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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회개의 표시 / 강길웅 신부님 ~

 

    회계의 표시 / 강길웅 신부님

        어떤 죄든지 죄 그 자체는 무서운 악입니다. 이 악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악이 감히 하느님께 도전하여 맞먹으려고 합니다. 악은 분명히 하느님의 창조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근본은 알 수도 없는 것이 인간까지 충동질하며 하느님께 대항하도록 유혹합니다. 인간은 그래서 악의 세력에 자주 넘어집니다. 바로 그것이 죄입니다. 명색이 하느님의 백성이요 자녀인데 그 자녀가 악의 노예가 되어 자기 부모인 하느님께 대항한다는 것은 마치 자기 부모에게 칼질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식으로 계속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하셔도 앙심을 품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 병든 백성을 건지기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이상하십니다. 그렇게 의로운 분이신데 그래서 선한 이는 상주시고 악한 이는 벌하시는데 이상하게도 그 악한 이에게 벌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죄 때문에 죄를 딛고 일어서서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그 작업을 하시는데 이를테면 악에서 선을 뽑아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마리아 막달레나도 그랬고 사도 바오로도 그랬으며 또한 성 아우구스티노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들은 악에 깊이 빠졌던 죄인들이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위대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더 순수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더 큰 선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죄인을 찾으십니다. 하느님은 그처럼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죄인에게 큰 관심을 갖고 계시며 죄인에게서 선을 끌어올리시기 위해 끊임없는 작업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바로 죄인 안에서 빛나게 됩니다. 복음에도 그 내용이 나옵니다. 세관장 자캐오는 분명히 동족을 등쳐먹는 날강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세리는 법이 인정해 주는 도둑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로마에 충성하면서 자기 민족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는 창녀보다 더 나쁜 자들이었습니다. 창녀는 자기 한 몸을 팔았지만 세리는 자기 백성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죄의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희망을 걸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천한 신분상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키도 물론 작았지만 그래서 멀찍이 나무 위에서 그분을 몰래 지켜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자캐오를 부르십니다. 자비와 애정을 가지고 부르시며 그 자캐오의 집에서 당신이 머무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죄인의 집에 머무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캐오를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며 인생 그 자체를 한 차원 끌어 올려 주신 것입니다. 이에 자캐오는 감격하여 사랑의 보답을 약속합니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렵니다. 혹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 주겠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자기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에게서 더 큰 선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받았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선인에게보다도 죄인에게 구원의 문이 더 쉽게 열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뉘우칠 수 있고 뉘우치면 더 큰 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면 뉘우칠 수가 없고 더 큰 선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참된 의인이 있는가 하면 또 자신은 아무 죄가 없다고 하는 진짜 죄인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성인들도 자기들은 누구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고백했지만 그러나 바리사이파 같은 위선자들은 자신들만이 의로운 자들이라고 자부했습니다. 하느님 앞에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혹 누가 죄가 없다고 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은 자기 죄를 아는 데 있고 그 죄를 뉘우쳐서 회개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도 회개의 표시를 하도록 합시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