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10장 2부
사람들의 배척
예수님이 그렇게나 스스로의 신원에 대해서 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또 의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양의 비유를 말해 줍니다. 목자에게 속하지 않은 이들, 즉 예수님의 양떼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반면 예수님은 당신의 양떼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양떼가 되는 좋은 점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하느님은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뜻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에게 화가 나서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왜 돌을 던지느냐?
누군가가 다른 이를 해치려는 것은... 무엇 때문에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무언가 예수님에게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걸 묻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난 것인지 말이지요. 사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그 자체로 그들을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그릇된 행동,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도 하지 않았고 모든 좋은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것은 그들 마음이 뒤틀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름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즉 예수님의 좋은 일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으로 자처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마저도 대답해 주십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고 불리우기에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그릇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애시당초 예수님을 그릇된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그분이 하시는 선한 행위나 그분이 하시는 진리의 말이나 올바로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잡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시지요.
요르단 강 건너편
요르단 강 건너편, 그곳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이었습니다. 요한의 기억이 생생한 곳이지요. 예수님은 옛 친구가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다가갑니다. 우리는 때로 이런 ‘관계’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혼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관계를 통해서 스스로도 알아가는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요한이 한 말을 떠올리며 예수님을 믿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배척
예수님이 그렇게나 스스로의 신원에 대해서 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또 의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양의 비유를 말해 줍니다. 목자에게 속하지 않은 이들, 즉 예수님의 양떼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반면 예수님은 당신의 양떼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양떼가 되는 좋은 점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하느님은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뜻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에게 화가 나서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왜 돌을 던지느냐?
누군가가 다른 이를 해치려는 것은... 무엇 때문에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무언가 예수님에게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걸 묻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난 것인지 말이지요. 사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그 자체로 그들을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그릇된 행동,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도 하지 않았고 모든 좋은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것은 그들 마음이 뒤틀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름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즉 예수님의 좋은 일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으로 자처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마저도 대답해 주십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고 불리우기에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그릇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애시당초 예수님을 그릇된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그분이 하시는 선한 행위나 그분이 하시는 진리의 말이나 올바로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잡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시지요.
요르단 강 건너편
요르단 강 건너편, 그곳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이었습니다. 요한의 기억이 생생한 곳이지요. 예수님은 옛 친구가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다가갑니다. 우리는 때로 이런 ‘관계’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혼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관계를 통해서 스스로도 알아가는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요한이 한 말을 떠올리며 예수님을 믿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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