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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야고보는 할수 있을까? /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님 ~

야고보는 할 수 있을까?

-김찬선신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야고보와 요한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요즘 많은 사람들이 “I can do it!”, “I can do it!”합니다
.
자신감의 표현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정말 야고보의 형제들은 할 수 있을까요
?

그것이 기능의 문제이고, 능력의 문제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
그런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할 수 있는데도 지레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아예 시작도 못하는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수난의 잔을 마시는 것인데
,
수난의 잔을 마시는 것은 기술의 문제도, 능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
굳이 능력의 문제라고 한다면 사랑의 능력입니다
.
사랑만큼 고통을 감수하고

사랑만큼 고통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랑이 없으면 누구도 고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
나와 아무 상관없는 길가는 사람
,
그래서 아무런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물을 주기 위해

내가 이 무더위에 찬물을 들고 길가에 서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
사랑이 없으면 고통은커녕 작은 수고도 할 마음이 없습니다
.
그래서 지금 남편이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우면

물 한 잔 청해도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하고 거절할 것입니다.

그러니 수난의 잔을 마시는 문제는

“I can”
의 문제가 아니라 “I will”의 문제가 먼저입니다
.
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할 마음과 의지가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

그리고 이제 할 마음이 있다면 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하는데

이 역시 사랑의 문제입니다.
사랑만큼 고통 감수 의지가 있고

사랑만큼 고통 감당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의 형제는 수난의 잔을 마실 의지가 있었을까요
?
마실 능력은 있었습니까
?
이어지는 얘기를 보면 그가 마시려고 했던 것은

수난의 잔이 아니라 영광의 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수난의 잔을 마시게 되자 야고보는 도망쳐 버린 것이지요
.

그런 그가 그러면 어떻게 수난의 잔을 마실 수 있게 되었을까요
?
어떻게 제일 먼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게 되었을까요
?

"I can"
이라고 하지 않고 "I can't"라고 하였기 때문이고
,
"I can't"
라고 하였지만 "I will not"라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

하려고 하나 제가 할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고
,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

야고보 사도가 유다와 다른 점은 똑 같이 수난의 잔을 거부했지만
,
배반의 수치스러움과 죄스러움을 겸손으로 견딘 점입니다
.
유다는 수난의 잔을 함께 마실 의지도 함께 마실 수도 없었던

자신의 그 치욕스러움을 못 견디었지만

야고보는 그 치욕스러움이 바로 자기의 것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너도 마시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었고
,
주님께 그 힘을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 힘을 주신 것입니다
.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
사랑의 성령입니다
.
없다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주시니

사랑 없다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