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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의 선물 / 박상대 신부님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의 선물

 

 -박상대신부-

  드디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다. 예수 탄생을 예고하던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지 여섯 달이 되었다(1,36)고 하였고, 그 후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석 달을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1,56)고 하였으니, 적어도 아홉 달이 지나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은 것이다. 아홉 달 전에 벙어리가 되어 집에 돌아온 즈가리야로부터 어떤 소식을 들었다기보다 몇 달이 지나 스스로 태기(胎氣)가 있음을 느끼고 "마침내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도와 주셔서 나도 이제는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1,25)며 기뻐하였던 엘리사벳이 드디어 아들을 낳은 것이다. 엘리사벳의 아들출산은 스스로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온 이웃과 친척들도 기뻐하면서 주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찬양하였다.
 
  선구자의 탄생과 여드레 째 되는 날의 할례식은 아이의 명명(命名)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누구나 8일째 되는 날에 할례(포경수술)를 받아야 했고(창세 17,12; 21,4; 레위 12,3), 이 날 작명(作名)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친척들이 아이의 할례식에 와서 관례대로 아버지의 이름을 따 아이를 즈가리야라고 부르려 하였으나 아니 될 말이다. 아이의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미 잉태의 첫날에 아이의 이름은 "요한"으로 결정되었다.(1,13) 이는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었다. 즈가리야 집안에 아무도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없으나 즈가리야 스스로가 서판에 "아기 이름은 요한"(63절)이라고 썼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는 뜻이다. 그 순간 아홉 달 동안 닫혀있었던 즈가리야의 입이 열렸다.
 
  하느님이 자비롭다는 것은 요한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뜻만이 아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이 이름 안에 머물거나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자비를 베푸셨고 그 자비가 세상에 드러났다. 요한의 탄생을 둘러싼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세상에 베푸신 은총의 선물이다. 사람들은 요한이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아이와 더불어 하실 일을 이미 계획하고 계시다. 이로써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준비하시고 시작하신 "어떤 무엇"이 성취된 셈이다. 이제 우리는 이 "어떤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지켜보며 기다릴 것이다. 요한의 탄생을 보면서 세상 모든 아이의 탄생이 하느님께서 세상에 베푸신 은총의 선물이며 자비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모든 아이들 위에 하느님의 거룩한 손길이 머물러 그들을 보살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