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순교자들 기념 마르 12,18-27(15.6.3)
♣ 죽음을 넘어 살아계신 하느님 ♣
인간은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 살아가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나날의 삶이 단순히 시간의 연장이나 상대적 가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호흡하지 못하는 건 왜일까?
오늘 복음은 그 어떤 죽음과 고통의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바로 거기에 죽지 않고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임을 깨닫도록 인도해준다. 육체와 함께 소멸한다고 하여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부인했다 (사도 23,8; 유대고대사 XVIII, 16-17).
사실 부활사상은 모세오경에는 없고 기원전 2세기경 싹튼 묵시문학 사상이다 (이사 26,19; 다니 12,1-3).
이는 특히 마카베오 시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2마카 7장) 예수 시대에는 신앙의 내용으로서 두루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일곱 형제의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은 뒤 둘째부터 차례로 그 여자를 맞아들였으나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으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신명 25장은 대가족 제도를 전제하며, 수혼(嫂婚)을 거절하는 이들에 대한 권고사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결혼 형식이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졌던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12,25)라고 대답하신다.
그 말씀인즉 부활세계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온전히 새롭게 창조되는 세계이며 부활한 자는 마치 하늘나라 천사와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의 어리석은 질문을 계기로 부활이 이 지상생활의 시간적 연장이나 시작이 아닌 온전히 새로운 삶임을 역설하신다. 그러나 그 부활은 지상의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새롭고 영원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부활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며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상의 선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지금 여기서 찾지 않고, 성인 성녀가 되는 것을 저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는가!
많은 이들이 ‘죽어서 천당가고 싶다’는 말이나 살다보면 행복한 날이 오겠지 하는 말을 무심코 내뱉는다.
그러나 부활의 삶은 물리적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 몇 달, 몇 년이 지나면 언제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어떤 장소나 주변 여건의 변화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서 나와 우리 공동체, 우리 사회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숨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하느님의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살 때가 바로 부활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부활은 육체의 되살아남이나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회개와 더불어 찾아드는 전적인 새로움의 상태이다.
'지금 여기서' 현세의 유혹과 우상, 집단적 이기주의와 물신주의를 거슬러 하느님의 역설을 살아가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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