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사람이다 - 토머스 머튼
신비 생활의 역설(逆說) 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을 비우고 그리고 사심이 전혀 없는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면 사람은 자기의 가장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또 그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때문에 관상 생활에 있어 가장 나쁜 착각 중의 하나는 자신을 자기 안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철저한 집중력과 의지로 모든 외적 실체를 차단함으로써, 그리고 자기를 자기 안에 가두고 자라처럼 문을 꽉 닫아 세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를 분리시킴으로써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자기 최면은 관상의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빛과 무한한 열정으로 우리의 모든 기능으로 들어오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소유하시기 전에는 우리는 하느님을 '소유'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기를 속이고 살아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를 격리하는 일은 자기를 죽일 뿐입니다. 얼어붙은 것을 불이 어떻게 태울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과 일치하면 할수록 그분과 일치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더욱 일치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 안에 사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의 생명이며 우리 모두의 생명이고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당신을 사랑하시는 그 같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일치하여 아버지와 하나이셨던 것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내가 우리가 될 때에,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뿐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는 모두 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사랑하시는 분이 그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관상 생활의 최종적 완성은 사람들이 저마다 보는 하느님에 대한 개인적 직관인 개개인의 천국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택된 모든 사람, 모든 천사와 성인들의 몸을 통해서 흐르는 사랑의 바다입니다. 그들의 관상은 그것을 나누지 않거나 나누더라도 소수의 사람이나 관찰력과 기쁨이 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나눈다면 불완전합니다.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관상하기 위해서 천국에 그리고 관상 중에 있다면 나는 그곳에서 보다 많은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 중에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관상하기 위해 그곳에 있다면 우리 모두의 기쁨은 보다 클 것입니다. 관상은 함께하지 않으면 완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흘러넘쳐 영광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다른 모든 사람들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생명이시고 또 우리 모두는 다 그분 안에 하나라는 것을 앎으로써 관상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나누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충만한 희열을 끝내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현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희미할 뿐입니다. 이 일치는 신앙의 암흑에서가 아니면 우리가 인식도 할 수 없고 즐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될수록 우리 서로는 더욱더 일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관상의 침묵은 하느님뿐만 아니라 사람들과도 함께하는 깊고 풍요로우며 끝이 없는 사회입니다. 관상가는 자기 안에 고립된 사람이 아니고 겸손과 순결한 마음으로 자기의 외적이고 자기중심적 자아로부터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단순하고 겸손 된 사랑에 심각한 장애가 되는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더불어 혼자 있으면 있을수록 서로 함께 있는 것이며 어둠 속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의지와 사랑에 따라 우리가 일과 활동과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갈수록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수가 증가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은거 중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혼자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더 함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에, 도시와 군중이 아니고 진정한 사랑의 사회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분과 더 홀로 있게 됩니다. 나의 영혼과 너의 영혼 안에서 나는 우리의 생명이신 같은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은 우리의 사랑 안에서 당신을 발견하십니다. 우리는 다 함께 낙원을 찾습니다. 그 낙원은 그분의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사랑을 그들의 영 안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나의 진정한 인격은 신비로운 그리스도 안에서 다음과 같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靈)이 누구에게서도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나를 통해서 당신과 모든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우리 모두를 통해서 그 사랑을 하나님께 되돌리기 위해서 우리를 하느님께로 모으고, 그분의 무한한 자비에 따라 우리 모두를 그분에게로 되돌려 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집을 되비추는 문과 창문들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나를 통해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그 사랑에 대해서 문을 닫으면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 그리고 당신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그분의사랑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 특이한 표현이 거절당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사시지 않으면 막힐, 색다르고 특이한 방향으로부터 당신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안에 있기 때문에 그곳이 아니면 오지 못하는 거처로부터 나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 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보다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달리는 표현되지 않는 둘 이상의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즉 그것은 하느님이 안 계시면 있을 수 없는 둘 이상의 기쁨입니다. 이런 사랑과 이런 기쁨 중에 삽시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그리고 관상 중에 삽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우리로서의 우리 자신과 서로를 찾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결국에 가서 실재가 되는 것은 이 사랑에서뿐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한 하나님의 생명을 진정으로 나누는 것은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실재적 관계의 삼위일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은 모든 이기심을 무한히 초월하십니다. 하나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본성상 홀로 떨어져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존재하십니다. 이 삼위(三位)는 하나이시고 하나님은 이 삼위를 떠나 하나로 존재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삼위 더하기 하나의 본성, 그래서 넷이 아닙니다. 그분은 삼위이시지만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무한한 홀로(하나님의 본성)이자마자 완전한 사회(삼위)이십니다. 실재하는 세 관계 안에 있는 하나의 무한한 사랑이십니다.
세 위(位) 안에만 계시는 하나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실체와 사랑이 언제나 같고 항상 새로워지며 완전하고 전체적이며 언제나 시작하고 끝이 없으며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충만한 관계의 순환입니다. 성부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언제나 시작하고 있으며 성자 안에서는 항상 가득 차 있고 성령 안에서는 완전합니다. 그 사랑은 새로워지며 영원한 원천에 머무르기를 절대로 그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오가며 사랑을 좇는다면 그 사랑이 머무는 곳을 추적할 수 없으며 어느 한구석으로 몰수도 없고 붙잡을 수 없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사랑의 결실을 자기가 차지하려 하듯 삼위 중 한 위에 고정시킬 수도 없습니다. 삼위의 한 사랑은 끝이 없고 소진되지 않으나 항상 완전하게 주고 온전히 나누기 위해서 받는 한없이 풍요로운 자기를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 사랑을 멈추고 흡수할 수 있는 하나의 자만하는 '자아' 안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행복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며 완전하고 한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이기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 위격은 한 생명을 주시는 기쁨으로 너무 많아 흘러넘치고 사심이 없는 실존하는 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내적 생명은 완전한 관상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생명은 그분들의 생명에만 참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위격이 서로의 위격 안에 사시듯 우리도 언젠가는 삼위 안에서 완전히 하나님과 우리 서로 안에서 살 것입니다.
새 관상의 씨/ 토머스 머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