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축일에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교회가 성령 안에서 일치되어 있고,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母)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깨닫고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또 각자의 성화 소명에 충실하고,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자매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함을 상기해야겠습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집이요, 기도하는 집’인 성전으로 살아가는 길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이들을 채찍으로 쫓아내시고,
환전꾼들의 돈을 쏟아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십니다.
그들이 성전을 ‘장사꾼들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2,16).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이신 하느님이 드러나고,
하느님을 만나는 성전이 부패하고 더렵혀진 것을 지나칠 수 없으셨습니다.
나아가 그분은 형식적인 예배나 종교의식을 거부하시고
고정된 건물에 매이지 않고 성전과 회당의 안과 밖, 집안과 길거리,
호숫가, 바리사이의 집 등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2,21).
이는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회상하고 보존하며
살아내야만 참 성전이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온몸으로 보여주신 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며,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울어주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웃어주는 ‘공감과 연민’이 현저히 드러날 때
비로소 성전다운 성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느님께 전 인격을 봉헌하고 축성된 삶을 살아가는 나는
과연 사랑이 되어 걸어가는 참 하느님의 성전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며
(2코린 6,14),
우리의 몸은 성령의 성전입니다
(1코린 6,19).
따라서 하느님의 성전인 내 삶은 사랑이 넘치고 영(靈)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이 나의 말과 행동과 표정을 통해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고 탐욕과 집착으로 가득 차 있고
세상 근심 걱정과 자기애로 차 있다면
성당에서 무릎 꿇고 아무리 오랫동안 기도한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을 드러내려고 성전 건립을 위해 많은 돈을 내는 것보다
'살아있는 성전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랑의 성전을 짓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성령의 궁전인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다른 이를 존중하고 겸손하게 대하며,
사회정의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 또한 가난하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세상의 한복판에서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마저 교회 발전과 복음선포라는 이름 아래
자본의 힘에 의지하고 상업화하는 것은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교회의 상업화는 이제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병원, 학교, 요양원, 양로원, 장애인시설 등이 거대화하고 기업화하는 모습이
참 성전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으로 세워지고 사랑이 실천되며 사랑이 쌓여가는 곳은
어디나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인간의 문제와 고통에 무관심한 채
하느님을 입에 올리는 공동묘지로 바꿔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축일을 지내며 나 자신과 세상 모든 교회가 사랑과 정의, 공감과 공생,
연민으로 가득한 참 성전이 되기로 다짐합시다.
오늘도 '사랑의 성전'이 되어 걸어가는 행복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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