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겸손 기도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 겸손기도 신부님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모든 존재는 어딘가로부터 비롯합니다. 즉 그들을 창조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간단하게는 우리가 쓰는 연필부터 시작해서 자동차도 그들을 만든 이들이 있게 마련이고 넓게는 우리가 마주하는 자연과 이 우주도 그 창조를 시작한 원동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 안에서 그분을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헌데 우리는 그 아버지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갇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틀 속에 갇혀서 우리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우리 스스로를 모든 사물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주체로만 삼을 뿐, 그 밖의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신’이 되려...
고 하는 것이지요.

나의 관점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참한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나’를 중심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게 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과 아닌 것들로 나뉘어지지요. 그래서 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 바로 그 분이 만물의 주인이시고 세상의 중심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에 머무르실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그분 안에서 세상 모든 만물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소비재’로만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서 자연은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오로지 우리 자신들의 목적으로만 소비해 버리기 때문에 결국 자연이 망가져가고 사라져가고 결국 그 결과로 우리의 생명에도 위협이 가해지는 셈이지요. 우리는 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아니라 소들을 고기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양산’해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소들의 각종 질병들, 위해한 것들이 인간에게 돌아오기 시작하지요. 인간은 목재를 자신의 탐욕으로 쓸 줄만 알았지 나무들과 함께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수록 맑은 공기를 잃어가고 있지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밀어넣는 그 모든 근본에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합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가르치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신이 되는 세상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모든 것을 소비하고 결국 우리의 생명과 더불어 모든 것이 산산 조각이 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중심에 둘 때에 그 세상은 재창조하고 모든 이들이 하나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