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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 - 헤로데의 박해 / 조욱현 신부님 ~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

복음: 마태 2,13-18: 성가정의 이집트 피난

아기 예수님은 왜 이집트로 피신하셨을까? 그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호세 11,1)는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라 한다. 주님께서도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루카 24,44)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피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때가 되었을 때 구원의 성사가 되기 위해 피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피신해야할 때조차도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피하셨다. 박해가 닥치면 믿음을 부인하는 것보다는 달아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달아나지 않으려고 하다가 주님을 부인하였고, 요한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으려고 달아난 것이다. 아기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을 믿음직한 종들로 바꾸어 놓으셨다.







아기를 찾으려 한 것이 헤로데였는가, 아니면 악마가 헤로데를 통해 작용한 것일까? 악마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어떤 일을 하실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악마는 유대인들을 부추겨 그분을 거스르도록 하였고, 모사꾼인 그 악마는 아기일 때 그분을 이기려고 헤로데를 움직였다. 그는 아기에게서 앞으로 그분의 표상이 될 십자가, 우리를 위한 가장 위대한 승리의 깃발을 빼앗고자 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큰 신비를 본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 곁에 머물지 않은 이유와 성가정이 베들레헴에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만남의 기쁨을 누린 뒤 모두 다 도망자처럼 서둘러 달아나야 했다. 박사들은 페르시아로, 성가정은 이집트로 가야 했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께서 헤로데의 손에 잡히셨다면, 그분의 육신의 삶은 끝이 났을 것이다. 그것은 섭리로 마무리 되었다.

헤로데는 구세주를 없애려고 베들레헴으로 전갈을 보내, 박사들에게서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 명령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까지 미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의 사악함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리하여 성가정을 이집트로 피신시키신다.

베들레헴의 아이들과 인근 마을의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리스도 대신 죽은 이 죄 없는 아기들은 그리스도의 첫 순교자들이 되었다. 이 아기들과 젖먹이들이 그리스도 대신 죽임을 당하며 순교자의 완전한 찬미를 바쳤지만, 하느님의 임금님을 거슬러 자신을 지키려고 아이들을 죽인 헤로데는 파멸했다. 이 아기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자격을 지녔던 첫 순교자들이었다.

이 아기들이 죽은 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기 때문일까? 이 아기들의 죽음은 앞으로 오랜 기간 이어질 인간의 사악함의 시작이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18절) 라마는 사울왕의 도성이었고 사울은 벤야민 지파였다. 벤야민은 라헬의 아들이며 베들레헴 가까이 라헬의 무덤이 있다. 아기들이 라헬의 묘비가 있는 베들레헴에서 학살당했기 때문에 라헬이 운다고 하는 것이다.(창세 35,16-20)

여기서 마태오는 아기들의 눈물을 “울음소리”로, 어머니들의 비탄을 “통곡소리”로 표현한다. 아기들이 우는 것은 어머니에게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이 우는 것은 마치 내장이 뜯겨 나가듯이 아기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아기들보다 남겨진 어머니들의 슬픔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아기들의 슬픔은 죽음으로 인도되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떨어졌기 때문이니, 한 순간의 슬픔이다. 그들은 죽음이 두려운 것인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들의 슬픔은 갑절이었다. 그들은 아기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에게는 이제 아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기들에게는 그들의 슬픔에 복된 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아기를 잊지 못해 슬픔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흔히 “왜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이런 일을 그냥 내버려두시는가?” 하며 불평을 하고 신앙도 버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은 분명히 인간의 잘못이다. 인간이 욕심이 저지르는 잘못이기에 인재이다. 우리 인간의 회개가 필요한 것이지 하느님께 탓을 돌릴 수가 없다. 나의 잘못으로 우리 가운데 나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