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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즈가리야의 하느님 찬미가 / 조욱현 신부님 ~



12월 24일

복음: 루가 1,67-79: 즈가리야의 노래

성령께서는 즈카르야를 사로잡으시어 아홉 달의 침묵을 깨고 요한이 할례 받던 날, 예언하게 하셨다. 즈카르야는 노래 첫머리에서 장차 요한이 준비할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68-69절)

주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찾아 의롭게 만들기로 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뿌리 깊은 병인 교만을 치료하고자,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듯 우리를 찾아오셨고, 당신의 겸손을 그 본보기로 보여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피를 대가로 치르고 우리에게 자유를 찾아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분은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로마 1,3)이며, 다윗 집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뿔이셨다.







그것은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71절) 그리스도는 자비요 정의이시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자비를 입었고 의롭게 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믿음을 통해 사악함의 때를 씻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73절)는 어떤 일에 대한 보장이다. 반드시 당신 말씀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맹세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 각자에게 당신의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그분 자신의 말씀이다.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74절) 이 원수들은 육체의 원수들이 아니다. 그들은 영의 원수들이다. “싸움에 용맹하신”(시편 24,8)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원수를 멸망시키고 그들의 올가미에서, 즉 모든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71절) 우리를 해방시키고자 오셨다.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72절) 주님께서 오셨을 때에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 그들은 그분의 날을 미리 보고 즐거워하였다(요한 8,56 참조)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72-75절)라고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76절) 여기서 지극히 높으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예언자의 하느님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유대인들은 잠시 그에게 모여들어 세례도 받고 그의 생활방식에 감탄도 했지만, 영원히 타오르는 등불을 끌려고 별짓을 다하다 결국 그를 죽음의 잠에 들게 하였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78-79절)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알게 하는 참 빛을 우리에게 주셨고, 오류의 어둠을 거두어 가셨으며, 하늘로 가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분은 우리의 발을 이끌어 당신이 보여주신 진리의 길을 걷게 하셨고, 당신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평화의 거처로 들어가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높은 곳에서 온 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복된 일이 어디 있는가? 우리를 위하여 아무런 명성도 떨치지 않으신 분, 하느님의 모습과 종의 모습을 함께 지니신 분, 그러나 어둠속에 갇혀있던 우리 세상을 위해 빛처럼 해처럼 솟아오르시는 분, 우리는 그분께 무릎 꿇고 절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삶으로 구원을 체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한 주님께 매 순간 영광과 찬미를 드릴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청하고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께 아름다운 예물로 바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들이 모두 감사와 찬미의 순간들이 되어, 주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