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 월 루카 18,35-43(15.11.16)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 거룩한 갈망으로 찾아가는 행복 ♣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참 갈망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과 자신을 보지 못하게 막는 육의 정신으로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으나 제자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18,31-34) 오늘 복음은 제자직을 '눈을 뜨는 것'과 연결짓고 있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습니다 (18,38).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18,39). 예수님께서는 그의 외침을 들으시고 멈추시어 ,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18,41) 하고 물으신 다음 ‘다시 보아라’ 하시며 고쳐주십니다 (18,42). 그는 부자 권력가가 얻지 못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18,18-27 참조) . 예리코의 소경은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천대를 받던 가난한 거지이자 소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배고픔을 채워줄 빵보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청했습니다. 그는 애초부터 그리스-로마 양식의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했던 예리코에 살면서도 배고프고 초라한 자신의 처지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소경을 ‘즉시’(18,43) 고쳐주십니다. 하느님을 갈망하는 그 소경의 갈망이 곧바로 치유를 부른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이 소경이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10,50)고 전합니다. 하느님을 바라고,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는 의식이 분명했기에 그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겉옷마저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예수님께 달려 나가는 모습은 더욱 심한 모욕과 멸시를 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과는 달리 그분을 보려는 거룩한 갈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명과 행복 자체이신 하느님을 볼 수 있다면 인간적인 그 어떤 조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눈을 뜬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18,43) 예수님을 보고 따르는 우리도 마땅히 그분의 수난의 여정에 함께해야 합니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영과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지니고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며 살았던 하느님의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예리코의 소경처럼 세상 재물보다는 하느님을 갈망함으로써 눈을 뜨고, 성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을 온 마음과 넋을 다해 갈망함으로써 주님의 자비 안에 머무는 행복한 제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눈을 뜨고 예수님과 함께 수난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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