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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성 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주간 수 마태 26,14-25(15.4.1)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 26,20)

"Amen, I say to you, one of you will betray me."

 

                        

 슬픈 배반의 메아리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장 친밀했던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그분을 배반했다는 슬픈 사실이 부각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갖가지 표징과

행적을 목격하면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배웠다.

 

그러나 유다는 겨우 종 한 명 값인(탈출 21,32 참조) 은전 서른 닢에 그분을 팔아넘겼다.

예수 수난사의 열쇠가 되는 “넘겨주다”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되풀이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처형에 개입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장 친밀하게 함께 지내던

제자의 손에 의해 ‘철저한 무력함’에 내맡겨지게 된다.

과월절 전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축제를 준비하고,

그분의 자유로운 선택과 부르심에 따라 그곳에 모이게 된다.

 

 누가 방을 제공해줄지 모르나 예수님의 지시는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탈것을 준비하실 때처럼 분명하고 위엄이 있다.

 

 이는 예수님의 수난의 때가 임박했음을 뜻하는 “나의 때가 가까웠다”(26,18)는

 말에서 아주 분명해진다.

 

 예수님의 식사는 단지 열두 제자와 낯선 사람의 집에 가족들도 없이 차려진다.

 

 “나의 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야 다가왔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때가 다가왔음을 아시고 자신을 내맡기신다.

 

 이제 제자들을 교육하는 일이 끝나가고,

 그분은 그들이 순종하는 주인이요 주님으로 남으신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26,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회상하며 감사하는 유월절 잔치에(탈출 13,13 이하)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고대에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것은 우정과 평화의 표시이며 확고한 동지애의 상징이었다.

그 식탁에 앉았던 배반자의 죄악이 극에 이르렀다.

 

 유다는 예수님은 물론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도 끊어버렸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6,24)라고 하신다.

 

 그분은 ‘남을 죄짓게 하는 불행한’(18,7) 유다에게는 걸림돌이었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유다의 죄악을 폭로하셨다.

 

그의 근본적인 죄는 예수님을 자기 경험과 돈으로 저울질하고

자기 생각에 따라 예수님을 변화시키려 한 점이다.

오늘도 유다가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지는 않는가?

 

유다는 예수님과의 관계 단절을 통하여 제멋대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을 참 자유로 여기는 교만에 빠졌다.

 

유다처럼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외면하며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삶만을 추구하기에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유다는 제멋대로 생각하고 자기만의 사고방식과 기준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였다.

 결국 그는 마음대로 판단하여 하느님이 주신 목숨을 끊어버렸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사고의 중심이요 원천은 역시 하느님이시다.

 

신앙은 겉으로 보면 끝까지 손해 보는 길이나

그 길은 보이지 않는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의 길이요

하느님 친히 책임져주시는 길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데 도구로 쓰려하였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주제 파악을 못한 처사이다.

참된 신앙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도구요

심부름꾼으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길이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모든 이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를 섬기는 데 있다.

오늘도 제자들의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26,25)라는 말이 울려퍼진다.

 

 이 시대에 자기다운 신앙의 고백,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줏대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드물다.

 

다른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면서도 결국 자신만은 의인인 듯

 처신하려는 바리사이들의 태도가 배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혹시 나의 속마음과 언행이 그분을 팔아넘기고 있지는 않을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사랑은 그렇게 우리에게 쏟아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