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일(나해) 마르 13,24-32(15.11.15)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마르 13,27)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 희망 속에 하느님을 찾아가는 모험 ♣
기원 전 2세기부터 유대인들은 성전 파괴, 전쟁과 반란, 기근, 전염병, 하늘의 징조들, 박해 등의 묵시문학의 표현을 애용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시대 유대 묵시문학의 언어를 빌어 세상 종말에 대해 전해줍니다 (13,24-27참조). 나약한 인간에게 불확실한 미래와 종말은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전하는 세상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드러났던 타락과 불의를 거침없이 비판하시며 종교권력의 상징인 예루살렘 성전의 몰락을 예고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13,31) 하고 말씀하십니다. 곧 세상 권력과 부, 세속적인 유혹들에 맞서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결코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희망의 표지로 바뀝니다. 우리는 이 희망을 수난을 받고 죽으시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선포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욕구충족과 소유에 매여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거나, 자기 힘으로 미래를 보장하려 하고 자신이 정한 기대치에 도달하려고 몸부림칠수록 실망이 커가고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느님 손 안에 미래를 맡길 줄 알아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인생을 허비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어떤 심리학자의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우리가 하는 걱정의 97%는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지금 사랑하고 주님의 뜻을 실행하기에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한데 근심 걱정과 탐욕 때문에 불안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많은 돈을 저축해놓고도 좋은 일에 쓰는 것에 인색하며, 건강 걱정 때문에 건강보조식품을 챙겨 먹느라 신경을 쏟는 것은 자기만의 헛된 성전을 짓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회적으로 출세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능력을 키우고,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고 자신을 알리는데 많은 시간을 쓰며, 자기 힘으로 안전한 미래를 확보하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헛된 성전을 세우지 않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참 희망이며,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안에 우리의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이미 우리는 죽음을 넘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있는 참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그분의 눈으로 모든 피조물과 다른 이들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종임을 기억하고 그분께 희망을 두며, 주님께서 부르시고 주시는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순례는 사랑과 정의의 성전을 세우기 위한 모험입니다. 영의 눈으로 시대 징표를 읽어, 나 자신과 교회공동체, 그리고 이 사회 안에 자리 잡은 헛된 성전을 과감히 허물 때 하느님의 ‘영원한 현재’를 살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지만 하느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두려운 종말이 아니라 영원한 희망의 선물로 다가올 것이며,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누리는 형제애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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