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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기념일 / 기경호 신부님 ~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기념 화 루카 19,1-10(15.11.17)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9)



Zacchaeus the tax collector





 파격적인 사랑이 주는 해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십니다.


세리들은 점령 세력인 로마를 대신해 세금을 징수했고, 또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했기에 죄인 취급을 받았으며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세관장이자 부자였던 자캐오는 물질적 풍요와 권세를 누렸으나

 민족 반역자 취급을 받고 멸시당하면서 소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동족들에게는 물론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양심의 갈등을 겪던 그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갈망과

참된 자신을 찾으려는 열망으로 예수님을 만나러 나섭니다.


그는 세리와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으나 군중이라는 장애를 만나자

 그들을 ‘앞질러 달려갑니다.’

(19,3-4)


그만큼 회개의 열정이 강했습니다.

영혼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군중을 앞지른 그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그렇게 한 것은 키가 작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소경처럼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장애는 군중이 아니라 죄의 어둠에 있는 자신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감히 예수님을 부르지도 못했지만

 자유와 해방을 찾아 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대단한 위세를 떨치던 자그마한 세관장이

나무에 올라간 모습은 조롱거리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를 구원하시고자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19,5)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부정하게 된다는

 유다인들의 사고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리신 것입니다.

예리코 사람들은 예수님의 처사를 보고 투덜거립니다

(19,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캐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구원받아 마땅하다고 하십니다

(19,9).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죄도 묻지 않고 보속도 주지 않으십니다.

 누구나 회개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회복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19,6)


그분의 파격적인 사랑이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파격적인 회개를 불렀습니다.

결국 자캐오는 상처가 치유되고 열등감을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해방을 체험합니다.


 그는 회개의 표시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19,8)고 합니다.


남을 속여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20%,

 부당하게 갈취한 경우에는 그 잔액과 그것의 20%를 보태서 변상했고

(레위 6,5; 민수 5,6-7),

절도를 한 경우에만 네 배를 갚아야 했던 관례에(탈출 22,1) 비춰보면

그의 선언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자캐오는 재산의 절반을 내놓음으로써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자비로 구원된 것이고

 그 결과 재산을 나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파격적으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은(루카 3,8) 그에게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19,9)고 하십니다.


이기적 물질주의자였던 자캐오는 하느님의 사랑 앞에

그토록 집요하게 붙들고 있던 돈과 명예와 권력을 내려놓고

영혼의 빛을 되찾아 해방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도 구원에 이르기 위해 자캐오처럼

돈과 권력과 명예욕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랑의 주님께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도 빛의 나무 위에 올라가 상처와 열등감과 영혼의 어두움을 떨쳐버리고

회개하여 그 열매인 나눔을 통해 해방의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