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인격 모습 중시한 ‘한정불이론’ 설파하는 - 라마누자
라마누자는 일반 대중의 종교적 헌신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인도종교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힌두교 베단타 학파에는 크게 ‘불이론(不二論, Advaita)’ 베단타를 대표하는 샹카라와 샹카라보다 2~3백년 후에 나타나 ‘한정불이론(限定不二論, Viśistādvaita)’ 베단타를 주장한 라마누자(Rāmānuja), 그리고 다시 2백년 지나 완전한 이원론(二元論, Dvaita)을 역설한 마드바(Madhva)가 있다. 이 중 라마누자는 비쉬누 신을 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 종교에서 가장 위대한 세 명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그의 생몰연대를 1017~1137로 잡지만 이렇게 되면 120년을 산 셈이라, 1077~1157 등 다른 연대를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베단타학파 3대 성인으로 추앙
라마누자는 인도 남부 타밀 나두의 페룸부두르(Prumbdur)에서 비쉬누 신을 섬기는 브라민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려서 총기가 뛰어나고, 다른 캐스트 계급 사람들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십대에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죽은 다음, 이웃 도시로 이사. 거기서 애다바프라카샤(Yadavaprakasa)라는 스승을 만나 샹카라의 불이론 베단타를 공부했다. 총명하기 그지없던 그는 불이론 베단타를 쉽게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미 비쉬누 신 숭배를 좋게 여기던 그로서는 불이론 베단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승과 작별하고 한정불이론을 가르치는 스승 야무나타랴(Yamunacharya)를 찾아 길을 떠났다.
전설에 의하면 그 스승은 라마누자가 도착하기 직전에 죽었다고 한다. 죽은 스승은 손가락 세 개를 꼬부리고 있었는데, 라마누자가 신을 섬기는 것을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 가르치고, 『브라마 수트라』 등을 주석하고, 몇몇 스승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는 서원을 하자 세 손가락이 다시 펴졌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6개월 정도 있다가 부인과도 이별하고 ‘출가 수행자(sanyasin)’의 길로 들어서서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생각을 더욱 깊이 하고, 『브라마 수트라』, 『바가바드 기타』, 『우파니샤드』 등에 대한 주석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저술에도 힘썼다.
이처럼 라마누자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불이론에 근거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결국 상캬라의 불이론 베단타에 머무르지 않고, ‘한정된’ 불이론 베단타를 채택하게 된 셈이다. 둘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샹카라가 초인격적인 절대자를 깨닫는 것을 최고의 목표라고 주장한 것에 반해 라마누자는 절대자의 인격적 모습을 더욱 중요시한 것이다.
샹카라의 경우 궁극 실재로서의 브라흐만은 결국 어떤 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니르구나 브라흐만(nirguna Brahman)’이었다. 그러나 보통 인간으로서는 이런 추상적인 브라흐만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샹카라는 오로지 인간 지성에 내재한 한계성을 감안해서 브라흐만에 모든 아름다운 특성을 다 붙여서 생각해도 좋다고 하고, 이런 면의 브라흐만을 ‘싸구나 브라흐만(saguna Brahman)’이라 하였다.
그런 특성 중 가장 중요한 특성이 ‘인격’이므로 브라흐만을 ‘주님(Ishvara)’ 같은 인격적 존재로 모셔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샹카라는 이렇게 브라흐만을 인격신으로 경배하는 것이 어디까지나 일종의 잠정조치 내지 차선책에 불과한 것임을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영적 통찰을 통해 인격신의 단계를 넘어 니르구나 브라흐만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므로 참된 해탈(목샤)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샹카라의 ‘불이론’ 수용 안 해
힌두교에서는 해탈(목샤)에 이르는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보는데, 첫째가 깨달음의 길(jnana marga), 둘째가 신애의 길(信愛, bhakti marga), 셋째가 행동의 길(karma marga)이다. 샹카라는 철두철미 깨달음의 길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어느 신에 헌신하고 그 신을 인격적으로 경배하고 싶어 하는 일반 대중의 심성 깊이 뿌리박힌 보편적 종교성을 경시한 셈이다. 일반 대중에게는 어느 인격신 ‘주님’을 받들고 그 신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치는 신애의 길이 훨씬 더 쉽고 실감나는 종교적 길이었다.‘신애의 길’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바가바드 기타(Bhāgavad Gīta)』라는 경전에서 다른 어느 길보다 더욱 훌륭한 길로 꼽히는 길이었다. 이 경전에 보면 크리쉬나의 모양으로 나타난 비쉬누 신이 누구나, 심지어 천민 계급의 슈드라도, 그리고 여자도, 크리쉬나를 진심으로 경배하고 사랑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라마누자는 샹카라가 주장하는 깨달음의 길로서도 구원과 영복을 받을 수 있지만, 신애의 길에 의해 얻어진 최고 형태의 구원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라마누자도 샹카라처럼 브라흐만과 순수히 비인격적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오로지 깨달음이나 직관을 통해서도 브라흐만을 체득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런 체험은 『바가바드 기타』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브라하만을 인간에게 사랑과 은총을 부어주시는 인격신으로 보고 그를 경배하는 신애의 길을 통해 얻는 구원과 축복에 비하면 열등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라마누자의 이론에 의하면 궁극 실재 브라흐만에게는 두 가지 ‘존재 양식(prakaras)이 있는데, 그것이 곧 물질세계와 개인의 영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세계와 개인의 영혼, 그리고 궁극 실재가 다 같이 실재라고 보았다. 물질세계나 개인적 영혼도 궁극적으로 궁극 실재를 떠나서 존재하는 독립된 실재일 수 없기 때문에 궁극 실재와 마찬가지로 실재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계나 영혼은 궁극 실재의 ‘몸’으로서 궁극 실재는 이를 통해 스스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느 한 쪽은 비실재이고 다른 쪽은 실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하나’로 본 것이다.
