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사순 제 2주간 월요일 따뜻한 모닥불이 되어 / 기경호(프란치스코) 신부님 ~

사순 2주 월 루카 6,36-38(15.3.2)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Stop Judging Others 

 

                        

 따뜻한 사랑의 모닥불이 되어  

 

최첨단 정보시스템의 발달로 소통 수단이 극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소통이 끼리끼리에 국한되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를 찾지 못하며,

따뜻한 배려와 관대한 마음을 만나기가 어려워지는 듯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기는 했으나

 너무 허술하게 복구를 했었다.

 

이때 다니엘은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의로우시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남습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다니 9,5. 7. 8)라고 죄를 고백하면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느님 당신은 과거에 우리를 어떻게 돌보신 분입니까?

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이끌어오신 분입니까?

하느님의 과거 업적을 상기시켜드리면서 용서해 주시고, 다시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다니엘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회상하고,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의 자세이며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이다.

 

 용서를 청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용서를 받은 다음에 감사드리는 것이 우리 인간의 올바른 태도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비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

남을 용서해주며 남에게 가진 것을 주라고 가르치시면서

 우리의 유전자가 사랑임을 상기시켜주신다.

 

나아가 남들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우리가 먼저 행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관대함과 사랑의 실천, 선행의 기준은 오직 하느님뿐이심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비롭다는 것도 선을 행한다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더’ 행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비와 선 자체이신 하느님과 같이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자비도 선행을 많이 하다고 해도 늘 부족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겸허한 마음을 지닐 때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다른 이들에게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자비란 하느님으로부터 오기에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자비가 사회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사회 정의이다.

 

사랑과 정의는 뗄 수 없는 짝이다.

사랑으로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이유가 무엇일까?

제자직의 본질은 하느님의 본성인 자비를 지니는 것이고

그분의 자비로운 처사를 본받는 것이다

(6,36).

 

제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처럼 먼저 ‘내놓아야’ 하며 그래야

종말에 더 후하게 받게 된다

(6,38).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동료의 불행을 같이 아파하고 슬픔을 같이 느끼며,

이웃의 필요에 개방되어 있으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과 자선,

 도움과 봉사를 제공하고,

이웃을 비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서로 책망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의 사람이 되려면 ‘먼저’ 용서하고 내어주고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오직 ‘사랑이요 선이신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며,

사랑의 동기가 아닌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판단을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기보다는 인내심과 관대함을 갖고 남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판단은 우월감이나 지배하려는 의도로 해서는 안 되며,

사랑 때문에 그리고 선을 증진시키고 나누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거나 자기 잣대로 판단하기보다는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필리 2,6)

 다른 이들에게 더 너그러워야 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로마 12,1)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할 수 없을 것이다

(집회 28,4 참조).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거듭되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사랑으로 자비를 베푸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것이다

(에페 2,7 참조).

 

 각자 멈추어 진심으로 통회하여 자비를 얻고 그 자비를 나누도록 하자.

우리 모두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늘 회상하며 '따뜻한 사랑의 모닥불'이 되어

 서로에게 ‘좀더’ 관대하고 ‘먼저’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