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산 이와 죽은 이 구별 없이 / 김찬선 신부님 ~

산 이와 죽은 이 구별없이

 

 

-김찬선신부-

 

우리의 전례는 모든 성인의 날이나 위령의 날이나
“행복 선언”이라는 같은 복음을 듣습니다.

적어도 죽은 사람은 불행하다는 그런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고

하느님께로 간 그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뜻이겠지요.
어제 보았듯이 하느님과 함께만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기에

삶도 죽음도 문제가 아니고

영원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사라지기에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
행복선언을 보면 두 가지 시제가 나옵니다
.
현재 시제와 미래 시제이지요
.
첫 번째 행복선언인 “행복하여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마지막 여덟 번째 행복선언인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둘 다 모두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로 현재 시제입니다
.
지금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여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
그러나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 다른 행복선언은

모두 “-할 것이다.”로 미래 시제입니다
.
미래에 실현될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

그러니 행복의 조건인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기만 하면

지금 여기서부터 행복하지만
죽은 다음 완성된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다음 행복이 완성된다면

위령, 즉 죽은 영혼을 위로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

우리가 미사 지향으로 많이 바치는 불쌍한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이겠지요
.
어제 우리가 기념한 모든 성인들을 제외한 죽은 영혼들
,
아직 하느님과 함께 있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

그것은 이 세상에서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는 행복을 살 수 있는데

이 세상에 집착하여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처럼
죽은 뒤에도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떠나지 못하고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
하느님 안에서 우리가 산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것이 통공의 교리입니다
.
산 이도 죽은 이도 모두 하느님 안에 있기에 우리는

세상의 경계를 넘어

시간의 경계를 넘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마라톤 준비삼아 오랜만에 밤 등산을 하였습니다
.
오르면서 5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내내 하였습니다
.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없는 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습니다
.
10
대 때 철이 들면서 저만 아버지가 없는 것이 인식되면서

아버지가 그리워 산소에도 가고
보지도 못한 아버지를 자주 기억했습니다
.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졌고 기도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
그러다가 올해 들어와서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무 추억도 없는 아버지 생각이 가끔 나고
아버지란 분이 나와 함께 있고
나를 든든하게 감싸주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
그 아버지가 하느님 아버지인지
,
저를 낳아준 육신의 아버지인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

50
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아버지가 지금 저와 함께 계시고 감싸주심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하느님 안에서 통공하는 것이겠지요
.

위령성월인 11월 한 달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또한 우릴 위해 하느님 면전에서 기도해주기를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