가르침, 후대에 남북파로 갈려
따라서 인격적 특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비쉬누도 궁극 실재로서의 브라흐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역설했다. 말하자면 비쉬누가 곧 브라흐만이요, 브라흐만이 곧 비쉬누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인격신으로서의 비쉬누를 섬기는 것은 결코 하나의 차선책이나 방편 같은 준비단계일 수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모든 아름다운 특성을 갖춘 인격신을 모시는 것이 추상적이고 메마를 수 있는 초인격적 브라흐만을 깨닫는 것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종교적 길이라고 주장했다.
라마누자의 신은 기본적으로 은총과 사랑이 가득한 인격신이었다. 이런 신은 심지어 업의 원리마저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자기의 영혼을 완전히 신의 뜻에 맡기고 그의 은혜를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누구나 비쉬누 같은 인격신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하게 될 때 자기는 신의 일부일 뿐임을 자각하고 오로지 그에게만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개별적인 영혼은 신에게 몰입되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개별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신과 완전한 교제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신과 하나이면서도 신과 별개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한정된 불이론’이라 한 것이다. 라마누자의 이런 가르침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따르던 ‘신애의 길’을 옹호하고, 특히 비쉬누 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강력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라마누자는 좀더 구체적으로 비쉬누 신이 그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첫째, 하늘 도성에 거하는 영혼들을 위해 우주 뱀 쉐사(Shesha) 위에 앉아 락스미와 다른 아내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둘째, 지식의 축적, 창조, 보존, 유지, 통치력, 반대를 극복하는 능력 등에 스스로를 나타내고, 셋째, 인간들을 돕기 위해 난쟁이, 라마 왕, 크리쉬나, 물고기, 거북, 돼지, 사자, 전사, 붓다, 그리고 앞으로 올 다른 한 가지를 합해 열 가지 다른 형태의 아바타르(avatars, 化身)로 나타나고, 넷째, 사람들의 마음에 거하면서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기도 하고 때로는 비젼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섯째, 사람들이 그를 위해 만드는 형상 속에도 나타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목표는 하늘에 가서 완전한 의식으로 비쉬누의 현존을 즐기는 것이다.
라마누자의 사후 신의 은총이라는 개념이 더욱 확대되고, 신의 은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북종과 남종의 두 가지 학파가 등장했다. 북종은 ‘원숭이 학파(Vadgalai)’라고 하고 남종은 ‘고양이 학파(Tengelai)’라고도 한다. 원숭이 학파는 어미 원숭이가 그 새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듯 신이 그의 은총으로 인간을 구원하지만 원숭이 새끼가 그 어미 원숭이에게 매달리듯 인간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몫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고양이 학파는 어미 고양이가 입으로 새끼 고양이를 옮길 때 새끼 고양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어미 고양이에게만 의존하듯 인간도 오로지 신의 은총을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라마누자의 영향을 받고 그의 가르침을 더욱 철저하게 밀고 나가 완전한 이원론을 주장하게 된 사람이 등장했다. 13세기의 마드바였다. 마드바는 『우파니샤드』의 가르침과 완전히 결별하고 신과 인간의 영혼은 완전 별개의 실재라 주장했다. 그는 비쉬누의 아들. 바람의 신인 바유((Vāyu)가 신의 은총을 가지고 내려와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는 기운을 불어넣어 주면 인간은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구원 받은 영혼은 지고의 영혼인 비쉬누의 임재 하에 영복을 누리고, 여기서 제외된 영혼들은 영원히 지옥에서 살거나 끊임없는 윤회를 계속한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그 당시 인도에서도 잘 알려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종말관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보는 학자들도 있다 라마누자는 샹카라처럼 철저하고 심오한 사상가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 대중의 종교적 헌신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인도 종교사에 더욱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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