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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대림의 구체적인 방법 / 박상대 신부님 ~

대림(待臨)의 구체적인 방법

 

 

-박상대신부-


우리 모두는 이제 막 시작한 대림시기에로 초대를 받았다. 대림시기는 ‘예수님의 성탄과 인자의 재림’, 이 두 가지 사건을 한꺼번에 묵상하는 기간이라고 했다. 이 초대는 그래서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4주간의 준비를 통해 이미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나의 “주님”으로 알아 모시는 구유에로의 초대이다. 즉, 나를 위한 하느님의 성탄파티에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자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그분께서 주최하는 공심판에로의 초대이다. 이것도 말하자면, 나와 온 세상이 인자의 재림과 심판파티에 초대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탄과 대림의 초대에 응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이 세상에 오시는 주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마태 24,44; 마르 13,37; 루가 21,36)이다.


이 세상에 오시는 주님은 이미 사람이 되어 오셨던 주님이시며, 세상의 완성을 위해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주님이시며, 또한 오늘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 앞에서 깨어 기도한다면 대림의 초대에 잘 응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 24시간 잠도 없이 깨어 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내 삶의 한가운데 현존시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방법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 기도하기도 하고, 미사참례도 하며, 내 할 일도 하고, 하기 싫고 시키는 일을 해야 하기도 하며, 멍하니 있기도 하고, 걱정하며, 다투고, 화내고, 싸우며, 기뻐하고, 아파하며, 슬퍼하면서 하루의 마지막에 가서는 반성하면서, 아니면 지쳐서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든다.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느님을 현존시킨다는 것, 이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우리 삶의 한가운데 현존시킨다는 것’은 방법상 그 출발점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오늘 복음에서도 백인대장이 중풍병을 앓고 있는 하인을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8절) 하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아무도 주님의 현존을 내 안에 받아들일 자격이 없다. 그럼으로 불구하고 우리는 미사성제에서 주님의 거룩한 몸을 받아 모시기 전에 백인대장과 같은 말로 고백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주님의 한 말씀으로 내가 깨끗하여 질 수 있다는 믿음, 그럼으로써 감히 주님을 모실 수 있겠다는 믿음이 바로 그 방법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깡그리 모아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 사는 것이 옳은 방법일 것이다. 이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복음이 입증하고 있다. 예수님의 기적이 바로 하느님나라가 이 땅에 와 있다는 표징이며, 우리가 또한 이미 와 있는 하느님나라의 땅에서 숨쉬며 살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