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 월 마르 12,1-12(15.6.1)
♣ 역류하는 세상에서 찾는 행복의 길 ♣
너나 할 것 없이 행복을 원하고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며 참 행복인가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시대는 사람이 사는 세상임에도 사람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소유가 존재를 좌우하는 시대,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하는 시대는 한마디로 ‘거꾸로 가는 시대’인 듯하다.
제정신이 아닌 사회에는 하느님의 선과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사랑은 무시되어버린다. 유대 지도자들에게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해주시면서 동시에 유대 지도자들의 질문(11,28)에 답하신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느님을,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종들’은 예언자들을 가리킨다.
또한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은 이방인들 또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사랑의 결정적 표지인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듣고도,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마르 4,12) 어리석음과 무능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그들은 스스로 예수님과 동떨어져 무관한 존재로 자신들을 내몰아버렸다. 종들을 붙잡아 매질하거나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12,2-5).
끝내는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마저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12,8).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악을 저질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12,12)
전적으로 이타적인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본질이요 정체성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선을 자기 것으로 삼는 어리석음 속에 살아가지는 않는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재물과 권한을 공동선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더 많은 부를 얻으려고 인간의 존엄함을 잊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이 시대가 참으로 복음의 가치를 거슬러 ‘역류하는 사회’임을 인식하고 있는가?
얼마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가, 얼마나 넓은 고급 아파트에 사는가, 얼마나 고가의 명품을 지니고 있는가에 나의 관심이 머물고 애착의 끈이 묶여 있다면 나 역시 미친 듯 역류하는 사회 속의 어리석은 속물 인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의 관념에 머무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분의 사랑과 생명이 지금 내 안에서 살아 꿈틀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분의 생명과 사랑이 되살아나야 한다.
꺼져가는 불씨처럼 신음하고 허우적거리며 하루 한 끼를 걱정하고 희망 없는 미래에 갇힌 수많은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보아도 냉정하게 대하고 있다면, 나는 분명 그토록 어리석고 무능한 유대 지도자들과 같은 사람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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