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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성 주간 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 " 헌시적 사랑과 겸허힌 봉사 "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주간 목 주님 만찬 저녁미사 요한 13,1-15(15.4.2)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The washing of the Disciples' Feet

                        

 헌신적 사랑과 겸허한 봉사  

 

오늘은 주님의 수난과 더불어 성체성사 설정의 신비와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주님만찬 저녁미사는 파스카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며,

그리스도의 봉헌된 사랑과 충만하게 체험하도록 하려는 미사이다.

 

오늘의 입당송은 수난을 통한 구원을, 본기도에서는

그리스도의 내어주는 사랑의 삶을,

 

제1독서는 파스카 축제를,

 

 제2독서는 성체성사의 설정을,

 

화답송은 축복의 잔, 그리스도의 피를 기억하고,

 

복음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겸허함과 봉사를,

 

 봉헌기도는 사랑의 실천을 기억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제 13장부터 어조가 바뀌면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신뢰 깊고 친밀한 대화가 오간다.

 

 1-12장에서 나타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났던

 신랄한 언쟁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13장부터 대화의 분위기가 바뀌어, 간간이 제자들의 오해로

그것이 끊기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예수님께서 다정하게 그것을 바로잡아 주신다.

 

이 대목의 핵심은 14절에 나타난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발을 씻어주는 일은 다소 비천하고 달갑지 않은 모든 봉사들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예수님의 이 봉사 행위는 참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기 위한 예언적 행동이며 열쇠인 셈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의 행위는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

 

아버지께서 모든 권한을 주셨음에도 스스로 종의 신분을 취하여 인간들의 필요에

 전적으로 당신을 내주고, 그들의 손에 당신을 온전히 맡기시는 자세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친히 발을 씻겨 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정화시켜 주시고

생명을 건네주시고자 하셨다.

 

바로 이 역설에 강생(탄생, 나자렛의 삶, 갈릴래아에서의 복음 선포, 수난, 죽음과 부활)의

 모든 의미와 성체성사의 본뜻이 담겨 있다.

 

우리 사이에,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이 되시고자

 우리의 음식이 되어 먹히시고 사람의 처분에 당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바로 이것이 성체성사의 의미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행위는 그분이 하신 행동만이 아니라,

하느님이 누구이신가도 알려준다.

 

 곧, 예수님 안에서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에게 봉사하시는 하느님이 드러난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인간을 섬기려는 분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 삶의 궁극적인 의의도 여기서 함께 밝혀진다.

 

 우리도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다른 이들의 처분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도록 하자.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지음 받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며,

따라서 인간이 참다운 자신이 되는 길은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건네주는데 있기 때문이다.

 

 벗을 위해, 형제자매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직장 동료들을 위해

 자신을 건네주도록 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15절)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도록 하자!

유다는 하느님 사랑의 계시와 삶의 의미에 대한 계시 앞에서

 철저히 자기를 팔아버리는 인간상이다.

 

곧, 불신앙과 자기폐쇄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면에 베드로는 예수께 “제 발만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13,8)라고 거부한다.

 

 베드로가 거부한 것은 예수님의 체통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수난의 운명에 말려들지 않으려 했으며, 어떤 사람에 대한

의무를 떠맡는 것을 속박으로 여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에 전적으로 매여 사는 것을 짐스러워 하며,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자기 뜻대로 살려고 했다.

 

이러한 베드로의 태도를 우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신앙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서로 탓할 일이 없어도 말이나 행동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데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은혜를 입고도 고맙다는 말을 하기가 부담스럽고,

 자기 공로라는 생각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나타난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구원을 입은 사람들로서

자기에게서, 자기 자존심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의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선물임을 받아들여야겠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서로를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 주님 친히 차리신 천상 식탁이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껏 품어 안고, 서로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며,

우리에게 봉사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밥’으로 건네주고,

앞을 다투어 서로를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지켜주소서 - 양우석 작사 작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