인을 주인으로 삼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항상 반하는 나의 자아가 곧 불행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이란 나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아, 나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행복과 고통의 원천은 양심에 있습니다. 어차피 지니고 태어난 양심을 버리고 살 수 없다면,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행복의 유일한 길입니다.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