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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성탄 밤미사 ; 사람이 되어 태어나신 하느님 / 조욱현 신부님 ~



성탄 밤미사: 사람이 되어 태어나신 하느님

복음: 루가 2,1-14: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나셨다

호구조사의 상황은 요셉과 마리아를 왕도 베들레헴으로 가게 한다. 이곳은 다윗의 왕권이 시작된 곳이다(루가 2,1-5; 참조 1사무 16,1-13, 성령의 선물과 함께 13절). 여기서 마리아, 시온의 딸인 그리고 성령의 거룩한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영원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루가 2,6-7)이 사람이 되어 탄생하신다.

들에서는 “주님의 천사”가 “주님의 영광”과 함께 깨어있는 목동들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복음을 전한다.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부활의 명칭). 그 표지는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아기”가 구유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합창이 이어진다. “지극히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여기서 말씀이 전해졌다. 즉 복음화 되었다. 목동들이 알아들었고, 아기에게로 달려갔다. 이것이 “오늘”(11절) 모든 사람들에게, 가시적으로 영원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성령과 함께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참으로 거룩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 위에 죽으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시며, “하느님의 일”을 행하시며, 인간들 사이에서 사셨고, 그러므로 그분은 참으로 탄생하셨다.

성탄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깊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 무덤에서 옛 시간의 날이 끝나고, 새로운 “날”, “낮”, “오늘”이 시작된다. 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날은 무덤에서 지지 않는 날로 시작되며, 탄생에서도 그렇다.

* 같은 인격(위격)이 “살아 계신 분”으로 무덤에서 나오셨다. 때문에 탄생에서도 “살아 계신 분”으로 태어나셨다.

* 수의로 싸여 무덤에 모셔졌다. 탄생에서도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셨다.

* 무덤에서 인간으로서 신적 생명으로서 나셨다. 때문에 그분의 탄생은 즉 인간이 되신 것은 무덤을 위한 것이다.

생명에로 태어나기 위하여 죽으셨다. 진정 부활로서 아버지는 성령의 복되신 영원 안에서 영원한 아들의 인성을 낳으셨다. 바오로 사도가 시편 2,7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바로 죽음을 위해 태어나셨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십자가는 탄생을 위한 것이며, 탄생은 십자가를 위한 것이다.

* 마리아와 아리마태아의 요셉은 무덤에 묻기 위해 수의로 싸는데 있었고, 그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포대기에 쌓아 구유에 모신 것이다.

* 주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무덤이 없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요한 19,41), “3일” 때문에라도 사랑으로 내어드려야 했다. 똑같은 모습으로 그분을 위해서는 탄생할 자리가 없었다.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여관은 모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몰약은 무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위해 쓰였다.(요한 19,39). 그 몰약은 박사들이 아기에게 바친 예물이었다(한번만 쓰였다).

* 하늘의 천사들은 부활에도 있었으며, 탄생에도 있었다.

* 초자연적 신적 빛이 부활에도 빛났고, 같은 것이 탄생에도 있었다.

* 부활 사건에서 하느님의 나타나심(신현) 앞에서 두려움은 탄생에서도 나타난다.

* 제자들 사이의 부활에 대한 놀라움은 탄생에서의 목동들의 놀라움과 같다.

* 두려움에 대해 부활에서 천사들의 안심시키는 “두려워 말라!”는 말이 탄생에서도 같이 나타난다.

* “큰 기쁨”은 무덤에서 여인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같은 기쁨을 목동들도 맛본다.

* “표지”로서 무덤에 있던 얼굴을 싸맸던 수건과, 끈이 표지가 되었으며, 같은 표지로서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누워있다고 하였다.

* 부활 사건에서 제자들이 달려가는 것, 미래의 “하느님 양떼의 목자들”, 탄생하신 곳으로 달려가는 목동들이 나타난다.

* 제자들에게 여인들을 통해서 전해진 부활, 탄생에서는 목동들의 주님의 찬미와 찬양을 볼 수 있다.

* 위대한 왕의 도시, 예루살렘(시온)에서 부활하셨고, 인간적인 왕의 도시, 메시아적 왕의 도시, 다윗 왕의 도시, 예수께서는 인성으로 그리스도의 선조인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부활의 “표지”는 탄생의 “표지”이다. 이것은 기쁜 소식(복음)이며 살아있는 표징이다. 이는 주님 자신이시다. 이분이 바로 “오시는 분”이시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 그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분은 평화의 왕자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 아기로 태어나셨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분이 바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시며 모든 이의 구세주이시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거룩하게 살도록 가르치시고 계시다.

복음에 나타난 성탄 사화가 바로 부활을 통하여 본 것임을 알 수 있다. 성탄의 신비는 바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성탄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십자가와 죽음의 신비, 부활의 신비가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비는 우리 자신이 사랑을 위하여 죽는 것을 말하며, 부활의 신비는 거기에서 오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성탄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